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숙이 곁에 모실 때는 대신들이 어디라 감히 버릇없는 언행을 못하더니, 지금은 자기네끼리의 ‘사삿일/사사일/사사닐’이며 음담패설까지도 하는 것이었다.≪김동인, 대수양≫


김동인(金東仁)은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덕소학교,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수료하고, 일본 도쿄 메이지 중학교, 일본 메이지가쿠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배따라기≫, ≪감자≫,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등을 남겼다.

“운보의 집”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 2. 18.~2001. 1. 23.)의 어머니 고향으로 1976년 부인(우향 박래현)과 사별한 후 1984년 운보의 집을 완공하였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이곳에 정착하여 자연을 벗 삼아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타계할 때까지 노후를 보낸 곳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 양식인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연못의 비단잉어가 잘 조화되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운보의 집은 수려한 자연 경관과 전통 한옥이 잘 어우러진 문화 예술 공간이다.

‘운보 김기창(金基昶)’은 1913년 서울특별시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8세에 승동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병으로 청각을 상실하였고 언어 장애를 얻었다. 1930년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의 화숙인 이묵헌(以墨軒)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였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 연속 특선을 하여 추천작가가 되었다. 1970년대의 ‘청록산수’ 연작과 ‘바보산수’, 민화풍의 ‘화조화’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1973년부터 ‘세종대왕, 김정호, 을지문덕’ 등 역사적 위인들의 영정 제작을 담당하였다.

저서로 ≪나의 사랑과 예술(藝術)≫, ≪침묵과 함께 예술과 함께≫ 등과, 주요 작품으로 ‘전복(戰服), 가을, 복덕방, 시집가는 날, 태양을 먹은 새, 청록산수, 새벽 종소리’ 등이 있다.

한글 맞춤법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2.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는 것은 사이시옷을 첨가한다. 그러므로 ‘사삿일’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가욋일, 예삿일, 훗일’ 등이 있다.

‘가욋일(加外-)’은 ‘필요 밖의 일’을 의미한다. ‘사삿일(私私-)’은 ‘개인의 사사로운 일’을 뜻한다. ‘예삿일(例事-)’은 ‘보통 흔히 있는 일’을 말한다. ‘훗일(後-)’은 ‘뒷일’을 의미한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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