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글자

―말 한마디 놓고
외교 참사다, 조작이다,
소란한 여야 정치권. 
답은 가까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에 외교사절을 처음 보낸 것은 조선 고종 20년이던 1883년이었습니다. 미국은 한해 전 조선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주한공사로 루시어스 푸드를 보내 왔고 우리나라는 그 답례로 보빙사절단을 구성해 미국에 보냈던 것입니다. 보빙(報聘)이란 답례로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조선 정부는 사절단의 전권대신에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을 임명하고 부대신에 영의정의 아들 홍영식을, 종사관에 서광범, 외국 참찬관 겸 고문관에 미국인 로우엘, 수행원에 유길준, 최경석, 변수, 고영철, 현흥택 외에 중국어 통역관 우리탕 등 10명이었습니다. 조선사절단에는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국어->일본어->영어 등의 이중통역을 위해 중국어, 일본어 통역관도 데리고 갔습니다.

조선보빙사 일행은 인천에서 아시아함대 소속 모노카시호로 일본 요코하마(橫濱)에 입항했고 도쿄(東京)에서 약 1개월간 체류한 후 8월 15일 아라빅호로 태평양을 건너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습니다.

보빙사절단은 서쪽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쪽인 워싱턴까지 대륙횡단철도로 약 1주일을 달려 9월 13일 워싱턴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서 대통령은 하필 뉴욕에 가 있었기 때문에 보빙사 일행은 다시 뉴욕으로 달려가 9월 17일 대통령이 묵고있는 피브스호텔에 투숙합니다.

국새(國璽)가 찍힌 국서(國書)제정식은 이튿날인 18일 오전 11시에 호텔 대접견실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전권대신 민영익을 비롯하여 사절단 전원이 사모관대(紗帽冠帶)를 갖추고 일렬종대로 대접견실로 나아갔습니다. 흉배와 각대를 두른 청홍색깔의 차림은 조선 관복의 화려함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는 복장이 아니었습니다. 대접견실 중앙에 서 있던 아서 대통령에게 민영익을 선두로 일행이 차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큰 절을 올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악수 정도를 하려던 아서 대통령은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놀라움과 신선한 문화충격을 느낀 것입니다. 아서 대통령은 일행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실 보빙사절단도 생소한 풍경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큰절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사전에 의론을 했습니다. 어느 것이 대통령 의전에 걸 맞는 적절한 예절인지, 토론을 하던 도중 아서 대통령이 예정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조건반사적으로 왕에게 하듯이 모두가 큰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명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선보빙사절단은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접하면서 날마다 보는 것 마다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문화적인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1883년 9월 18일 아서 미국 대통령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조선보빙사절단원들./ NEWSIS
1883년 9월 18일 아서 미국 대통령을 향해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조선보빙사절단원들./ NEWSIS

보빙사절단이 머물렀던 호텔은 에디슨이 4년 전에 발명한 백열전구가 대낮처럼 비추었고 보빙사들은 ‘귀신의 짓’이라고 놀라다가 그것이 전기의 힘에 의한 전등이라는 것을 듣고는 모두가 감탄을 했습니다. 그들이 시찰한 뉴욕거리는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고 열차가 굉음을 내며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보빙사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알던 세계가 무너지는 충격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들 중 유길준은 공장을 시찰하다 전기 불을 보고 “귀신이 나왔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보빙사 일행이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에서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을 때는 덜커덩 소리에 지진이 난 줄 알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국서제정식의 역사적 의의는 첫째로 조선은 최초의 미국 방문을 통해 자주독립국가라는 사실을 세계만방으로부터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서에 ‘대조선국’, ‘대 군주’를 최초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연호를 버리고 ‘개국(開國)연호(年號)’만을 사용했습니다. 셋째로 조선은 주체의식을 살린 자주외교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국서제정식을 엄수한 보빙사 일행은 동부지방의 산업시찰 길에 올랐는데 그들이 유숙하는 호텔에는 본국에서 가져간 태극기를 옥상에 게양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미국을 다녀 온 보빙사들은 문명이 발전한 미국의 실상에 충격을 받고는 모두 놀라워했는데 전권대신인 민영익은 “암흑에서 태어나 광명을 보고, 다시 암흑으로 돌아 왔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조문과 유엔총회 연설,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5박 7일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 정국이 다시 소란합니다. 조문을 위해 갔던 영국에서는 교통정체로 제대로 조문도 못했다고 하고, 뉴욕에서의 한·일정상회담은 국기도 없이 격식도 안 갖춘 데다 30분 만에 상봉을 끝냈다 하여 회담이냐, 간담이냐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또 한·미정상회담은 48초간 마주서서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라니, 그걸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통역까지 네 사람이면 한 사람이 12초씩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솔직히 낯이 뜨거운 게 사실입니다. 거기다 바이든과 환담을 마친 윤 대통령이 “이☓✕”라는 상소리를 했다하여 진위 여부를 놓고 정국이 혼란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쪽에서는 그런말을 한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을 하고 의원들은 사건을 보도한 MBC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하는가 하면 더불어 민주당은 외교참사에 대한 책임이라며 대통령을 수행한 박진 외교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킵니다. 그러잖아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정치권은 지금 태풍에 휩싸인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니 할 말로 욕 좀 했으면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이✕✕”, 아니 “이새끼”라고 했으면 어떻습니까. 미국 대통령들도 화나면 욕합니다. ‘SON OF BITCH!’ 우리도 흔히 쓰는 ‘개새끼’입니다. 그걸 품위를 지킨답시고 신문마다, 방송마다 “이✕✕”라고 표현들을 합니다. 국민들 얼마나 답답한지 아십니까? 점잔, 그만 떨고 ‘이새끼’라고 쓰세요. 과거를 돌아보면 미국 대통령들, 레이건도, 트럼프도, 바이든도 비슷한 상말을 했습니다.

답은 가까이 있습니다. 국민의 힘 안에도 입바른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홍준표 대구시장 뭐라고 했습니까?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정면돌파를 해야지, 곤란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거짓이 거짓을 낳고 일은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유승민 전의원, 하태경 의원 등도 정면 돌파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긴 얘기할 것 없습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인 정치원로 이재오 전의원은 간단히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섯 글자면 될 것을 왜, 안하고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것입니다.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의 ‘뱃심’은 알아 줄만 합니다. 취임초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과는 한번 만났을 뿐인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듯 두 손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두 팔을 톡톡 다독이며 친밀감을 과시한 제스처는 여유 있어 보였기에 하는 말입니다. 189년 전 호텔 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던 조선보빙단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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