종수 아버지 말에 “‘가타/가하다’부타 말이 없이,” 한참 동안 저쪽을 보며 곰방대만 빨고 있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속담은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하는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다.”라는 말이다.

송기숙(宋基淑)은 1935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장흥고등학교를 나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4년 ≪현대문학≫에 평론 <창작 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이 추천되었으며, ≪녹두장군≫(1987∼1994)은 동학혁명의 전 과정을 다루었다.

소설로는 ≪암태도≫, ≪개는 왜 짖는가?≫,《오월의 미소》 등을 썼으며, 산문집으로는 ≪녹두꽃이 떨어지면≫, ≪교수와 죄수 사이≫,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등이 있다.

옛 풍광과 역사를 바라보는 단양팔경(3)

“옥순봉”은 단양군 단성면 월악로 3827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양팔경의 제4경이다. 장회나루에서 청풍나루까지 가는 물길에서 구담봉의 꿈결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계속 유람선을 달리면서 눈앞에 빨간 교각이 매력적인 옥순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희고 푸른빛을 띤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과 같이 보인다는데서 유래한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있는 경승지였다. 조선 명종 때 관기였던 두향은 그 절경에 반해 당시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는 청을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풍부사의 거절로 일이 성사되지 않자 이황 선생은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훗날 청풍 부사가 그 글씨를 보고 감탄하여 단양군에 옥순봉을 내주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사인암”은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 2길에 위치하고 있다. 푸르고 영롱한 옥빛 여울이 수백 척의 기암절벽을 안고 휘도는 곳이다. 수려한 절경을 간직한 덕분에 운선구곡(雲仙九曲)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곳에 단양팔경의 제5경에 속하는 사인암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한 임재광 선생은 단양 출신인 고려 말 대학자 역동 우탁 선생이 사인 벼슬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서 머물렀다 하여 사인암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고 한다. 마치 해금강을 연상케 하는 사인암의 풍광은 그 어떤 뛰어난 예술가가 그와 같은 솜씨를 부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선을 압도한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암벽 위에 선연한 격자무늬, 마치 어깨 위 날개처럼 도드라진 노송의 어우러짐은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이의 가슴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최고의 화원이라 칭송받던 단원 김홍도도 사인암을 그리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하니 그 복잡미묘한 매력을 평범한 심미안으로 만끽할 수 있을까?

한글 맞춤법 제40항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로 될 적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 그러므로 ‘가타’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간편하게/간편케, 연구하도록/연구토록, 다정하다/다정타, 정결하다/정결타, 흔하다/흔타’ 등이 있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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