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읽기 (1)

영국 청교도․명예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으로 유럽에서 절대왕권과 봉건질서는 무너졌습니다. 군주의 권력과 귀족의 정치적 특권은 자유주의적 신념과 그것에 근거한 대의(대표, 의회)제도에 의하여 폐지되거나 제약되었고, 귀족을 정점으로 한 봉건적 신분질서는 평등한 신분질서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이 곧바로 신분과 재산의 규모를 불문한 모든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 즉 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을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국민이 유권자의 자격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할 경우, 조만간에 그 자격 제한이 완전히 폐지되리라는 점은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는 토크빌의 말처럼, 혁명의 확산적 본능에 의해서건 자유와 평등 개념의 보편적 본성에 의해서건, 민주주의로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버크(Edmund Burke, 1729∼1797)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민주화는커녕 자유화․평등화의 추세마저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기존의 봉건적․신분적 위계질서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하고, 일부 귀족들과 왕당파들은 그 회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정치적 음모와 반란을 도모하기도 하였지만,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근대 시민혁명을 성공시킨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과 혁명 후 자유주의로 개종한 귀족들은 이제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화와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유주의가 민주화와 평등화 시대를 대면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제를 고민한 두 명의 정치사상가가 있습니다.

그 둘은 유사한 철학적, 이념적 배경을 가졌고,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의 책에 서평을 써주거나 자신의 학계에 초대하는 등 친분을 쌓았던 인물입니다. 한명이 자유주의로 개화한 귀족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문제를 대면하였다면, 다른 한명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의 입장에서 그것을 대면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오늘 살펴볼 프랑스의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이고, 후자는 다음 회에 살펴볼 영국의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입니다.

토크빌.

자유주의자 토크빌과 밀, 민주주의와 대면하다

토크빌은 ‘귀족주의’ 시대에서 잉태되어, ‘자유주의’ 시대에서 자라고, ‘민주주의’ 시대를 고민하다, ‘사회주의’ 시대를 목도하며 죽은 인물입니다. 그는 자유주의와 대면해서는 여전히 귀족적 심성의 잔재를 가진 자였고, 민주주의와 대면해서는 자유주의 신봉자였고, 사회주의자와 대면해서는 민주주의 옹호자였습니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명문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의 정치적 격변과정에서 시련과 공포를 겪었고, 이것이 그의 사상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에 대한 옹호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 자신의 근저에 있는 귀족이라는 계급적 이해와 심성에 의하여 상당 부분 오염되고 왜곡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유주의로 개종한 귀족입니다. 그는 근대의 부르주아적 지식인들처럼 자유화․평등화․민주화를 향한 역사적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판사로 일하던 그는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 현장을 살펴보고자, 자유화․평등화․민주화가 가장 극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진 신생 미국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마음먹고, 미국 형행(刑行)제도를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1831년 5월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2월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관찰하고 귀국하여 이를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민주주의 (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입니다.

나는 이 혁명을 이미 이루어진 또는 이루어지기 직전의 사실로써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혁명의 자연스런 결과를 판별하고 또한 가능하면 인류에게 유익하게 만들 방법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혁명을 겪은 나라들 가운데 가장 평화스럽고 가장 완벽한 전개과정을 보인 나라를 선정했다. 나는 미국에서 미국 이상의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그 경향, 기질, 편견, 열정과 더불어 고찰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부터 얻을 이익과 해악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조건의 평등, 신생 미국의 제일의 특징

그렇다면 그가 신생 미국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조건의 평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헌정질서, 정치문화, 시민의 습속(시민문화)과 정신에 특유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내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강력하게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삶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기본적인 사실이 사회의 모든 과정에 끼친 엄청난 영향을 쉽게 발견했다. 그것은 여론에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며, 법률에 일정한 지침을 제공하며, 통치당국에게 유념할 계율을 주며, 피치자들에게 특유의 습속을 부여한다. 이것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는 이 나라의 정치적 성격과 법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시민사회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미국 사회를 연구할수록, 이 조건의 평등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의 원천을 이루는 근본이며, 이러저러한 나의 모든 연구가 결국 귀결되는 핵심임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조건의 평등은, 재산의 균등 혹은 공평한 배분,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 재산 규모와 직업의 유사성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분적 차별의 부재’ 혹은 ‘형식적인 기회의 균등’을 의미합니다.

토크빌은 신생 미국에는 처음부터 귀족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영국의 식민치하에서도 마을의 전 주민이 비교적 평등하게 타운회의를 통하여 자치를 수행하여 왔고, 非위계적이고 실용적인 종교(특히 청교도)로 인하여 자유와 평등의 관념을 보유하고 있었고, 개척과 상업의 활기로 인하여 개인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활력을 누적할 수 있었기에, 유럽과 달리 정치적 민주주의와 평등 우선의 시민사회를 보다 완벽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미국적인 민주화․평등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향후 유럽에서도 보편화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민주화․평등화의 추세는 역전될 수 없는 불가피한 역사적 흐름이며, 이는 신의 섭리라고까지 말합니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흐름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정의에도 합당한 것이라고 인류의 복지에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민주화․평등화의 흐름은 제어되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에게 나아가 인류에게 크나 큰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화의 해악을 무엇일까요? 그는 민주화와 평등화는 다수의 ‘적극적’ 횡포로 인한 ‘강압적’ 독재나 (그 독재에 대한 반발로) ‘무정부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고, 또한 이와 달리 다수의 ‘소극적’ 무능력으로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민주적 전제(democratic tyranny)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1, 2권.

