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5월은 '가정의 달'
기념일이 줄지어 있다.
행복하지는 못한다 해도
불행한 가정이 없는 사회
그것이 좋은 나라이다-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만화방창(萬化方暢), 온갖 꽃들 산천에 만개하고 신록은 날마다 색깔을 바꾸어 가는 그야말로 ‘여왕’이라는 애칭이 그럴듯한 호시절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5월에 기념일이 많이 있습니다. 1일이 ‘노동절’이요, 5일이 ‘어린이 날,’ 8일이 ‘어버이 날,’ 14일이 ‘석가탄신일  (음4월8일),’ 15일이 ‘스승의 날,’ 18일이 ‘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 19일이 ‘발명의 날,’ 21일이 ‘부부의 날,’ 셋째 주 월요일이 ‘성년의 날,’ 31일이 ‘금연의 날’입니다. 기념일이 많은 것은 개인이나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날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가정의 달’을 일부러 정하고 기념하는 것은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 더욱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자는데 그 본뜻이 담겨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날’이 처음 생긴 것은 1922년입니다. 당시만해도 어린아이에 대한 기본인식에 인권이란 개념자체가 없었으니 호칭 또한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을 그냥 ‘애’ ‘계집애’ ‘자식놈’ ‘애녀석’이라 했고 심지어 ‘애새끼’라고 까지 부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아동문학가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 앞장서 나이 어린 소년을 ‘어린이’라고 이름 짓고 이들을 위한 ‘어린이 날’을 정해 첫 행사를 가졌던 것입니다. 1922년 5월 1일, 그날 천도교 소년회원들이 일제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처음 기념행사를 벌였는데 이것이 ‘어린이 날’의 효시(嚆矢)입니다.

이들은 ‘어린이를 위하자’는 색종이 삐라를 뿌리면서 서울거리를 행진했고 ‘10년 뒤의 어린이를 생각하자,’ ‘어린이를 속이지 말자,’ ‘어린이와 항상 가까이 지내자,’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자’는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음해인 1923년 5월 1일,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지면에 실었습니다. -5월1일 어린이 날이 왔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고 대우하자는 어린이 날이 돌아왔다. 조선의 어린이여! 그들에게 복이 있으라! 조선의 부형이여! 그들에게 정성이 있으라!-

그 뒤 ‘어린이 날’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해방이 된 뒤인 1946년 5월 5일로 날자를 고정해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린이 날’은 전 세계적으로 나라마다 기념일을 정하고 있는데 이웃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5월 5일, 북한과 중국은 6월 1일입니다.

‘어버이 날’의 유래에는 가슴 저린 사연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100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마을에 안나자이비스라는 소녀가 엄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에 빠진 소녀는 엄마의 묘소를 자주 찾아 그리움을 달래며 생전 엄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엄마에게 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곤 했습니다.

어버이의 은혜를 상징하는 붉은 카네이션. ‘가정은 안녕하신가?’ ‘가정의 달’에 가정의 위기를 생각한다. /Newsis

소녀는 어느 날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습니다. 친구들이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녀는 “엄마가 그리워 엄마 묘소에 핀 꽃을 달았다”고 대답합니다. 안나의 이야기는 곧 친구들을 감동시켰고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어머니에게 잘 하자”는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1904년 시애틀에서 처음 ‘어머니 날’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로부터 이 날이 되면 어머니가 살아있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세상을 떠난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관습이 생겨났고 1913년 이래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Mother's Day’(어머니 날)로 정해 점차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해 기려왔는데 “아버지의 날은 왜 없느냐?”는 의견이 나와 1973년부터 명칭을 ‘어버이 날’로 바꿔 범국민적인 날로 시행해 오고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온 가족 모두의 영혼이 깃든 안식처(安息處)요, 보금자리입니다. 가정은 혈연중심의 공동체로서 사회의 최소단위인 동시에 기본단위입니다.

가정은 가족구성원이 동일한 주거공간에서 몸을 부딪히며 고락을 함께하는 사랑의 공동체요, 운명공동체라는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온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이 해가 지면 둥지로 돌아가듯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도 제 굴을 찾아들고 사람 또한 날이 저물면 제 집을 향해 돌아갑니다. 인간과 짐승이 다를 게 없습니다. 

그곳에는 피를 나눈 혈육,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주고 쉬게 해줌으로써 에너지를 재충전시켜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묘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가정은 말처럼 그렇게 안락하고 행복하지만은 아닌 게 현실입니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합니다. 우선 가족이 모두 건강해야하고 불편이 없을 만큼 경제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사회가 평온해야 하고 나라가 불안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가정이 행복할 만큼 여건이 조성되고 있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사회의 가정은 얼마나 안녕한가, 몇 가지 통계를 찾아보았습니다. 2014년 한해 국내에서 결혼한 숫자가 30만5500쌍이었고 그 해에 이혼한 부부는 11만5500쌍이었습니다. 수치로 보아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 것입니다.

2013년 한해 국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1만4427명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날마다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국내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총 662만4000명입니다. 2016년 어림 전체인구 5154만1582명의 12.8%입니다. 어느 사이 ‘노인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한데, 문제는 그 노인들의 절반이 빈곤층이라는사실입니다. 그것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의지할 데 없는 독거노인이구요. 그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이혼율 1위, 자살율 1위라는 부끄러운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생활고를 못 견딘 일가족 집단자살,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해 암매장하는가 하면 늙은 부모를 시해(弑害)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하니 솔직히 ‘가정의 달’을 얘기하는 것조차 남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의 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결혼을 포기한 비혼자(非婚者)들이 점점 늘어나고 1인 가족 500만 시대, ‘가정의 달’이 쑥스럽기만 합니다.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이던 1950년대,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에도 나라가 이렇게 팍팍하지는 않았습니다. 식량 자급이 안돼 모두가 ‘밥걱정’은 했지만 사회가 이처럼 어지럽지는 않았습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부지했어도 한번 결혼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해로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기에 이혼이란 있을 수 없는 금기(禁忌)였고 일년 열두 달 어디서 누구 한 사람 자살했다는 소문 듣지 못했습니다.

더 늦기전에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은 남의 탓 하지 말고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지금 북핵보다, 경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론의 분열이요, 갈등입니다.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데 ‘가정의 달’은 무슨 ‘가정의 달?’ 

‘국민행복,’ 어찌 됐습니까. 제발 딴 소리들 하지 말고 우리사회가 위기에 처해있음을 인식하는 게 시급합니다.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불행하지만은 않은 가정이 늘어나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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