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 전성시대

―미국의 도・감청에
국가 기밀 새나가자
골프장에서 밀담. 
정상회담 무사할지,
국민들 조마조마해―

1972년 10월 17일 소위 유신(維新)이란 미명하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정국은 안정되는가 싶었으나 좋지 않은 소문이 계속 전 세계로 퍼져나가 골치를 썩였습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미국 정보기관을 통한 불미스러운 소문이라서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말이 좋아 혁명이고 유신이지 ‘10월 유신’은 정권 유지를 위한 친위쿠데타였던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언덕바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과 광화문 세종대로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은 직선거리 200m로 양쪽에서 맨눈으로도 훤히 보일 정도인데 미국 정보기관의 첨단 장비를 이용한 도청(盜聽)으로 국가기밀사항 이 자꾸 외부로 유출돼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속을 썩이던 참모들이 짜 낸 대책은 도청을 할 수 없는 장소로 나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안에서 주고받는 밀담은 그대로 미 대사관에서 고스란히 듣고 있는 게 분명함으로 차라리 멀리 교외로 나가 의견을 주고받는 꼼수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청와대 북쪽인 경기도 고양군 덕양면에 있는 H컨트리클럽이었습니다. 중요한 소재가 있을 경우 그곳으로 대상을 불러 골프공을 날리면서 밀담을 나누는 것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하더라도 잔디밭을 거닐며 은밀하게 주고받는 내용까지 엿들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골프장까지 가려면 100km 거리에 2시간이 걸리는데 그러자면 수 천 명의 군인, 경찰병력이 동원되어 연도에서 경호를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는 종교계, 시민단체, 대학생 등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매일이다시피 거리에 치열했습니다.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스파이와 같은 정보요원이나 내부협조자 등 사람을 이용하는 휴민트(HUMINT)와 위성촬영, 감청(監聽)등과 같이 최첨단 장비를 사용하여 신호를 포착하는 시진트(SIGINT)가 그것입니다. 시진트는 다시 레이더 능력과 특성을 파악하는 전자정보수집 엘린트(ELINT)와 통신의 내용을 파악하는 통신정보수집 코민트(COMINT)로 분류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는 나라마다 경쟁적으로 국가를 지탱하는데 필수조직인 정보기관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면 너무나도 유명한 중앙정보국(CIA)이 있어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남미나 아프리카 후진국들의 국가 존망이 미국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20일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든다는 절기 곡우(穀雨)를 맞아 전남 보성군 한 차밭에서 노인이 햇차를 수확하고 있다. 곡우 전 수확한 햇차는 우전차(雨前茶)라 칭하며 햇차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여긴다./NEWSIS
20일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든다는 절기 곡우(穀雨)를 맞아 전남 보성군 한 차밭에서 노인이 햇차를 수확하고 있다. 곡우 전 수확한 햇차는 우전차(雨前茶)라 칭하며 햇차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여긴다./NEWSIS

우리나라는 1961년 5・16쿠데타 뒤 제3공화국 출범에 맞춰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2인자였던 김종필씨가 초대 부장을 맡아 국정 전반에 대한 운영을 주도해 명성을 날렸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시중에는 ‘정보부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럴듯한 여론이 파다했습니다. 그 뒤 중앙정보부는 몇 번의 정권 아래서 안전 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김일성 1인 독재체제였던 북한은 국가보위성이 앞장서 김정일에 이어 현재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3대 75년을 권력의 핵심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유세계와 공산주의로 갈려 냉전을 벌이던 시절에는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의 불꽃 튀는 대결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KGB는 1990년 소련체제 해체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정보기관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현재는 연방보안청(FSB)으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인 블라드미르 푸틴은 KGB출신으로 그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14억 인구의 중국은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에서 1949년 건국 이래 현재까지 70여년을 정권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의 핵인 대만은 국가안전국, 이스라엘은 모사드(MOSAD), 영국은 정보청보안부, 독일은 연방헌법수호청, 프랑스는 대외안보총국이 정보를 쥐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력신문 뉴욕타임즈가 얼마 전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실의 국정에 관한 기밀을 도・감청하고 있다는 보도를 해 국내 정국이 또 한 번 시끄러웠습니다. 도청을 했다는 미국 쪽이 어물어물 하는 사이 거꾸로 우리 정부 당국자가 나서서 “그런 일 없다. 조작된 뉴스”라고 얼굴을 붉히며 언론과 야당을 오히려 반박하는 일까지 벌어져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아니, 도청을 당했으면 가해자인 일을 저지른 쪽에 항의를 하고 따져야지, 왜 피해자들끼리 집안싸움을 해? 하여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범인이 체포됐기에 의문은 풀렸습니다.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서 공군일등병이 저지른 일이라고 시원하게 밝힌 것입니다. 알맹이는 없이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24일 출국합니다. 70년 동맹에 취임 뒤 몇 번째 만남이니 두 대통령의 친밀감이 남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윤대통령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매번 화제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국민들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해 또 다른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어째, 미리부터 예감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심약한 사람들의 기우(杞憂)일까, 조마조마합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윤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국빈’ 방문이 자랑이 아니라 골치 아픈 보따리를 짊어지고 오는 우(愚)는 범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윤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자 러시아가 “경거망동 하지 말라”고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이러다 보면 우리나라는 직접 관계도 없는 러-우전쟁에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분위기는 이상한 게 사실입니다. 왜, 우리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든 무기를 수륙만리 우크라이나까지 보내 줘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그것을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