민주주의의 귀결, 독재와 혼란 vs 민주적 전제와 안정

토크빌이 민주화와 평등화의 귀결이라고 말하는, 다수의 적극적 횡포와 소극적 무능력, 강압적 독재와 부드러운 전제, 무정부적 혼란과 안정적 질서는 서로 대조되는 것입니다. 토크빌은 이런 상반된 두 결과 모두를 어떻게 하나의 민주주의에서 예상 가능한 해악적 귀결이라고 주장할까요?

토크빌은 전자는 민주주의의 일시적․예외적 국면일 뿐이고, 후자는 민주주의의 장기적․항구적 위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봉건적 신분질서가 폐지되고 자유와 평등의 관념이 시작되고 민주정체가 성립하면, 절대 다수인 가난한 인민들은 그 다수의 힘을 직접적․물리적․정치적으로 행사하여, 귀족들과 부자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그들의 지위와 재산을 강탈하지만, 민주정체가 지속되고 평등화가 심화되면, 다수는 간접적․심리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소수를 압박하여 그들 스스로 다수를 따르도록 하고, 다수는 사사(私事)화되고 보수화되어 안정과 질서의 희구세력으로 변하여 외형적으로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가부장적으로 모든 인민을 돌보는 듯 한 전제정치를 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전통적 정치사상가들과 당대의 민주주의 비판가들이 민주주의의 위험을 주로 전자에서 즉 빈민들이나 그들의 대표들에 의한 혁명적․폭력적 독재나 그 이후의 정치적 불안에서 찾았던 반면,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험성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무질서 상태는 민주시대에 두려워해야 할 첫 번째 해악이 못되고 가장 하찮은 해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평등의 원리는 두가지 경향을 야기하는데, 그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곧바로 독립상태로 이끌면서 무질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상태에의 길을 열어놓게 되기 때문인데, 이 노예상태로의 길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잘 모르게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확실한 것이다. 국민이 전자의 경향에 대하여는 잘 알고 이에 저항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향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끌려가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밝히는 일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토크빌의 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한 전자의 문제의식이 전통적이고 정치제제적인 것이라면, 후자는 현대적이고 정치문화적인 것입니다. 후자는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전혀 새로운 견해였고, 그것의 설명하는 방법도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를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사상가(예컨대 많은 학자들은 그를 현대의 대중사회를 예견하고, 20세기의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출현가능성을 시사한 정치사상가라고 평가)라고 하기도 하고, 몽테스키외와 더불어 정치문화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정치학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한 전자의 문제의식이 ≪미국의 민주주의≫ 1권의 주요주제라면, 후자의 문제의식은 주로 2권의 주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토크빌은 1권에서 신생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전자의 민주주의의 폐해를 새로운 헌정질서(정치체제)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예방하였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하여 그 원인, 배경, 과정, 결과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권에서는 민주국가가 된 미국의 정치문화와 시민문화 속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폐해에 대하여 경고하고 향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실천적 방안에 대하여 모색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1권 이후 5년 뒤에 출간된 2권은 1권만큼의 대중의 호응을 받지는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정치학자들은 1권보다는 2권의 문제의식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신생 미국 보다 민주화와 평등화가 부진하였던 당대의 유럽인들의 당면 문제가 1권의 주제에 있었다면, 현대의 우리들의 당면 문제는 2권의 주제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토크빌을 통해 읽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음모

우선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예상되는 폐해의 하나로 들고 있는 다수의 직접적․적극적․폭력적 횡포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전통적으로 플라톤 이래 反민주적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주의는 다수의 무지하고 가난한 빈민들이 직접 혹은 그들 자신의 대표를 통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한 정치체제로, 이러한 민주정체에서는 다수 빈민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억압하고 부유층들의 재산을 강탈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근대의 정치사상가들은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의 공포정치의 경험은 이를 입증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토크빌은 이러한 폐해는 ‘하찮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러한 폐해를 심각하고 중대한 폐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그러한 폐해는 이미 효과적으로 예방하였거나 향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실례로 신생 미국의 헌정질서(정치체제)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신생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모두 자유의 정신이 강력하고 지배적인 권위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던 시기에 자랐던 것이다. 그 투쟁이 끝났을 때, 격정에 들떠 있던 군중들은 언제나처럼 더 이상 있지도 않은 위험성에 대하여 계속 싸움을 벌일 것을 고집하는 반면에 이들은 중도에서 멈췄다. 그들은 확연하게 달성되었다는 점과 아메리카가 이제 우려해야 할 위험은 자유의 남용 때문에 일어나는 위험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열렬하고 성실하게 자유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거침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파괴에 대해서 결연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제한조치를 제의했다……결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의 생존은 두 가지 중요한 위험성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 즉 입법부가 선거구민의 의지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입법부에 다른 정부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나머지 하나이다. 다른 나라의 입법자들은 이런 폐해가 등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합중국의 입법자들은 모든 힘을 다해서 그 폐해의 힘을 줄였다.

전회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읽기에서, 저는 해밀턴과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헌법제정자들은 민주적 공화국을 열망하였지만, 그만큼 빈민과 노동자 등 사회의 다수였던 무산자(無産者) 계급으로부터 자신들의 공화국을 보호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이 구상한 대의제와 권력분립에 그러한 의도를 곳곳에 숨겨놓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신생미국이 이러한 헌정질서를 수립하고 30여년이 지난 후 미국의 헌정질서와 사회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방문한 프랑스의 젊은 귀족은, 미국 헌법제정자들의 이러한 反민주적 의도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제도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러한 신생 미국의 反민주적 정치기획이 다수 민중에 의한 다수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그들의 표현대로라면 ‘횡포’)를 충분히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귀족적이며 反민중적인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통하여, 30여년전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속에 잠재되어 있던 신생 미국 헌법제정자들의 또 다른 얼굴 즉 그들의 反민주적 의도와 실천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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