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란 잘 길러야 반 타작,” 예부터 전해온 이런 말은 ‘무엇이/뭣이/무에’ 의미할까. 대역이란 천연두병이며 소역이란 홍역을 의미한다.≪유안진, 도리도리 짝짜꿍≫

 

속담은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없었던 옛날, 자식을 많이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유안진(柳岸津)은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임동초등학교, 대전여자중학교, 대전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현대문학≫에 1965, 1966, 1967년 3회에 걸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달≫, ≪별≫, ≪위로≫가 실리며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절망시편≫, ≪물로 바람으로≫, ≪날개옷≫, ≪달빛에 젖은 가락≫,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등과,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 ≪그리운 말 한마디≫,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땡삐≫ 등을 발표하였다.

‘배극렴 묘소(裵克廉 墓所)’는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 산28-2에 위치하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98호(1994. 12. 30.)이다.

증평읍사무소에서 보강천 증평대교를 건너 송산리 방면으로 2.5㎞ 가량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의 증평종합사회복지관을 지나 두타산 대봉산 아래 송오리 마을 뒤 산 기슭에 있다.

이 묘소는 장방형으로 가로 3.47m 세로 4.37m, 높이 1.70m이고 상석은 가로 1.20m, 세로 0.84m, 높이 0.195m이다. 묘소에는 호석이 둘러있고, 앞에는 장명등과 문관석, 양석, 향로석 등이 있다. 양석 1기는 언제인가 도난을 당해 다시 조성했다.

배극렴은 경북 성주읍 대황동에서 위위소윤 배현보와 서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진주․상주목사(정3품), 계림․화령부윤(종2품), 합포진 첨사(종3품) 등을 역임했고, 고려 우왕 2년(1376)과 우왕 4년(1378) 왜구 격파에 공을 세웠다. 이성계  휘하에서 여러 차례 왜구를 토벌하고 우왕 14년(1388) 조전원수로 위화도 회군을 결행했다. 이후 1392년 이성계를 추대, 개국 일등공신이 돼 성산부원군에 봉해지고 문하좌시중에 이르렀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 진주목사로 부임한 이듬해 산에서 잣나무를 북쪽관아에 옮겨 심었다. 그는 문무를 겸비했으며 청렴 검소하고 부지런해 후일에 시중이 됐으므로 진주 사람들이 추앙해 이 나무를 시중백(侍中栢)이라 했다고 한다.

한글 맞춤법 제33항 체언과 조사가 어울려 줄어지는 경우에는 준 대로 적는다. 그러므로 ‘뭣이/무에’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그것이/그게, 그것으로/그걸로, 나는/난, 나를/날, 너는/넌, 너를/널’ 등이 있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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