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마음이 있다

 

ㅡ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느니.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멀리서 찾으려고만 한다.
일체유심조, 그것이 답이다ㅡ

 

당나라의 덕산(德山 780~865)스님은 중국 선종(禪宗)의 큰 봉우리였습니다. 나이 스물에 출가하여 심혈을 기울여 여러 경전을 꿰뚫었으며 특히 금강경(金剛經)에 능통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금강경에 전심전력해 통달하였던지 세상에서는 그를 속성(俗姓)에 따라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무렵 덕산 스님은 남방의 스님들이 불경의 가르침에서 배우지 않고 좌선에 의해 면벽수행(面壁修行)으로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크게 노합니다. “천겁(千劫)동안 배우고 수행을 해도 성불할까, 말까인데 남방의 마구니들이 하루 종일 벽만 쳐다보고 수행을 해 부처가 된다고? 어떻게 경전이 없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내 가서 이 무지(無智)한 놈들의 소굴을 쓸어버리고 오겠노라.” 스님은 금강경과 자신이 쓴 글을 걸망에 가득 싸 짊어지고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스님이 먼 길을 홀로 걸어가다 보니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픈데 반갑게도 길가에 떡을 파는 집이 나타납니다. 스님은 주인 노파에게 떡을 좀 달라고 청합니다. 노파는 지긋이 바라보면서 “그 걸망에는 무엇이 들어 있소이까?”하고 묻습니다.

스님은 “이건 다 금강경입니다. 내 이 금강경으로 마구니들을 혼을 내 줄 것입니다.” 노파는 빙그레 웃으며 “떡은 드리리다. 그런데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하시면 떡을 거저 드리고 대답을 못하면 드릴 수 없습니다.”

스님은 ‘야, 이것봐라. 내가 누군 줄 모르고, 이 늙은이가…’속으로 화가 치밉니다. 노파가 말을 잇습니다. “스님,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이요,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이요,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흘러가서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은 머무르지 않으니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얻지 못한다는 뜻인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소?” 스님은 깜짝 놀랍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꼴이 됐습니다. ‘내가 금강경을 통달했어도 그런 글은 본적이 없는데…’스님은 크게 당황하면서 속으로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노파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스님께서는 금강경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부처님의 말씀만 이해할 뿐입니다. 내 말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방의 스님들을 어떻게 혼을 내시겠소.”

덕산스님은 노파의 안내로 근처에 있는 용담(龍潭)큰스님을 찾아갑니다. 스님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용담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합니다. 그리고는 걸망에 가득 찬 불경을 모두 불태워 버립니다.

덕산 스님은 당나라 말기 어리석은 세속의 중생들을 제도(濟度)하는데 큰 빛이 되었습니다.

해맑은 동자승의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의 동자승. 무엇이 이들을 웃기고 울리는 것일까. / Newsis

신라시대 원효대사(617~686)는 이 땅에 불교를 대중화 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선각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요석공주와의 사랑이야기와 함께 깨달음을 얻은 ‘해골물 이야기’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효가 44세 되던 해(문무왕1년) 일곱 살 아래인 의상(義湘)과 함께 한창 불교문화가 꽃폈던 당나라 여행길에 오릅니다. 수행(修行)을 위한 것 이었습니다. 서라벌에서 출발한 두 사람은 며칠을 걸어 배가 떠나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당항성에 다다릅니다. 두 사람은 지친 몸에 비를 만나 움퍽 패인 구덩이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한 밤중 심한 갈증을 느낀 원효는 캄캄한 주변을 더듬더듬 팔을 뻗혀 손에 잡힌 바가지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마십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이 누워 잠을 잔 곳은 공동묘지였고 바가지에 담겨 맛있게 마신 물은 사람의 해골에 고인 빗물이었습니다. 원효는 왈칵 구토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순간 크게 깨닫습니다.

“어젯밤 마신 물과 오늘 물은 다르지 않은데 어찌하여 어제는 단물 맛이 나고 오늘은 구역질이 나는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달라진 것은 물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다. 진리는 밖이 아닌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입속으로 중얼댑니다. ‘오도송(悟道頌)’이었습니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 마음이 멸하면 해골이 묻혀있는 무덤과 다르지 않네 /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앎에 기초하네 / 마음 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내 굳이 당나라에까지 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발길을 돌려 서라벌로 되돌아갑니다.

원효대사는 ‘다툼을 화합해 하나로 통하게 한다’는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무애사상(無碍思想) 을 중생들에게 가르칩니다.

원효대사의 이 가르침은 종교를 떠나 1300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어지러운 이 시대 맑은 종소리로 우리 사회에 울리고 있습니다.

집착은 인간을 망칩니다. 집착이 욕망의 다른 표현이라면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욕망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욕망,…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그 모든 욕망이 인간을 병들게 하고 종국에는 파멸로 몰아넣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비극을 너무 많이 보아 왔고 또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불가(佛家)에서는 “버려라, 버려라, 비워라, 비워라,” 부질없는 집착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었다 한들 되돌아 갈 수도 없으려니와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한들 영원히 잡아 둘 수도 없습니다. 미래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 한들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덕산 스님은 떡 파는 노파에게서 깨우침을 얻었고 원효대사는 공동묘지의 해골물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멀리 바다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안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그것을 모르고 먼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이 다섯 글자는 사바세계의 미혹한 중생들 가슴, 가슴속에 잠자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