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세요, 2022년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일 년,
괴로운 일, 슬픈 일은 
바람에 훨훨 날아가세요.
새로운 희망을 기다립니다―

지난 한달 동안 전 세계 축구팬들을 즐겁게 해준 카타르월드컵이 18일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모든 경기가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마지막 타임아웃 휘슬이 울릴 때까지 거듭되는 긴장의 연속에 보는 이들을 아슬아슬 숨 막히게 했습니다. 전후반 90분에, 연장전 30분, 그래도 승부를 못 가려 승부차기까지 들어가 4:2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함으로써 경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긴장에 긴장을 더하는 아슬아슬한 순간, 순간의 연속에 스릴은 있었습니다. 특히 현지와의 시차 때문에 꼬박 밤을 새워야했던 한국의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경기는 ‘축구의 신’이라는 아르헨티나의 백전노장 리오넬 메시(35)와 ‘새로운 축구의 신’이라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23)의 개인기 대결이 더욱 볼만 했습니다. 나이차가 많지만 메시는 이미 ‘축구의 신’으로 인정받는 입장이고 음바페는 떠오르는 ‘새로운 신’으로 호칭되는 관계였기에 이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팬들의 열광은 당연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우승으로 1978, 1986년 우승이후 36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모든 경기가 그렇지만 이긴 자는 기쁨에 겨워 환호작약하고 패자는 절치부심(切齒腐心) 잠 못 이루는 것이 냉혹한 승부의 세계입니다. 결승전이 끝난 후 온 나라가 열광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실망한 프랑스 국민들의 서로 다른 상반된 모습이, 그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어제 오늘 한파가 심합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전국의 교수들이 연례행사로 시행하는 올 2022년 한국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얼마 전 대학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과이불개가 50.9%의 득표율로 1위를 했다고 합니다.

과이불개는 논어(論語)의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과이불개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도 나옵니다. 연산군이 소인(小人)을 쓰는 것에 대해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고치지 않았음을 비판하는 대목이 실록에 적혀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과이불개를 선정한데 대해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이 말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거나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박교수는 “과이불개를 선정한 더 큰 이유는 잘못을 고친 사례가 우리 역사 속에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니 그런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며 “특히 성군으로 불린 4대 세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며 이를 고치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세종의 반성과 대책 때문에 세종 재위기간 안전사고에 의한 대규모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잘못을 고치거나 처벌 받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진노해야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이불개를 선택한 다른 교수는 “자성과 갱신이 현명한 사람의 길인 반면, 자기 정당화로 과오를 덮으려 하는 것이 소인배의 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교수는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 보다 정쟁만 앞세운다”고 과이불개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연합뉴스)

전국을 휘몰아친 강추위에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이 움 추린 채 종종 걸음을 걷고 있다. /NEWSIS
전국을 휘몰아친 강추위에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이 움 추린 채 종종 걸음을 걷고 있다. /NEWSIS

짐작컨대 과이불개는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여야 정치인들,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소위 사회지도층,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경구이자 메시지로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기를 다반사(茶飯事)로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21세기가 시작된 김대중 정부 (1998~2003)시절부터 역대 대통령 임기 중 어떤 사자성어가 나왔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4년차이던 ▷2001년:오리무중(五里霧中・짙은 안개에 앞을 볼 수 없음)으로 시작해 ▷2002년:이합집산(離合集散・흩어졌다가 모이고, 모였다가 다시 흩어짐)이 선정됐고 노무현 정부(2003~2008) 시절인 ▷2003년:우왕좌왕(右往左往・이리 저리 왔다, 갔다하며 일이나 방향을 종잡지 못함)이 선정됐고 ▷2004년:당동벌이(黨同伐異・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배격함) ▷2005년:상화하택(上火下澤・서로 이반하고 분열함) ▷2006년:밀운불우(密雲不雨・하늘에 구름만 가득하고 비는 오지 않음) ▷2007년: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도 믿지 않는 일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임)을 선정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2008~20013)이 취임한 해인 ▷2008년에는 호질기의(護疾忌醫・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음)로 시작해 ▷2009년:방기곡경(旁岐曲逕・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으로 억지로 함) ▷2010년:장두로미(藏頭露尾・진실을 겅계 하지 않고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드러남) ▷2011년:엄이도종(掩耳盜鐘・나쁜 일을 하고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음)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혼탁하게 흐림)을 선정했습니다.

박근혜 정부(2013~2017) 시절인 ▷2013년에는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함)로 시작해 ▷2014년: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김) ▷2015년:혼용무도(昏庸無道・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가 어지러움) ▷2016년:군주민수(君舟民水・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였습니다.

문재인 정부(2017~2022)가 출범한 ▷2017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2018년: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길은 멀다) ▷2019년:공명지조(共命之鳥・상대가 죽으면 나도 죽는 줄 모르고 편 갈라 다툼) ▷2020년: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고양이와 쥐가 한패가 되었다)였습니다.

지난 20여년의 제시된 성어를 훑어 보건대 그 동안의 우리사회 세태의 흐름을 한눈에 일목요원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라고 해서 잘한 일,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으나 이를 통해서 민심을 헤아리고 정책을 시행 하는 데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마다 족집게처럼 콕콕 찍어 낸 네 글자야 말로 국민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에 서산일모(西山日暮) 중임도원(重任途遠)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서산에 해는 지는데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만하네’라는 불후의 명문입니다. 1300여 년 전 그 옛날, 옛날에도 이맘때면 세상이 어수선 했던지 연말 풍경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미상불(未嘗不), 오늘 우리 사회도 얽히고설키고 뒤엉켜 어수선 하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이제 지난 열두 달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사사건건 ‘국민, 국민’을 앞세워 거창한 명분으로 궤변을 일삼지는 않았는지,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듯 그렇게 살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는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가슴에 못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속한 정당이나 단체를 위해 교묘하게 위법, 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한다는 말입니다.

해질녘 석양빛은 찬란합니다. ―하루해가 저물매 황혼 빛이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려하매 귤 향기가 더욱 그윽하도다― 채근담의 말씀입니다. 2022년이여, 온갖 속상하고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모두, 모두 싸가지고 어서 가시게, 어서! ‘훠이~훠이! 훨훨~’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