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은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흐르는 큰 모래강이다. 주변의 산지 형태는 저산성구릉지이며 지질은 대보 화강암 지역이다. 제천에서 충주·청주·대전을 걸쳐 호남에 이르는 대보 화강암 벨트는 사질 풍화층이 발달되어 있다. 그 중심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모래강 미호천이 있다. 미호천 유역 전체가 모래층으로 형성된 이유이다. 모래는 40%의 공극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갈수기에는 물을 토해 낸다. 미호천 유역의 하천들이 갈수기에도 물이 흐르는 이유는 모래에 저장된 물이 지표면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미호천 유역은 삶의 보금자리다. 유역에 형성된 모래톱은 거대한 물 저장고로 조금만 파면 지하수를 얻을 수 있다. 갈수기에도 사람들의 삶을 부양하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킬
미호천(美湖川)은 이름에서 들어나듯 아름다운 호수이다. 미호강(美湖江)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하폭과 유량 면에서 국내에서 다섯 번째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의 모래하천이다. 사람의 삶의 영역을 흐르며 역사화 문화 그리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비경 또한 절경이다. 심산유곡을 흐르는 곳에서는 문인들이 노래를 했고, 농토와 더불어 탁 트인 광활한 대지위에서는 농부들이 노래를 했다. 물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모래위에서는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노래했고, 버드나무아래 물가에서는 허기진 배를 달래려 물고기를 잡는 민초들이 미래를 노래했다. 그런 미호천이 산업화 이후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하수 및 오수 처리 기능으로 바뀌고, 재해를 유발지로 지목되면서 사람은 하천을 떠나고 포크레인이 그
까치내는 청주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다가설까? 지금의 까치내와 옛날 까치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청주 사람들의 추억의 고향이자 천렵 장소인 까치내는 왜 그간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워져 있던 것일까? 갖가지 의문을 품으며 미호천과 무심천의 합수머리에 닿았다. 수변구역에 만들어진 파크골프장엔 청년노인들이 청명한 가을 날씨 아래 골프를 즐기고 있다. 골프장 너머엔 거대한 호수가 있다. 작천보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작천보는 4대강 살리기(?)사업의 일환으로 1962년에 설치 된 기존의 시멘트 고정보를 철거하고 수문개폐형으로 새로 만들어졌다. 폭은 320m이고 높이는 3.1m이다. 총 예산은 120억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빰을 스치고 지나간다. 호수에서는 빛이 반사되
미호천은 총 연장 89.20km로 지방하천은 50.07km(지방1. 39.07km 백곡천 합류점, 지방2. 11km 보강천 합류점)이고 국가하천은 39.13km이다. 발원지부터 시작하면 약 90km이다. 백두대간의 삼파수(三波水)인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의 물을 모아 세종시 합강리에서 금강과 합류한다, 54개의 지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개 광역시 8개 자치단체의 유역권을 가지고 있다. 하폭과 유량을 기준할 때 4대강 다음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5대 하천이다. 국내 최대의 모래하천이며 아름답고 풍부한 자연생태계와 드넓은 평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삶의 공간을 따라 흐르는 미호천은 세계 최고(最古)의 소로리 볍씨를 비롯해 구석기 유적부터 현대까지의 다양한 역사 및 문화벨트를 형성하고
국가하천의 시작점인 보강천 합수부부터 하류지역은 하천둔치가 대규모 농장이었다. 성암천 합수부부터 오창 가곡리 팔결다리까지의 미호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떠나간 자리에 이제는 자연 생태계가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개망초, 달맞이꽃, 비수리, 달뿌리풀, 억새 등이 주인 없는 밭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고, 물가에는 고마리, 부들, 버드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간 사람들의 삶을 위해 밭으로 내주었던 땅을 차지한 식물들은 사람 크기보다 크게 자라 하천둔치를 가로 질러가려는 우리의 발길을 잡았다. 물가의 시원함을 느끼며 걸으려던 우리는 억새 숲을 뚫고 둑으로 나왔다. 가마솥에 찌는 것 같은 폭염이 시멘트의 열기와 더해져 우리를 괴롭힌다. 간간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지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미호천은 국내최대의 모래하천이자 자연경관이 매우 빼어난 하천임과 동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삶의 영역속으로 흘러내리는 자연과 사람이 상생을 이루는 강이다. 그럼에서 산업발달과 함께 공장폐수, 화학비료 등 농업폐수, 축산 및 생활폐수로 인한 오염이 극심해 갑천과 함께 금강 최대 오염원의 불명예를 않고 있다. 사람과 함께 애환을 나누던 사람은 미호천을 떠나고 그곳은 다시 오폐수의 뒤처리영역이 된지 오래다. 그나마 시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지켜 낸 미호천이 이정도니 탐사하며 다가서는 아픔은 크다. 장맛비가 내리고 ‘미래하천 미호천 탐사대’는 국가하천시작점인 보강천 합수부부터 물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보에 물이 넘쳐흐른다. 상류의 오염원을 쓸고 내려오는 물은 혼탁하다. 큰물이 빠지고 난 뒤라 녹조 등의 오
