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일모에

―다시 12월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
시인은 말합니다. 
“실패했다고 말하지 말라,“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12월. 나는 1년 전 바로 이맘때도, 그 전 해도, 또 그 전, 전해에도 한해가 기울었음을 아쉬운 소회로 토로(吐露)했는데, 올해 역시 가슴에 저미는 세월의 무상함이 다르지 않습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올 한해도 참으로 다사다난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큰 사건, 사고도 많았고, 국가적인 큰 행사도 치렀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의 참상을 외신을 통해 날마다 봐야하는 상황에 158명의 젊은이들이 졸지에 떼죽음을 당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慘事)는 온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슬프게 했습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안전한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었습니다.

올해 가장 큰 국가적 행사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부수립이후 스무 번 째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 등 총14명의 후보가 대거 출마하여 경쟁을 벌였습니다.

투표 결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639만 4815표를 얻어 1614만 7738표를 얻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표차는 24만 7077표. 비율로는 48.56%대 47.83%로 0.73%의 근소한 차이입니다. 두 사람의 득표 차이가 크지 않으니 선거판세가 예측불허의 막상막하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5월 10일 취임식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고 용산의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실을 꾸리고 업무를 시작함으로써 ‘용산시대’를 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업무형태의 변화에 이런 저런 구설과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구중궁궐이나 다름없던 청와대를 일반 국민에게 개방함으로써 윤석열 업적 1호로 새로운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6월 1일 시행된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 승리의 여세를 몬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4년 전엔 민주당이 14곳), 기초단체장 208곳 중 145곳을 차지했습니다.(4년전엔 민주당이 151곳). 민주당은 2018년 ‘압승’에서 4년 만에 ‘참패’로 쇠퇴해 정권을 국민의힘에 넘겨줬습니다.

민주당은 4년 전 서울시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을 차지했었고 경기도에서 시장 군수 31명 중 29명을 차지했었는데, 이번에는 서울에서 국민의힘이 22곳에서 승리한 것을 보면 민심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가를 보여준 실증사례가 되었습니다. 8월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1시간 동안 141.5mm의 폭우가 쏟아져 15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를 입혀 주민들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와중에도 11월 20일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서 ‘꿈의 제전’ 월드컵이 열려 세계인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1승1무1패로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보여주면서 세계랭킹 1위 브라질에게 1:4로 패했으나 국민들은 선수들의 선전에 “잘 싸웠다”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11일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제400회 임시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항의하며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좌석이 텅 비어있다. /NEWSIS
11일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열린 제400회 임시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항의하며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좌석이 텅 비어있다. /NEWSIS

우리 국민들은 지난 한 해동안 모두가 열심히 살았습니다. 코로나19로 찌든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나름대로 힘차게 달려 왔습니다. 미처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 온 숨 가쁜 한 해였습니다.

세상에는 남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으로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이익과 안녕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호사다마(好事多魔)로 반드시 궂은 일이 뒤따라오고, 궂은일에는 그것이 기회가 되어 좋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라는 옛 이야기가 바로 그를 가리키는 고사입니다.

우리는 허구한 날 희로애락(喜怒哀樂),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쁨으로 웃고 때로는 슬픔으로 눈물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하기에 누구는 너무 빨리 한 해를 보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너무 더딘 1년 365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숨을 가다듬고 겸허히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한 해를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좋은 일은 기억에 남기고 나쁜 일은 멀리 날려버리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내 탓이요,’ 반성하면서 남을 원망하지 말고 세모(歲暮)를 잘 넘겨야 하겠습니다. 비록 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놓고 충돌,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퇴장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을 지라도 말입니다.

2022년 12월 붉게 물든 석양녘에 도종환 시인의 ‘겨울나무’를 음미하고자 합니다.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