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의 미래하천 프로젝트 '미호천 탐사'

농다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중리) 앞을 흐르는 미호천(세금천 洗錦川)에 축조된 돌다리로 장마 등 자연재해를 견디어 내고 천년을 이어온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됐다. 농다리의 가치는 축조 형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변에 산재한 사력암질의 돌을 물고기의 미늘처럼 안으로 들여쌓기 하여 교각을 만들었으며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유속을 견딜 수 있게 했다. 총 길이는 약 93.6m로 전체적으로 지네 등처럼 굽어진 형태를 보인다. 28칸이던 교각이 유실돼 24칸만 남아있던 것을 2008년 28칸으로 복원했다. 이것은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한 것으로 동양철학의 심오함을 엿볼 수 있다. 농(籠)다리란 이름은 교각에 올린 상판이 밟으면 움직이고 잠아 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고 대나무를 짜놓은 것 같다해 붙여진 것이라 한다.

농다리 전경.

농다리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첫 번째,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으로 가려는 여인네가 물을 못 건너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임장군이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 다리를 축조했다는 전설이다. 두 번째, 임씨네 집안의 힘 좋은 두 남매가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장군)은 송아지를 끌고 서울을 다녀오고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쌓기로 했는데 다리가 완성이 다 돼가도 아들이 오지 않자 어머니가 뜨거운 팥죽을 끓여 딸을 먹게 해 시간을 늦추는 사이 아들이 도착하자 분을 삭이지 못한 딸이 죽었다는 전설이다. 또한 나라가 큰 변고가 있을 때는 다리에서 울음소리가 나는데 을사늑약 때와 한국동란 때도 며칠씩 울어 동네 사람들이 잠을 설쳤다 한다. 전설속의 농다리는 축조가 쉽지 않았음을 말해주며 휴머니즘과 역사성 품고 있다.

예전의 소박한 모습은 사라지고 웅장한 모습의 농다리.

농다리는 세종대왕이 치료차 초정약수터로 행차할 때 건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충북발전연구원 김양식 박사는 “전설과 지명은 건넜다는 것이 확실하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아 추론할 뿐이지만,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세종대왕의 이곳을 지나갔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굳혀진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통해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살펴 볼 수 있는데 김양식 박사가 이야기하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민본’이다. 세종대왕은 행차를 하면서 백성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구율을 하면서도 주민들이 피해 보는 것을 우려한 검소하게 진행하였다 한다.

산을 깍아 만든 인공폭포.

선조들의 천년을 숨결을 간직한 농다리는 장마 때마다 일부 유실되면서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복원과정에서 튼튼하게 축조하려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전보다 튼튼하고 웅장하게 만든 농다리도 의미가 있겠지만 원형이 상실됐다는 안타까움도 있다. 인공미가 많으니까 멋이 떨어지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었다. 앞산의 초목을 밀어내고 인공 폭포를 만든 것이다. 새로운 볼거리라 자랑을 하지만 농다리의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만들어낸 결과다. “저게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많은 탐방객의 자조석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이다.

2005년의 농다리. 한국의 산하 발췌.

농다리는 무너진 것 자체가 하나의 자원이었다. 매년 시민들이 참여해 고증을 하고 복원을 해가면서 선조들의 축조기술을 익히고 천년을 풍상을 이겨온 토목기술의 우수성을 발견했어야 했다.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문화이고 볼거리이고 축제인 것이다. 복원이라는 것은 축적된 시간의 재발견이다. 선조들이 축적한 지혜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 콘텐츠이다. 그런 것이 부족하니 관광객 유치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어느덧 선조의 숨결은 사라지고 유흥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농다리는 상산팔경(常山八景)의 제6경으로 농암모설(籠岩暮雪)이라 불리운다. 조선 후기의 학자 한원진은 눈에 덮인 농다리 주변의 설경을 보고 한시로 이렇게 노래했다.

농암에 남은 눈 먼 산에 번득이는데[瓢謠殘雪暮山岩]
고암은 암담한 속에서 점을 찍은 듯[指点孤岩暗淡中]
귀먹은 양 진세의 모든 일을 듣지 않으려고[耳聾不聞人世事]
눈앞에 비치는 좋은 경관 산옹에게 맡겼네[眼前奇賞屬山翁]

오랫동안 있던 것으로 보이는 낚시꾼의 텐트.

농다리 50m 하류에 낚시꾼이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고 불을 피우고 쓰레기를 버려 놓았다. 역사문화로 지정된 농다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낚시꾼은 낚싯대 3개를 펴 놓고 어디론가 산책을 나갔다. 꽤나 오래된 흔적이 있는 농다리와 붙어 있지만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낚시터는 농다리는 복원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문화적 가치로서의 굴욕을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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