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의 미래하천 프로젝트 '미호천 탐사'

음성군 대소면 삼호리 성산천 미호천 합수부(왼쪽이 산천, 오른쪽이 미호천).

망이산 정상부에는 두 개의 샘물이 솟아난다. 동남쪽에서 솟아난 샘물은 양덕리 동리마을로 흘러 동리천, 덕정천을 지나 미호천이란 이름을 얻는다. 동서쪽에서 발원한 샘물은 대사리로 흘러 대촌천, 성산천을 지나 대소면 삼호리에서 합류한다. 성산천은 망이산에서 시작하지만 우리가람 길라잡이에는 대사리 황색골산 아래에서 발원해 12km를 달려 미호천에 합류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망이산 정상 아랫부분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어지는 것을 봐서는 망이산을 발원지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망이산의 샘물은 어머니의 유방 같다. 형제는 어머니의 젖을 나누어 먹고는 각기 따로 흐른다. 영원히 따른 길을 갈 것 같은 형제의 물줄기는 각자 모란지와 양덕저수지란 자양분을 만들고 삼호리에 와서 다시 힘을 합친다. 출발은 달랐지만 힘을 모아 큰 세를 형성해 합강까리 흘러내린다. 미호천이 생명의 강이고 화합의 강이고 상생의 강인 이유이다.

하천을 직선화하고 어도를 설치한 모습.

화합의 상징 미호천도 개발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수해예방이라는 차원의 하천직선화 공사는 하천을 볼품없이 만들었다. 버드나무나 수초 등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을 평평하게 닦아놓았다. 시멘트보는 지속적으로 물길을 막으며 뻘을 만들고 녹조 공장으로 변해있다. 보 가운데 만든 어도는 왜 만들어 졌는지 이유를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어도는 갈수기 시 들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부득불 만들어지는 보로 인해 생태계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자 고안해 낸 것이다. 하지만 설계자건 시공자건 의미를 제대로 모른 채 형식을 갖추기에만 급급하다. 한 탐사대원은 “어도는 홍수 때 쓰려고 만든 건가 봐요”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얼어온다.

대소JC 교각 아래 모습(오른쪽 지하도로 들어가면 쇠머리 마을이 나온다).

중부고속국도와 평택·제천 고속국도가 만나는 대소JC에 이른다. 도로아래 교각에 지저분한 낙서와 폐기물을 태운 흔적이 보인다. 무단투기 집중 경고판에 ‘이곳은 집중 단속지역입니다.’쓰여 있는 안내판조차 태웠다. 무엇이 우리의 농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누구나 추억속에 간직되어 온 우리의 시골마을과는 사뭇 달랐다. 산업화로 인해 젊은 인재는 도회지로 떠나가고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각박한 농업 현실에 스스로를 돌아 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주위를 돌아보고 다독일 겨를도 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삼호 1리 쇠머리 마을 경로당.

이곳에서 지하도를 지나 북쪽으로 가면 삼호1리 쇠머리 마을이 나온다. 삼호1리는 자연부락으로 쇠머리, 작은죽골이 있다. 쇠머리 마을은 원래 소가 많고 지형이 소의 머리에 위치한다하여 쇠머리(牛頭)라 불리던 곳인데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삼호리에 편입됐다. 칠장천과 미호천의 중간에 위치한 쇠머리 마을은 우리나라 마지막 과부황새가 살았던 곳으로 소개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황새 한 쌍 중 수컷이 71년 4월 포수에 의해 사살되면서 암컷만 유일하게 남았다. 83년 농약에 중독된 암컷은 창경궁동물원으로 옮겨져 무정란만 낳아 품다가 94년 9월 숨을 거두었다. 우리나라 텃새황새는 그렇게 절멸했다.

대소JC를 지나면서 하천이 제 모습을 찾는다. 하나의 경계를 넘어선 모습이다. 모래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버드나무가 어우러진다. 주변의 농경지와 마을이 조화를 이룬다. 우린 때때로 수족관을 만들어 놓고 친환경이라는 오류에 빠진다. 제방을 돌로만 쌓으면 친환경이라는 사고는 우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살아가는 지에 대한 통찰을 준다. 친환경이란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자연스런 흐름과 함께하며 경관이 살아있는 것을 말한다. 1급수를 넣어 고기를 키워도 수족관은 수족관이다.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음성지역을 떠나기 전 자연스런 하천의 모습을 본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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