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작은아들을 하늘같이 믿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꼭 ‘그렇지 않았다/그렇잖았다.’ “사람의 마음은 한 치 건너 두 치”라고.≪조정래, 한강≫

 

속담은 “사람의 마음이란 작은 차이에도 마음 씀씀이가 매우 달라진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

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학교, 서울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첫 회 추천되어 등단하였고, 12월호에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유형의 땅≫, ≪인간의 문≫, ≪메아리 메아리≫, ≪태백산맥≫, ≪황홀한 글감옥≫, ≪정글만리≫ 등을 출간하였다.

옛 풍광과 역사를 바라보는 단양팔경(2)

“석문”은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44-33에 위치하고 있다. 단양팔경 중 제2경에 속하는 석문은 도담삼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에 접어드는데 이 길을 따라 300m 쯤 숨가쁘게 오르면 무지개를 닮은 석문이 너른 품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자연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형미가 돋보이는 석문은 울창한 수풀로 한껏 치장하고 멋들어진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둥그렇게 열린 석문 안에 남한강의 시원한 풍경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탁 트인 남한강의 풍경도 매력 있지만 이렇게 특별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왠지 신비스러우면서도 색다르다. 남한강의 물길을 따라 보트를 타며 바라보는 석문의 풍경도 역시 일품이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려 있는 암석이나 자라몽양을 닮은 자라바위 등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진 풍광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구담봉”은 단양팔경 제3경의 풍광을 만나기 위해서 충주호의 물길에 오른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나루까지 가는 길에 거대한 바위절벽이 시야를 가득 채우더니 이내 뱃머리를 비끼어 천천히 지나간다.
마치 커다란 거북이 한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물속의 바위 거북무늬가 있다고 하여 구담(龜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아담한 봉우리는 욕심도 많아 가깝게는 제비봉과 금수산을 끼고, 멀게는 월악산을 바라다보고 있어 충주호 수상관광 코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구담봉의 풍광을 두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며 극찬한 퇴계 이황 선생의 감상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조선 인종 때 이지번이 이곳에 머무르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안에 매고 비학(飛鶴)을 만들어 탔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잇다. 누구라도 구담봉의 신비로운 풍경 안에서는 전설이 되는 것 같다.

한글 맞춤법 제39항 어미 ‘-지’뒤에 ‘않-’이 어울려 ‘-잖-’이 될 적과 ‘-하지’뒤에 ‘않-’이 어울려 ‘찮-’이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그러므로 ‘그렇잖았다’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적지 않은/적잖은, 만만하지 않다/만만찮다, 변변하지 않다/변변찮다’ 등이 있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