상산팔경을 굽이쳐 흐른 미호천은 보강천과 합류하며 국가하천이 된다. 보강천과 합류한 미호천은 강폭이 급격하게 넓어진다. 폭이 500m를 넘어선다. 그 넓은 공간이 습지와 녹지 공간이 됐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던 곳이었으나 하천 본연의 역할을 위해 모두 철수시켰다. 형성된 공간은 야생 동·식물의 보고이며 커다란 녹지축이다. 이 축은 청주의 도심을 가로질러 세종까지 이어진다. 상류는 음성의 망이산까지 하류는 세종의 합강까지 약 90km의 거대한 녹지축을 만든다. 이 녹지축을 이용하여 자연과 사람, 농촌과 도시, 지자체간의 공존과 상생 그리고 화합의 미호천을 그려본다.보강천은 괴산 사리면 중흥리에서 발원해 21.9km를 흘러 미호천에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도안의 문암천, 청안의 분방천, 증평 율리의 삼기
미호천의 호수로 불리는 소두머니에 이르렀다. 소두머니는 문백면 은탄리 갈탄(葛灘)마을에서 시작해 초평면 연담리 반탄(半灘) 반여울 사이의 호수처럼 넓은 미호천의 지명이다. 소두머니는 은빛 모래사장과 금빛 물결위에 내려앉은 기암절벽의 태봉산(胎封山)을 담아내고 있다. 깊은 물속으로 큰 산이 뚫고 들어간 모습은 미호천 최고의 절경이다. 한자로 우담(牛潭)이라 표기하는데 호수가 소머리를 닮아서인지, 소머리처럼 생긴 큰 산을 담아서인지, 소를 제물로 바치어 용신굿을 지내서인지 지명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용이나 이무기가 살 만큼의 깊고 큰 호수의 하천임은 분명하다. 현재 수려한 경관의 소두머니엔 건립하다 중단된 노인요양원인 ‘사랑의 에덴원’만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유지니 들어오지 마세요.`란 입간판과
평사리 미호천변에 위치한 그네길을 따라 내려가면 충북학생종합수련원이 나온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는 물가에 버드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선촌서당이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선촌서당은 예절·효 체험 및 선비문화 학습장이며 김봉곤 훈장의 회초리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회초리 체험 학습을 하며 회초리에 대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김 훈장은 “회초리(回初理)는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진리를 담고 있다.”설명한다. 상업화로 물든 빼빼로데이를 회초리데이로 만들어 “우리 교육문화를 지키는 날로 만들자.”고도 주장 한다. 그럼에도 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폭력 소재로 사용한다. 잘못하면 회초리로 때려 따끔하게 혼을 내주어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학교에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 아니다’
「평사낙안(平沙落鴈)」-남동희[嗈嗈鳴渦曉天開] 기러기 소리 용용하게 지나간 뒤 새벽하늘 밝아오는데[十里沙平水碧回] 모래는 십리나 깔리었고 파아란 물은 굽이굽이 도는구나[關山明月潚湘雨] 관산의 밝은 달과 숙상강 젖은 비에[消息年年鴈帶來] 해마다 기러기 떼 소식 전해 주네- 진천군에서 펴낸 『내 고장 전통 가꾸기』 ‘제영’ 편 -조선시대 남동희 선생은 평산리를 둘러보고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와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는 미호천의 고운모래가 십리나 이어지며 그곳에 기러기가 떼를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풍광을 운치 있게 노래했다.평사리(平沙里)에 접어들었다. 평사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사리(梨峙里), 통산리(通山里)와 병합해 문백면 평산리에 병합되었다. 평사리는
비로인해 물이 탁해 보인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바위 위에 왜가리들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물 건너 어우러진 청벽이 경관을 뽐낸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하얗고 노란 인동초가 인사를 한다. 인동초는 전국 각지의 산과 들에 서식하는 넝쿨식물로 겨울에도 말라죽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해 겨우살이 넝쿨‘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꽃은 흰 꽃으로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한다. 이처럼 먼저 피어난 노란색과 방금 피어난 흰색 꽃이 같은 마디에 붙어 있어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린다. 꽃모양이 해오라기가 모양의 넝쿨식물이라 노사-등(鷺鷥藤)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정치적 탄압을 끝까지 이겨내고 대통령을 역임한 故)김대중 대통령이 본인의 삶을 인동초에 비유하여 많이 알려진 식물이다.
