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번째 칼럼

―좌로도 치우치지 않고,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한 글. 
정의로운 삶에 지혜가 되는
모두가 간곡히 바래―

이번 글로서 본란 ‘오늘을 생각하며’ 300회를 맞습니다. 2015년 2월 9일 불편부당(不偏不黨) ‘속 깊은 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충청미디어의 고고성(呱呱聲)을 울린 지 8년 4개월의 연륜을 쌓았습니다.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10일에 한 번 3000~4000자 분량의 칼럼으로 300회를 기록했으니 그동안 대략 100만 자의 글을 쓴 셈입니다. 왜소한 인터넷 매체로서는 기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전국에는 읽을거리, 볼거리, 신문-텔리비전이 넘쳐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사회에 만연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이를 악용한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법률 입법과 공안기관의 탄압이 계속돼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여지없이 박탈당했습니다. 이후 1987년의 6.29선언에 의해 비로소 언론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에서 매일 발행되는 일간지의 수는 약 288종입니다. 그 외 주간지 2896종, 월간지 3293종, 격월간지 459종, 계간지 약 981종, 인터넷 신문 약 1만종 정도가 있습니다. 언론사가 많으니 취재 경쟁 또한 엄청 나 국회 같은 곳은 출입기자만 1000명이 넘는다 하니 참으로 놀랄 지경입니다. (위키미디어의 통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라서 언론 자유가 있으니 신문이든, 방송이든 누구나 능력껏 회사를 세워 운영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1인미디어까지 생겨나 번성을 할 정도의 언론환경이니 가위 대한민국은 ‘언론공화국’이라해도 그른 말은 아닐성싶습니다.

부부(覆瓿)라는 옛글이 있습니다. 저서나 글이 보잘 것 없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중국 한(漢)나라의 유흠(劉歆)이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이라는 책을 후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항아리 뚜껑으로 잘못 사용할지 모른다고 했다는데서 유래 한 말로 자신의 저서나 시문(詩文) 따위의 글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필자가 매회 느끼는 소회입니다.

심장적구(尋章摘句). 옛사람의 좋은 글귀를 여기저기서 뽑아 내 글에 보태는 형식을 말합니다. 그러자면 시의(時宜)성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팩트(Fact)에 입각한 사실의 전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엄정중립의 의지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필자는 그렇게 해 왔습니다.

다섯 사람이 글을 쓰면 오인오색이요, 열 사람의 의견이 다르면 십인십색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다른 것은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100인이 모였다면 100가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것일뿐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모두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문제는 흑백논리로 보수-진보 두 패로 갈라 싸우는 데 있습니다.

필자는 쉬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3.1독립선언문의 초안은 민족 대표 49인의 한 사람인 육당(六堂) 최남선이 썼습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식의 한문 문장으로 쓰여진 것을 만해(萬海) 한용운과 춘원(春園) 이광수가 의론해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라는 쉬운 우리말로 수정했고 1948년 정부 수립 뒤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5월 3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2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였습니다. / NEWSIS
5월 3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2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였습니다. / 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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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열리는 중견 언론인들의 매스컴 세미나에서는 신문 기사, 특히 사설의 가독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재미없고 어려운 내용인데다 한자를 섞은 전문 용어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놓으니 누가 그것을 읽느냐는 게 논란의 초점입니다. 발언자 중에는 “그걸 읽는 사람은 그 글을 쓴 필자 밖에 누가 있겠느냐”고 심한 말을 하는 이도 있을 정도입니다.

글은 같은 상황이라해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세 사람이 같이 있었다면 세 가지의 글이 나오고 다섯 사람이 있었다면 다섯 가지의 글이 나오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흑백논리로 길이 들여져 이것 아니면 저것, 또 진보 아니면 보수라는 두 가지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것이 상례가 돼 있습니다. 그러니 사회가 온통 대결을 피하지 못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시끄러운 것입니다.

필자는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소위 좌(左)와 우(右)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조심했고 극단적인 좌우 논리는 철저하게 배격했습니다. 지역의 원로들로부터 격려도 있었고 언론 후학들의 성원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깨달음과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하는 충언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처럼 작은 매체일지언정 정의로운 삶에 필요한 글을 쓰는데 진력하겠습니다. 큰 것이 자랑이 아니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자부심으로 더욱 겸허한 자세로 언론의 사명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 글을 쓰겠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북한이 느닷없이 남쪽을 향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해서 한바탕 놀랐습니다. 어딘가 불안한 공기가 자욱하더니만 끝내 소란이 일었습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장에서 “불안해서 불안하고, 불안하지 않아서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의미있는 말입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어제, 오늘을 불안 속에 사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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