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을 추모하는 6월.
겸허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가신님들의 은혜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신록의 계절입니다. 사방에 줄지어 있는 산들은 도화지에 물감을 칠하듯 날마다 연록색의 싱그러운 색깔로 바꿔갑니다. 자연의 평범한 순환이지만 그것은 삶에 지쳐있는 인간들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가정의 달 5월’이 가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합니다. ‘護國報勳’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그 빛나는 공훈에 마음으로나마 보답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체 왜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 된 것일까. 6월이 ‘호국보훈의 달’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입니다.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해 1961년 설립된 군사원호청이 국가보훈처로 이름이 바뀌면서 6월이 ‘보훈의 달’로 정해진 것입니다. 당시 ‘보훈의 달’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의 시작은 1952년의 군경원호강조기간으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당시 6·25전쟁에서 희생된 분들과 전투 중 부상을 당한 상이군인을 돕기 위해 군경원호강조기간이 6월로 정해졌는데, 원호처 설립이후 국가유공자를 위한 본격적인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추모의 기간(6월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11일~20일),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21~30일)으로 나누어 기간별 특성에 맞는 호국보훈행사를 개최해 왔습니다.

6월은 국가의 안위와 연관되는 날이 많이 있습니다. 1일은 의병의 날, 6일은 현충일, 25일은 한국전쟁 발발일, 29일은 제2연평해전일 등입니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된 것은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중요한 날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반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6월1일 ‘의병의 날’은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의 독립군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010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병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붉은 옷을 입고 왜구(倭寇)와 맞서 싸운 곽재우 장군(1552~1617)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6월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한 것도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이 음력 4월22일(양력 환산 6월1일)인데서 유래했습니다.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장병과 순국선열의 충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며 많은 희생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휴전 이후 1956년, 국가의 존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충일이 지정되었습니다.

6월 25일은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북위 38도선 남북군사분계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감행하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기까지 3년여 계속된 전쟁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을 포함해 77만 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되었고 전쟁으로 인한 이재민이 1,000여 만 명이 넘을 정도로 상처는 컸습니다. 6·25전쟁은 휴전 이후 현재까지 69년 동안을 지속되어오고 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불안한 휴전상태입니다.

해 마다 맞이하는 ‘호국 보훈의 달’ 포스터.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을 생각합니다. /국가보훈처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 한계선(NLL)근처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포격으로부터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벌어진 해전입니다. 당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선제기습포격을 한 북한경비정을 상대로 우리 해군은 교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아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들의 활약상은 2015년 영화 ‘연평해전’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자료:국가보훈처·국가기록원)

우리는 그동안 현충일을 맞으면 아침에 대충 조기(弔旗)를 달고, 10시 정각 전국 동시사이렌에 맞춰 전 국민이 1분간 묵념을 올리고,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삼가고 하루를 조용히 보내는 것으로 관행을 삼아왔습니다. 그리고 현충일은 하루 쉬는 공휴일쯤으로 알고 대충 지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1950년대 소득 100달러의 가난한 나라가 국민소득 3만5000달러의 경제 강국이 된 것도, 그들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분들의 헌신위에 오늘 이 나라가 있고 우리 국민들이 누리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시민의식을 갖고 하루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의 도리요, 의무이기도 합니다.

일반 가정에서 조상의 기일을 맞으면 온 가족이 몸가짐을 바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에 임하듯이 국민 개개인도 자세를 가다듬고 차분한 태도로 하루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과거 전란을 보지 못하고 자라난 어린아이들에게 교훈이 되어 바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지금 전국에는 서울현충원을 비롯해 대전현충원이 있고 이천(경기), 영천(경북), 임실(전북), 산청(경남), 괴산(충북), 제주(제주)등에 호국원이, 서울에 국립4·19묘지, 경남 창원에 국립3·15묘지(창원), 광주직할시에 국립5·18묘지가 있으며 대구직할시에 국립신암선열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선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올해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 이어 6월 1일 지방선거까지 겹쳐 온 사회가 온통 선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그나마 호국보훈 분위기가 예년과 다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선거 여파로 민심은 둘로 갈려 사회 분위기 역시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다시 한 번 역사와 민족을 생각하는 자세로 6월 ‘호국의 달’을 보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6·25전쟁이 멈춘 뒤 모윤숙 시인이 발표한 시 한수를 옮겨 적습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볕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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