농다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중리) 앞을 흐르는 미호천(세금천 洗錦川)에 축조된 돌다리로 장마 등 자연재해를 견디어 내고 천년을 이어온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됐다. 농다리의 가치는 축조 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변에 산재한 사력암질의 돌을 물고기의 미늘처럼 안으로 들여쌓기 하여 교각을 만들었으며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유속을 견딜 수 있게 했다. 총 길이는 약 93.6m로 전체적으로 지네 등처럼 굽어진 형태를 보인다. 28칸이던 교각이 유실돼 24칸만 남아있던 것을 2008년 28칸으로 복원했다. 이것은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한 것으로 동양철학의 심오함을 엿볼 수 있다. 농(籠)다리란 이름은 교각에 올린 상판이 밟으면 움직이
현대인은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다. 짧은 거리도 차량을 이용한다.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근사한 인테리어 공간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이 여유로운 삶이라 생각한다. 이에 반해 자연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시멘트 길보다는 흙길을 좋아하고 정리된 것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회색의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품에 풍덩 빠지고 싶어 한다. 자연과 교감하고 바람과 입맞춤을 하며 새 생명들과 진한 호흡을 한다. 두발로 걸으며 자아를 찾아가고 성찰 할 기회도 주어진다. 진천읍 가산리와 문백면 구곡리 구간의 미호천이 그러하다. 길가에는 노란민들레가 수를 놓았다. 외래종이지만 이 땅에서 정착해 희망을 전달한다. 민들레는 번식이 강하다. 꽃이 지면 씨앗을 공보다 둥글게 포말을
미호천유역은 선조들의 삶의 흔적과 현재의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구간이다. 10만~20만년 전부터 선조들은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었다. 미호천의 맑고 풍부한 물은 식수원으로, 농업용수로,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최상이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젊은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다. 남겨진 빈 공간에는 공장이 생기고 집단 축산 및 대규모 농장이 생겨났다. 국가의 모든 정책이 도시로 집중되며 농촌은 버려지다시피 한 공간이 됐다. 그러는 사이 선조들의 생명줄이었던 미호천은 썩어갔고 몇 십 만년을 내려온 선조들의 흔적마저 지워졌다. 미래하천 미호천 탐사대는 중기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진천군 진천읍 157번지 송두리 유적지를 찾아갔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찾은
수달은 우리나라 하천의 전역에서 볼 수 있었지만 모피수(毛皮獸) 남획과 제방공사 등 하천의 오염으로 사라졌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종 자체를 1982년 11월4일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했으며, 2012년 5월 31일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으로 지정했다. ICUN(세계자연보호연맹)에서는 ‘수달은 해당지역 수환경의 건강도를 판단 할 수 있는 지표종(Indicator species)’이라고 보고했다. 생김은 납작하고 둥근 머리로 입 주변에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수염이 있고 송곳니가 발달돼 있다. 보금자리는 물가근처의 갈대로 만든 둥지나 바위틈(굴) 등에 마련한다. 입구는 물 쪽을 향해 있으며 천적이 공격해오며 물속으로 피신을 한다. 야행성으로 밤에 주로 움직이지만 낯에 활동하기도 한다. 외부 감각이 발달
