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지족

―부족하나 족하다 생각하면
매사에 여유가 있고
족하나 부족하다 생각하면
항상 부족한 법입니다. 
그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입니다.

옛날에 한 상인(商人)이 일꾼을 데리고 먼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강가에 다다른 두 사람은 요기를 하려고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느닷없이 까마귀 떼가 몰려 와 까악! 까악! 하고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 했습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凶兆)라면서 몹시 언짢아하는데 일꾼은 빙그레 웃으며 태연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일꾼에게 품삯을 주면서 물었습니다. “아까, 까마귀들이 흉측하게 울어댈 때 그대가 웃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꾼은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이 있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차지하면 당신은 부자가 되고, 우리 까마귀들은 그 시체를 먹을 수가 있다고 꾀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 뭐라고? 그러면 자네는 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나는 전생에 탐욕심 때문에 그 과보(果報)로 현생을 가난한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탐욕으로 죄를 짓는다면 그 과보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리기는 싫습니다.” 일꾼은 조용히 웃으며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남의 짐을 옮겨주고 사는 비천한 일을 할지언정 바르고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를 실천 했던 것입니다.

조선 중종 때 문신 김정국(1485~1541)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선비들이 죽어나갈 때, 서른넷의 나이에 동부승지(同副承旨)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낙향(落鄕)해 고향마을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칭하며 살았습니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데, 녹봉(祿俸)도 끊긴 그가 ‘팔여’라고 한 진심을 몰라 친한 친구가 뜻을 묻자, 김정국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①토란국에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②따뜻한 온돌방에서 넉넉히 잠을 자고, ③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④서가(書架)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⑤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鑑賞)하고, ⑥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⑦눈 속에 핀 매화(梅花)와 서리 맞은 국화(菊花) 향기(香氣)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⑧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들은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많다네. ①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②휘황(輝煌)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③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④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⑤아리따운 기생(妓生)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⑥희귀(稀貴)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⑦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⑧부족함을 걱정 하였다고 전해온다 하네.”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네 글자에 모두 들어간 입 구(口) 자를 가운데 쓰고 나머지 네 글자를 상우좌하(上右左下)에 써서 네 글자가 모여 한 문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19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김동연 세계문자서예협회 이사장의 일필휘지 ‘吾唯知足.’

글자를 풀이 해보면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나 오(吾), 오직 유(唯), 알 지(知), 족할 족(足)이니 ‘나 스스로 오직 만족함을 안다.’ 라는 뜻으로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현재 가진 것에 만족(滿足)하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 말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열반(涅槃)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으로 남긴 유언으로 ‘유교경(遺敎經)’에 기록된 글입니다.

‘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不知足者 雖富貧 知足知人 雖貧而富). ‘족(足)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富裕)해도 가난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부유하다.’는 뜻과 같습니다.

대저 인간의 행, 불행은 나와 남을 비교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나는 나, 나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인생은 오직 내가 살아가는 그대로입니다. 행복과 불행도 간발의 차이입니다. 행복의 행(幸)자와 맵다는 매울 신(辛)자는 뜻은 180도 반대이지만 글자는 첫 한 획(ㅡ)의 차이로 뜻과 음이 달라집니다.

명심보감에도 이런 글이 있습니다. 부족지족매유여(不足知足每有餘) 족이부족상부족(足而不足常不足). ‘부족하나 족함을 알면 매사 여유가 있고 족하나 부족하다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엊그제 19일은 음력 사월 초파일, 2565년 석가(釋迦) 탄신일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행사는 대규모 행사 대신 간소화되어 조용히 치러졌지만 석가모니의 높고 넓은 뜻은 온 누리에 골고루 퍼졌을 것입니다.

로마교황청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해마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깨달음, 반열반(般涅槃)에 드심을 온 세상의 불자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온과 희망이 깃들기를 기도드린다”고 축하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불교 쪽에서 천주교에 축하를 보내는데 대한 답례입니다. 두 종교의 모습이 험한 세상에 아름다운 빛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두가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나무아미타불.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