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

―약식회견이지만
기자들과 묻고 답하는
대면회견은 긍정적입니다.
단지 양날의 칼처럼 
조마조마한 게 문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으로 지금은 용도폐기 되어 텅 빈 사무실이 되었지만 지난 5월까지 대통령 집무실이 있던 서울 종로구의 청와대에는 춘추관이라는 출입기자실이 있었습니다. 출입기자실이란 신문·방송 등 언론사의 취재기자들이 매일 드나들면서 대통령의 국정수행 상황을 수시로 기사화 해 본사로 송고하며 상주하던 곳을 말합니다.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위한 장소로 1990년 준공되었는데 연건평 1,028평 규모의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춘추관이란 명칭은 고려·조선시대에 역사기록을 맡아 보던 기관인 춘추관(春秋館)에서 따온 이름인데 춘추라는 용어는 중국의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인 ‘春秋’(춘추)에서 따온 말로 서슬 퍼런 춘추필봉의 엄정한 자세로 기사를 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의 동편 입구에 독립 건물로 자리 잡은 춘추관의 입구 2층 망루(望樓)에는 그 옛날 왕조시대 백성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신문고를 뻔 따 커다란 북을 올려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면 로비 천정에 TV모니터 20여대를 조립해 만든 백남준의 비디오작품이 이곳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었습니다.

춘추관에는 대통령이 연두회견이나 중요한 국정사항을 발표하는 대형기자회견장이 있고 소형 회견장에 식당, 기자들의 휴식을 위한 사우나까지 갖추고 있으니 기자실로만 말한다면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워싱턴의 백악관 기자실이나 도쿄의 총리 집무실 기자실에 비해 환경이나 시설이 잘돼 있어 미국이나 일본기자들이 와서 보고는 놀랐다고 할 정도입니다.

밖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마다 몇 차례 행해지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라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미리 짜놓은 각본에 의해 연출한 쇼라는 사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이 재임하던 1960~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의 기자회견은 철저하게 각색된 연출이었습니다. 기자회견 하루 전 질문할 기자들을 미리 선정하고, 그들로부터 질문내용을 제출 받아 비서관들이 모범 답안을 만들고, 대통령의 마음에 들도록 사전 녹화를 해서 편집된 필름으로 당일 생방송을 하는 것처럼 위장방송을 하곤 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국민들은 당연히 실시간 생방송을 하는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견은 회견이되 가짜 생방송이었던 것입니다.

평소 출입기자들은 아침에 춘추관에 나가면 각자의 책상에 공보관실에서 준비해놓은 보도 자료들을 보게 됩니다. 문서에는 대통령의 당일일정은 물론 회의장에서의 대통령 발언 내용이 토씨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예컨대 ‘말씀자료’라는 원고에는 “안녕하십니까. 오늘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 말 조차 꼼꼼히 적어 놓아 대통령이 그대로 읽어야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철저하게 원고대로 읽을 수밖에 없게 미리 각본을 짜놓은 것입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해서 청와대 경내를 자유롭게 다니며 취재를 하거나 대통령을 매일 대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식 행사에는 2,3명의 기자가 대표로 취재를 해서 나누어 주는 풀(Pool)기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말이 출입기자이지 실제로 날마다 청와대를 드나들어도 대통령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따금 오찬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전체기자들이 대통령과 함께 점심을 드는 스케줄이 있어 그때 얼굴을 보는 것이 유일한 대면입니다.

필자는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일선 취재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했으나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적은 몇 번 없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가 80명이었는데 현재는 무려 1,000여명이나 된다고 하던가.

용산 대통령실 로비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NEWSIS
용산 대통령실 로비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NEWSIS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을 하고서부터 전임 대통령들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과 가까이 소통을 한다며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고 서초동의 사저에서 용산의 집무실로 출근을 하면서 청사에 도착과 동시에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 약식회견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름 하여 ‘도어스테핑(Doorstepping)’입니다. 전임 대통령 때 못 보던 모습입니다.

도어스테핑은 미리 순서를 정해 놓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기자이던 큰 소로 먼저 묻는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마련인데 대통령은 보통 3~4개의 질문에 답을 합니다.

윤 대통령의 출근 길 도어스테핑은 공식 기자회견이나 대변인 발표에 길 들여진 기자들은 물론 관계자나 일부 국민들로부터 매우 신선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구중궁궐 속의 임금님처럼 갇혀 있다시피 한 대통령이 날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말하는 것이야 말로 처음 보는 장면일 뿐 아니라 기자로서는 살아있는 생생한 기사를 취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에 못 보던 새로운 실험인 만큼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에 대한 시중의 평가는 다양합니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사고가 날거다”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청와대라는 음습한 곳을 떠나 용산 대통령 시대에 맞게 국민과 직접 소통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대통령의 정제 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거나 국정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답변 한 것을 보면 ▷6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보수단체 시위에 대해 묻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인데 법에 따라 되지 않겠나” ▷8일 검찰 편중인사 비판에 “과거에도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하지 않았나” ▷10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 후보자 만취음주운전 전력에 대해 묻자 “여러 상황이나 가벌성, 도덕성 같은 걸 따져 봐야” ▷15일 김건희 여사 보좌 제2부속실 설치 필요성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여론 들어가며 차차 생각해 보겠다. 방법 알려 달라” ▷17일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보복 수사 논란에 대해 묻자, “민주당 때는 안 그랬나” ▷23일 경찰 인사 번복논란에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어이없는 공무원으로 할 수 없는 과오” ▷24일 이정식 고용부장관 주52시간제 개편 발표에 “보고 받지 못한 게 언론에 나왔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정치적 공방의 빌미가 되기 십상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사저 극우단체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 되는 판”이라는 말은 시위를 묵인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검찰출신 편중인사 비판을 놓고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는 발언도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발언도 국정최고책임자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 장관이 발표한 것을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하니,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혼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일부 신문은 사설에서도 대통령의 화법을 문제 삼았습니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대통령이 출근 길 현안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대통령실 내부 정리가 안된 입장이 여과없이 표출돼선 곤란하다. 정제되지 않은 불필요한 갈등과 혼선등 야기한다한다는 것을 유의해야한다. 대통령은 신중하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겨레는 ‘소통과 독선 사이’ 제목의 칼럼에서 “대통령이 자주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것은 긍정 평가해야한다. 하지만 ‘안 하는 것 보다 낫다’로 그쳐선 안 된다”며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판 여론을 수용하기보다 ‘마이웨이’를 강변하는 것은 반쪽 소통이라 지적했습니다. 이어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늘어 난 대통령의 말들이 주로 무엇을 보여주는가이다. ‘옛 대통령과 싸우는 새 대통령’이지 싶다”며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이 자기 옹호나 항변을 듣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민심은 어느 순간 대통령이 앞으로 뭘 할 것인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묻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대통령의 출근 시간에 맞춰 기자들이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우루루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은 과거의 기자입장에서 볼 때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말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초임이 아니라 몇 차례씩 연임을 한 미국의 대통령이나 일본의 총리도 실언을 하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얼굴을 마주하고 묻고 답하는 장면은 신선함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임 대통령들이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여줬으니 새로운 대통령 ‘문화’를 만든 것은 확실합니다.

남이 하던 것을 흉내 내 따라 하기는 쉬워도 내가 처음 무엇을 시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6월 30일 취임 5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첫 ‘업적’이라고나 할까. 그 한마디에 인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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