미호천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역시 오폐수 방류, 생활 쓰레기 투기, 낚시꾼의 몰지각성, 재해방지를 위한 직선화 및 바닥 평탄화 작업 등이다. 행정과 주민의 무관심은 더욱 큰 문제 이다. 얼마 전 음성 금왕의 하수종말처리장 폐수유출사건은 하나의 일탈 행위라기보다는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는 하천을 쓰레기 및 폐수 배출구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위법이 드러나도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발뺌하기 바쁘다. 한국농어촌공사 진천지사에서 운영하는 자래보 또한 마찬가지이다. 똥물이 본류로 유입되고 있다. 나란히 있는 축산농가의 오폐수도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삶의 젓줄인 미호천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다. 오폐수만 문제가 아니다. 둑에 자나라는 나무들은 마구잡이로 베어진다. 굵은
동토의 계절 겨울을 이겨내고 얼음위로 새 생명을 싹틔우는 봄은 희망이다. 매서운 겨울바람도 봄기운엔 고개를 숙인다. 대지를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도 이내 사그라진다. 그 기운을 타고 꽃망울을 터트리고 새순을 피워낸다. 봄을 시기하는 꽃샘추위도 이내 자취를 감춘다. 그럼에도 봄바람의 끝은 매섭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의 하순 이월면 중산리에서 진천읍 가산리까지 미호천을 살펴보았다. 만첩홍매화는 탐스런 꽃망울을 터트렸다. 버들강아지는 고물고물 빨간 꽃과 솜털을 드러냈다. 메마른 대지에도 작은 생명의 꽃이 피어났다. 큰 개불알풀, 냉이, 꽃다지, 별꽃, 광대나물 등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에는 작고 소중한 생명들이었다. 수량이 늘어나고 모래톱이 형성되고 어류자원이 풍부해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들어서면 미호천은 비로소 하천다운 모습을 보인다. 미잠리는 미호천과 칠장천의 합수머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예전에는 누에를 많이 치던 곳 이다. 마을 이름에 아름다울 미(美), 누에 잠(蠶)자를 쓴 것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칠장천과 합류한 미호천은 더러운 물을 씻어내 바닥의 모래까지 투명하게 보였다. 먹을 것이 생기기 시작한 이곳 모래사장 위로 수달의 발자국도 보였다. 칠장천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산(491.2m)과 칠현산(515.7m) 사이에서 발원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광혜원리를 지나 대소면 대풍리 강당말 삼호리를 지나 이월면 사당리·미잠리에서 미호천에 합류한다. 모래사장은 강수욕을 할 수 있을 만큼 넓게 형성되어
우리나라 마지막 과부 황새의 서식지는 어디일까? 미래하천 미호천 탐사대는 미호천 인근 마을에 황새의 마지막 서식지 마을을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음성군 대소면 삼호 1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촌로는 우리 마을이 마지막 황새의 서식지라며 마을회관 처마 밑을 가르킨다. 확인해보니 현관 좌측 처마 아래 천연기념물 제 20호 음성학번식지(陰城鶴瀿殖地) 비석이 서있다. 뒷면에는 조선총독부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세운 비석이다. 현재는 천연기념물 199호다. 학은 두루미를 뜻하는 한자어로 황새와는 구별된다. 하지만 교원대 황새복원연구원이 유종민 박사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의 옛 자료를 살펴보면 ‘학이나 두루미를 구별하지 않고 학(鶴)이라 칭했다’며 이곳이 황새 번식지였다는 것에는 큰
망이산 정상부에는 두 개의 샘물이 솟아난다. 동남쪽에서 솟아난 샘물은 양덕리 동리마을로 흘러 동리천, 덕정천을 지나 미호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동서쪽에서 발원한 샘물은 대사리로 흘러 대촌천, 성산천을 지나 대소면 삼호리에서 합류한다. 성산천은 망이산에서 시작하지만 우리가람 길라잡이에는 대사리 황색골산 아래에서 발원해 12km를 달려 미호천에 합류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망이산 정상 아랫부분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어지는 것을 봐서는 망이산을 발원지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망이산의 샘물은 어머니의 유방 같다. 형제는 어머니의 젖을 나누어 먹고는 각기 따로 흐른다. 영원히 따른 길을 갈 것 같은 형제의 물줄기는 각자 모란지와 양덕저수지란 자양분을 만들고 삼호리에 와서 다시 힘을 합친다. 출발은 달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