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동은 “‘텃세/터세’ 높는 똥개”처럼 알 듯 모를 듯 우쭐대고 최선경은 나들이 길에 집을 잃은 영악한 발발이처럼 슬프게도 당황하고 있는 것이었다.≪천승세, 사계의 후조≫

 

속담은 “제 연고지라는 것을 믿고 괜스레 우쭐댄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

천승세(千勝世)는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목포고등학교를 나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점례와 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내일≫, ≪포대령≫, ≪감루 연습≫, ≪황구의 비명≫, ≪혜자의 눈꽃≫, ≪선창≫ 등이 있다.

부처님의 법문이 머문 곳, 법주사(6)

‘법주사대웅전소조삼불좌상’은 보물 제1360호로 지정되었으며, 불상 크기는 비로자나불 509㎝, 아미타불 492㎝, 석가모니불 471㎝이다. 점토로 만들어졌으며,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배치한 삼불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1626년(인조 4)에 조성되었고, 1747년(영조 23)에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다.

‘비로자나불상’은 네모진 얼굴에 기다란 귀, 건장하면서 굴곡이 없는 몸체와 무릎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거워 보인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있고, 수인(手印)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은 썩 설피고 얇은 비단으로 대의 자락이 팔목에서 대칭되게 흘러내리고 있다. 아미타불상은 형태가 본존불과 거의 비슷하며, 수인은 왼손과 오른손이 뒤바뀐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하고 있고, 머리에는 큼직한 중앙계주가 있다.

‘아미타불상’은 ‘서방 정토에 있는 부처’이며, 대승 불교 정토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에서 교화하고 있으며, 이 부처를 염하면 죽은 뒤에 극락에 간다고 하고, ‘미타(彌陀), 미타불, 아미타, 아미타여래, 안양교주, 일불(一佛), 타불(陀佛)’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불상’은 비로자나불상, 아미타불상과 체형, 얼굴 모습 등이 거의 같고 양식은 비슷하다. 수인은 석가여래불의 전형적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상과 석가여래불상은 수인이나 불상의 성격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법의 착용법이 같다. 전체적으로 장대한 체구에 비하여 얼굴은 동안(童顔)이며 옷 주름을 두텁게 표현하였다.

한글 맞춤법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2.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1)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은 된소리가 나는 대로 적는다. 그러므로 ‘텃세’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귓병, 머릿방, 뱃병, 봇둑, 사잣밥, 샛강, 아랫방, 자릿세, 전셋집, 찻잔, 찻종, 촛국, 콧병, 탯줄, 핏기, 햇수, 횟가루, 횟배’ 등이 있다.

‘머릿방(--房)’은 ‘안방 뒤에 딸린 작은 방’을 말한다. ‘사잣밥(使者-)’은 ‘초상난 집에서 죽은 사람의 넋을 부를 때 저승사자에게 대접하는 밥’이다. 밥 세 그릇, 술 석 잔, 벽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 따위를 차려 담 옆이나 지붕 모퉁이에 놓았다가 발인할 때 치운다.

‘찻잔(茶盞)’은 ‘차를 따라 마시는 잔’을 의미한다. ‘찻종(茶鍾)’은 ‘차를 따라 마시는 종지’를 일컫는다. ‘촛국(醋-)’은 ‘음식의 맛이 지나치게 신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햇수(-數)’는 ‘해의 수’를 말한다. ‘횟가루(灰--)’는 ‘산화칼슘’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횟배(蛔-)는 ‘거위배’라는 뜻이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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