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상사

―일승일패는 병가상사입니다.
이기면 좋고
져도 괜찮은 월드컵.
하나 된 외침 “대~한민국!” 
정치인들, 왜 못 배웁니까―

손바닥이 땀에 젖었습니다. 순간, 순간 공수가 뒤바뀌는 긴박한 상황이 되풀이 되다보니 손에 땀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리 카타르까지 선수단을 뒤따라가 경기장에서 목청을 높이던 열성팬들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국내 곳곳에서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붉은 악마들이나 긴장을 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반 24분, 선제골에 이어 33분 추가골이 나오고 가나 선수들이 능란한 개인기로 계속 경기를 주도하자 “안 되겠구나”라고 다소 실망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후반전 들어 이강인이 교체로 들어가고 13분, 16분 조규성의 잇따른 멀티 골로 극적으로 2:2 동점이 되자 순식간에 분위기는 반전됐습니다. 아니, “야, 이길 수도 있겠네”라는 희망마저 솟구쳤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반 23분 다시 가나가 한 점을 추가해 3:2로 다시 앞서니 분위기는 이내 초조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후반 남은 시간이 몇 분 앞으로 다가오자 긴장감은 더 해갔습니다. 결국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탄식이 나왔습니다. 비길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한국을 응원하던 모든 이들의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결국 한국은 H조 4팀 가운데 가장 약체로 보았던 가나에게 2:3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28위, 가나 61위의 랭킹이 무색합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유달리 이변이 많았습니다. 최대이변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51위인 사우디아라비아가 3위의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이고, 24위인 일본이 ‘전차군단’ 독일을 격파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헨티나는 랭킹 3위에 세계적인 스타 리오넬 메시가 버티고 있는 팀으로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이고 보니 이변이 틀림없고 일본 또한 2014년 월드컵 우승팀인 독일을 꺾었다는 것이 이변임에 분명합니다. 또 랭킹 22위의 모로코가 2위의 벨기에를 2:0으로 꺾었다는 것 역시 이변중의 이변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런던 도박사들의 예측이 빗나가 골탕을 먹고 있다는 소식도 뉴스가 됐습니다. 자국 팀의 선전에 놀란 사우디 정부는 경기 다음 날을 국가 공휴일로 선포해 축제분위기에 들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번 월드컵은 ‘돈 잔치’나 다름없습니다.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 온 32개국 팀에게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는 총 상금 4억4천만 달러(약 6256억원)가 돌아갑니다. 이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4억 달러와 비교해 4000만 달러가 늘어난 규모입니다. 우승국에는 4200만 달러(약 597억원)를 지급하며 준우승국은 3000만 달러를 지급합니다. 2018년 우승 상금은 3800만 달러, 준우승 상금은 2800만 달러였습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나라들도 9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28억 원 정도를 챙겨 갈 수 있는 말 그대로 ‘돈 잔치’입니다.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16개국에 돌아가는 상금 합계만 한국 돈으로 2000억 원이 넘습니다.

16강 진출국에는 1300만 달러, 8강에 오르면 1700만 달러를 주며 3위 2700만 달러, 4위 2500만 달러를 지급합니다. 상금은 FIFA가 푸는 돈 보따리가 전부가 아닙니다.

FIFA는 월드컵에 선수를 보낸 전 세계 구단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합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경우 K리그에서 소속선수 3명이 월드컵에 출전한 전북현대가 69만7595달러, 당시 환율 기준으로 7억600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사진: 가나전이 열린 28일 알라이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두 골의 주인공 조규성선수가 황인범선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카타르=NEWSIS
가나전이 열린 28일 알라이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두 골의 주인공 조규성선수가 황인범선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카타르=NEWSIS

축구 전문매체 골닷컴에 따르면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 FIFA가 각 구단에 보상금으로 지급할 금액은 1억9000만 파운드, 약 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상금과 클럽 보상금 등을 더하면 약 1조원 이상의 돈이 출전국 협회와 선수들을 내보낸 클럽에 돌아간다는 계산이니 월드컵은 순수한 스포츠라기보다 ‘축구 전쟁’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싶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패전국에서 가차 없는 배상금을 싹쓸이 하듯 챙겨가기 때문입니다.

출전국 협회에서 선수들에게 내건 포상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단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어간 선수 26명은 대회 참가에 따른 기본 포상금 2000만원씩을 받고, 16강에 오르면 선수 1인당 1억 원 씩을 받습니다. 8강에 들면 2억 원으로 늘어납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 코치진은 계약에 따라 별도 포상금을 받고, 이미 본선 진출에 따른 보상금은 최종예선 10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기여도에 따라 각각 4000만원에서 1억 원 씩 받습니다. 최종 예선 통과에 따른 포상금 총액은 33억 원이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카타르 월드컵 우승 시 선수 1명 당 보너스 40만 유로(약5억5000만원)를 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에 2:0으로 져 16강 진출에 탈락했습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당시 3억8000만 원 정도의 보너스를 선수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축구공은 둥급니다. 언제 어디서든 건드리면 굴러가게 돼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격언도 생겨났습니다. 그러기에 이변이 일어나고 관중들은 의외의 승부에 박수를 보내고 환호합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즐기는 것으로 끝나야지, 생사를 건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 편이 이겼어도 상대편에게 박수를 쳐 주는 아량이 필요하고 진다하더라도 깨끗하게 질줄 아는 매너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정신입니다.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서도 교재로 쓰고 있다는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보면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항시 있는 일이니 지나치게 괘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물며 정신을 강조하는 스포츠 경기임에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축구는 국운이 걸린 전쟁이 아닙니다. 실력을 갖추고 운이 따르면 이기기도 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는 것이 경기의 속성입니다.

과거 언젠가 한・일전 때 70대 노인이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다 골을 먹자 충격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기를 그냥 경기로 보지 않고 죽고 살기로,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흥분이 지나친 결과였습니다.

어쨌든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그 투혼은 금메달감이 확실합니다. 코로나에, 이태원 참사에 국민들 사기가 떨어져 사회 분위기 전체가 침체된 상황에 월드컵을 통해 그나마 잠시라도 수심을 잊을 수 있었으니 선수단의 노고에 감사를 표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한마디 덧붙입니다. 여야정치인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하나가되어 외치는 것을 보았겠지요. “대~한민국!” 정치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일치된 박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 못합니까. 그것이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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