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죽는다

―잇따른 집단 자살사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에
가슴이 아픕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4년 2월 어느 날 신문 지면과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했던 뉴스 문자입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반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 일가족이 생활고를 못 견디고 집단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집 주인에게 남긴 짤막한 유서입니다.

당시 60세였던 어머니 박모씨는 35세였던 큰딸, 32세였던 작은 딸과 함께 살면서 인근 놀이공원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습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으나 비싼 병원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만화가 지망생인 작은 딸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었으나 빚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박씨의 남편은 사건이 일어나기 12년 전에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2005년 두 딸과 함께 석촌동으로 이사 온 어머니가 사실상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한 달 전에 넘어져 몸을 다쳐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면서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실의에 빠진 이들 가족은 생활비로 고통을 받던 끝에 전 재산 70만원을 집세 및 공과금으로 봉투에 넣고 유서를 남긴 채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을 한 것입니다.

비극적인 사건 전말이 알려지자 사회는 금방 들끓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짧지만 진정이 담긴 유서에 시민들은 감동했고 너나없이 입을 모아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 8월 21일, 이번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또 세 모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단으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세 모녀에, 가난에, 어쩌면 그렇게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로 비슷할 수가 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수원특례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이웃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확인한 결과 어머니와 두 딸이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방에는 어머니인 A(69)씨와 큰딸 B씨(49), 작은 딸 C씨(42)가 누워있었는데 이들 세 모녀는 이미 숨진 지 오래되어 많이 부패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어머니 A씨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 중이었고, 두 딸도 희소 난치병을 앓고 있었으며 지병과 빚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A씨는 아들이 있었으나 2년 전 불치병으로 인해 사망했고 남편 역시 그 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세 모녀는 원래 경기도 화성시에 주민등록이 돼있는데 채권자들의 빚 독촉을 피해 수원시로 옮겨온 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사회곳곳에서 며칠이 멀다하고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근년에 와 우리 주변에는 생활고를 못 이긴 가족들이 집단으로 자살을 하는 불행한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비극적인 사건으로, 사건이후 사회 보장제도 개선에 대한 많은 반성과 논쟁이 오갔습니다.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송파 사건은 소위 ‘세 모녀법’이라는 별칭으로 기초 생활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정안을 적용한다 해도 수원사건 당사자인 세 모녀는 국민 생활 보장 제도의 수급자는 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유가족도 없고, 영정사진 조차 없는 수원 세 모녀 빈소에 한 시민이 조화를 놓고 있다. / NEWSIS
유가족도 없고, 영정사진 조차 없는 수원 세 모녀 빈소에 한 시민이 조화를 놓고 있다. / NEWSIS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19년 11월 16일 탈북민 한성옥(42)씨와 여섯 살 난 어린 아들 김동진 군이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숨진 지 적어도 두 달이상은 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한씨 모자의 사망 사건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한씨의 통장에 들어 있던 마지막 잔금 3,858원을 5월 13일 통장에서 인출해 잔고가 0원이 돼 있었고 얼마 후 모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에 까지 알려져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요약해 보도했습니다. “그녀는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했고,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죽었다.”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당사자가 신청할 경우에만 혜택이 돌아오는 ‘신청주의’입니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도 본인이 자치 단체에 신청을 하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제도상의 허점이 있는 것입니다. 위 두 사건의 경우도 제도 자체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복지제도는 ‘가난증명시험’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증명 절차가 복잡해 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복지 연금 제도는 당사자가 규정을 잘 알지 못하면 신청할 수도 없고 또한 안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해 혜택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수원 세 모녀는 마지막 길도 쓸쓸히 공영장례로 엄수되었습니다. 공영장례란 사망자의 유족이 없을 경우 자치단체에서 장례를 맡아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먼 친척이 있었으나 시신을 인수하기를 거절해 시가 장례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영정사진 조차 없는 빈소에는 이따금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시민들의 조문이 있었을 뿐입니다. 세 모녀의 시신은 화장되어 먼저 죽은 가족들 곁에 묻혔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백서에 보면 1983년 3,471명이던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2000년 6,444명으로 늘어났고 2010년 1만 5,566명, 2011년 1만 5,906명으로 크게 증가 했습니다. 2020년 1만3,195명, 2021년 1만 2,975명입니다. 이를 365일로 나누어 보면 날마다 4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계산이 됩니다.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자살을 한다? 예삿일이 아닙니다. 소위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송파 세 모녀 집단자살 때 박근혜 대통령은 안타까움을 밝히고 “진정한 새 정치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이번 수원 세 모녀의 죽음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복지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그런 주거지를 이전해서 사는 분들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중앙정부에서 이런 분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자치단체와 협력해 이런 일들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국민들을 각별히 살피겠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통령인들 그 이상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려운 국민 입장에서 들을 때 그 소리는 ‘가을 하늘의 뜬 구름’같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옛말에도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수원 세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보도된 날 텔레비전 화면에는 어느 전 스포츠 스타의 호화결혼식 장식에 꽃값만 중형차 한 대 값이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보도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가난 때문에 일가족이 집단 자살을 하고, 한쪽에서는 돈으로 분탕질을 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두 모습이 어둠과 빛이 되어 선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9월입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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