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덕담

―상대를 격려하기 위한 덕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말이
상처가 된다면  
그것은 실수입니다―

입춘(立春)이 지났습니다. 글자 그대로 봄이 시작된다 함이니 절기상으로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하기야 저 남녘에는 동백(冬柏)꽃이 핀지가 한참이라고 하는데 웬걸,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내려가는 추운날씨이다 보니 봄 얘기하기가 무색해 지긴 합니다.

입춘은 일 년 24절기 중 첫 번째로 기상 예보가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에는 춘하추동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의 시그널 역할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날이 되면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붓글씨를 써서 양쪽 대문, 기둥, 천정, 벽에 대련(對聯)으로 붙이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밝은 봄이 오니 좋은 일이 많이 오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원문인데 이를 입춘축(立春祝), 춘첩(春帖), 입춘서(立春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필 이때가 되면 어김없이 강추위가 찾아와 봄이 온 줄 알던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곤 합니다. 그러하니 “입춘에 장독 얼어 터진다”고도 하고 “이거, 춘첩을 거꾸로 붙였나?”하고 구시렁대곤 했습니다. “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는 푸념을 할 정도이니 하여튼 자연의 신비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본래 24절기는 중국 대륙 황허(黃河) 북쪽인 화베이(華北)지방을 중심으로 설정된 것이라서 우리나라와는 지형 상 차이가 많아 실제 날씨와 잘 맞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그러나 긴 겨울에 지친 사람들은 ‘입춘이 왔다’는 소식 그 자체만으로도 정서적으로 봄의 희망 같은 것을 느끼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설을 쇠고 나니 만나는 사람들 마다 세시풍속대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유행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이미 양력 새해에 했지만 기성세대 사람들은 옛 습관대로 다시 또 설 인사를 하게 됩니다. 소위 설 덕담(德談)입니다.

덕담이란 남이 잘 되기를 기원하며 주고받는 ‘좋은 말’입니다. 덕담은 새해 설 인사로 많이 쓰곤 하지만 일상에서도 상대에 대한 예절의 표시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친구와 같은 평교간(平交間)이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도 정중하게 건네는 것이 덕담의 예절입니다.

설 덕담은 보통 “아들을 낳으라”는 생자(生子), “벼슬을 하라”는 득관(得官), “부자가 되라”는 치부(致富) 등에 관한 것 등이 주 내용이지만 그 밖에도 상대가 원하는 것에 대해 용기를 주는 격려성 내용을 말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말에는 ‘영적(靈的)인 힘’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 몇 마디로 상대가 기뻐한다면 그 또한 소기의 효과는 있는 셈이고 실제로 덕담대로 일이 잘 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 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덕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 세종 때 판중추부사였던 민대생(閔大生)은 나이 92세 되던 설날아침 조카들로부터 세배를 받았습니다. 그 중 한 조카가 공손히 절을 하고 나서 “부디 백세향수(百歲享壽) 누리십시오”하고 축수(祝壽)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민대생은 “고맙네”라고 답하는 대신 “100세까지 살라면 이제 몇 해후면 죽으란 말이구나. 그런 박복한 인사가 어디 있는가”하고 갑자기 노여운 빛을 짓는 게 아닌가. 민대생은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음식도 권하지 않은 채 조카를 물러가게 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 선수(22·강원도청)가 1500m경기에서 1위로 골인해 우승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돌고 있다. /베이징=NEWSIS
한국 쇼트트랙 대표 황대헌 선수(22·강원도청)가 1500m경기에서 1위로 골인해 우승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돌고 있다. /베이징=NEWSIS

 

그때 밖에서 이를 지켜본 다른 조카는 넙죽 절을 하고 나서 “100세를 사시고, 또 100세를 사십시오”하고 덕담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민대생은 “암, 그렇고말고. 축수를 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도리이지”하고 그제 서야 화를 풀고 밝은 모습으로 조카들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는 성종 때 문신(文臣)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전해 오는 야사(野史)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에 따라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듯 상대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서운함을 느끼게도 하는 것이 바로 인사말입니다. 덕담이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덕담은 상대에 따라,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에 맞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경우, 덕담이, 덕담이 아니고 분위기만 어색하게 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들 낳기를 고대(苦待)하는 집에 가서 딸만 낳은 며느리에게 “빨리 아들을 낳아야지”라고 하고, 혼기를 놓친 노처녀에게 “올해 몇 살이야? 왜 시집안가? 어서 가야지”하고 채근하는 것, 또 취업을 못해 고민이 많은 젊은이에게 “빨리 취직해서 돈 벌어”한다거나 입시에 낙방한 재수, 삼수생에게 “이번에는 좋은 대학에 합격할 거지?”한다면 그것은 덕담이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흉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입을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합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니 말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래 옛 어른들은 “한마디 말을 하려거든 세 번 생각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을 강조했습니다.

내달 9일의 20대 대선을 20여일 남겨 놓고 경쟁이 과열되면서 선거판이 온통 악담으로 넘쳐 나고 있습니다. 마치 험담(險談)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들은 날마다 기하급수적인 선심성 공약을 쏟아 내기에 여념이 없고 관계자들 역시 상하 없이 마구 상대를 헐뜯고 약점을 폭로하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으니 이쯤 되면 국민들을 실망을 넘어 짜증까지 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후진국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을 말려야 할 사회 원로들조차 이쪽, 저쪽 편을 갈라 지지성명을 남발하고 있으니 그 또한 낯 뜨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거기다 그 많은 신문 방송들도 떼를 지어 마구 정보를 퍼 나르며 불에 기름을 붓고있으니 지금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직자를 뽑거나 성인군자를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의 인격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깨끗한 일꾼을 뽑기 위해 선거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능력이 있어서 국가를 태평하게, 국민을 평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말입니다.

선거판에서 덕담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경쟁이 과열된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 금도(襟度)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선거를 주도하고 있는 여야 지도부의 일대 각성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은 엊그제 밤 베이징의 서우드(首都)경기장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쟁취하는 황대헌 선수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텃세도 없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정치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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