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다

―굽은 사람 위에
곧은 사람을 놔야 해요,
나라가 잘 되는 것도 인사요,
망하는 것도 인사입니다. 
역사에서 답을 찾으세요―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던 중국 전한(前漢)때 무장(武將)이었던 진평(陳平?∼BC78)은 지략이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애초 그는 위(魏)나라에 있었으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초(楚)나라의 항우(項羽)밑으로 갔지만 거기서도 중용되지 않자 다시 한(漢)나라로 유방(劉邦)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비범함을 금방 알아챈 유방은 군을 감독하는 도위(都尉)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러자 장수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진평은 겉만 그럴싸할 뿐, 속은 썩은 인물입니다. 옛날 고향에 있을 때는 제 형수와 밀통(密通)을 하고 한때는 위(魏)나라를 섬기다 인정을 못 받자 초(楚)의 항우에게로 옮겨가고, 그곳에서도 중용되지 못하자 도망쳐 우리 한(漢)나라로 굴러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그런 자에게 군의 요직을 주시니 이건 안 될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자는 장수들로부터 뒷돈까지 챙기고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유방은 진평을 추천한 근신(近臣)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어찌하여 그런 사람을 추천하였는가?”추궁합니다. 위무지는 “신이 말씀 드린 것은 그의 능력이고, 대왕께서 묻고 있는 것은 그의 행실입니다. 지금 우리 한나라는 초나라와 백척간두에서, 사느냐 죽느냐 맞서있는 위급한 상황인데 지모가 뛰어난 자를 발탁하여 나라를 살리면 됐지, 형수나 뒷돈이 그리 중하단 말입니까.”

유방이 이번에는 진평을 불러 “그대가 위나라, 초나라를 섬길 때 뜻대로 되지 않으니 한나라로 온 것 아닌가?”하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진평은 “제가 위왕을 섬길 때 위왕은 저의 계책을 써주지 않았고 초나라의 항왕은 남을 믿지 못해 항씨 아니면 처족(妻族)들만을 중용했습니다. 신이 듣건대 한왕께서는 두루 인재를 등용하신다하기에, 그래 이곳에 온 것입니다. 또한 뒷돈을 받은 것은 신이 혈혈단신 수중에 무일푼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의 계책이 쓸 만하면 저를 채택하시고 그렇지 않으시면 받았던 돈은 모두 되돌려 놓겠습니다.”

유방은 그의 솔직함에 감탄하여 후히 상을 내리고 자신과 함께 수레를 타고 다니며 장수들을 감독하는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중용하니 감히 누구도 불평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진평은 여러 싸움에서 공을 세워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고 뒷날 승상(丞相)의 자리에 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승상세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천여 년 전 그때는 영웅호걸들이 천하를 놓고 말발굽을 울리며 쟁패를 벌이던 난세(亂世)였기에 과거가 어땠고 행실이 좋지 못했어도 싸움만 잘하는 인물이면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명문출신으로 조건이 훨씬 유리했던 항우가 동네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에게 몰락한 것은 결국 용인술(用人術) 때문이었습니다.

 2000여 년 전 천하를 놓고 쟁패를 벌인 유방(왼쪽)과 항우. 이들의 승패는 용인술에서 판가름 났다.
/ google

 

의심이 많고 편협했던 항우는 좋은 인물이 곁에 있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해 번번이 기회를 놓쳤고 도량이 넓어 출신을 가리지 않고 포용했던 유방은 사방의 인재들을 두루 기용해 대업을 달성했던 것입니다.

진평만이 아니라 항우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한신(韓信) 역시 당초 항우 수하의 명장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적으로 만들었고 범증(范增)이라는 뛰어난 책사(策士)가 있었으나 그 역시 떠나 보냈 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방에게는 소하, 장량, 한신, 진평과 같은 기라성 같은 막료들이 있었기에 진과 초를 굴복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방은 용인술의 귀재였던 셈입니다.

중국의 인재학에는 “인재는 데려다 쓰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모셔다 따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47세의 유비가 27세의 자식 같은 시골청년 제갈량을 세 번 씩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三顧草廬)끝에 모셔다 쓴 고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날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정치를 잘 하려면 어떻게 사람을 써야 되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곧은 사람을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된다. 그렇지 않고 곧은 사람 위에 굽은 사람을 놓으면 안 된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입니다.

흔히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사람을 잘 쓰고 못쓰고 하는 용인술(用人術)에 따라 모든 일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이 명언은 자고로 인사의 금과옥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허구한 날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인사야 말로 어렵기는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난세엔 난세의 인물이 있고, 평시에는 평시의 인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난세이든 태평성대이든 근본이 인간다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바탕이 그른 인간이라면 발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옥석을 가려 그것을 선택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임명권자에게 있고 그 책임 또한 임명권자가 져야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인재가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찾으면 있습니다. 국무총리나 장관, 청와대 비서가 ‘만물박사’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 논문이나 베끼는 가짜박사, 위장전입을 일삼고 부동산투기로 이력이 난 사람, 요리 빠지고 조리 빠져 군대 안가고, 자식마저 기피시킨 사람들 말고 뇌물 안 먹는 깨끗한 사람, 있습니다. 나쁜 짓 안하고 살아온 사람들, 있습니다. 2천 년 전 난세가 아닌 21세기 이 밝은 세상, 능력도 있고 진취적이고, 도덕적인 깨끗한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바른 사람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말 잘 듣는 만만한 자들을 찾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꼭 어느 지역 출신이어야만 되고 어느 대학을 나와야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늦으나마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사람들 좀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근본이 돼 먹은 사람 말입니다.

인사가 만사를 좌우 한다면 바꿔 말해 만사는 인사에 달려있다는 것인데 허구한 날 내 사람, 네 사람 따지다 보니 실패한 인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망사(亡事)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두 달에 신뢰도가 30%대로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한참 신바람이 나야 할 초장인데 지지율이 그 정도라면 어쩐지 정상은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첫 번째 원인이 인사에 있다는 것이 중론인 듯합니다. 그것 보세요. 옛말이 그르지 않습니다. 역사에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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