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선종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정 추기경은 마지막 떠나면서
‘평화’와 ‘행복’을 
작별인사로 남겼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이 지난 27일 밤 향년 90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했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의 안타까움 속에 5일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에서 정 추기경은 생전의 인자한 얼굴 그대로 유리 관속에 누워 신자들의 조문을 받았습니다.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아버지였다면 정 추기경님은 어머니와 같이 따듯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우리들을 품어주셨습니다”라고 추모했습니다. 염 추기경은 고인이 1970년 주교서품을 받으며 첫 사목 표어로 삼았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언급했습니다. “정추기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장기 기증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며 “정추기경은 언제나 물질로 부터의 자유로운 마음이었고, 자유로운 분이셨다”고 생전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던 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이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데 비해 정추기경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청년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이 민주화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경찰에 쫓길 때면 명동성당을 은신처로 숨게 해주신 분이었고 정 추기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주신 어머니 같은 분이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일제 치하이던 1931년 12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51년 서울대학교 화공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중퇴 한뒤 가톨릭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어 성직자의 길로 나섰습니다.

1968년 로마 우르바노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고 교회법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70년 6월, 39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주교로 임명돼 청주교구장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8년간 청주교구를 이끌었고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그 뒤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2012년 5월 서울 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해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노년을 정리하던 중 올봄 노환으로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정 추기경은 “깨끗하게 편안한 선종을 준비하고 싶다”면서 수술과 연명치료를 거부했으며 두 달 동안 투병을 거듭하다 4월 27일 밤 눈을 감았습니다. 올 2021년은 정 추기경이 1961년 사제 서품을 받은 지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데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세상과 작별을 했습니다.

정 추기경은 1970년부터 1998년까지 28년 동안을 청주 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청주와 많은 인연을 쌓았습니다. 그는 오웅진 신부가 주도한 음성꽃동네를 적극 지원해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명소로 성장시켰으며 1998년 청원군(현 청주시) 현도면에 꽃동네대학교를 설립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시절 청주시 영동의 주교관에 방문객이라도 들를라치면 일반 사제들과 다름없는 수수한 복장에 늘 검정고무신을 슬리퍼 대용으로 신고 집안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따듯하게 맞곤 했습니다. 정 추기경은 청주에서 장기간을 생활 했기에 교구 관내에는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신도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 같은 인자함으로 신도들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가 평소 얼마나 사람을 따뜻하게 대했는가 하면 1990년대 현직에 있었던 한 도지사는 퇴임 시 정 교구장을 찾아가 재임 중 겪었던 고충을 눈물로 하소연해 주변이 숙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정 추기경이 1970년 주교로 임명 된 뒤 그의 적극적인 사목 활동으로 4만8000명에 그쳤던 교구 신자 수는 1990년 8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교회법 권위자로 잘 알려진 정 추기경은 매년 책을 쓰는 신부로 유명합니다. 1955년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시작으로 그가 우리말로 번역한 역서는 14권, 저서로는 1961년 낸 ‘장미꽃 다발’부터 2019년에 낸 ‘위대한 사명’까지 45권에 이릅니다.

정 추기경은 지난 2월21일 노환으로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수액 이외에는 모든 것을 거절했고 자신의 체력으로 병고와 싸웠습니다. 그는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오면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를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합니다. 정 추기경은 선종 전 사후장기기증 서약을 했는데 각막 기증은 선종 뒤 즉각 실천에 옮겼습니다.

정 추기경의 은행통장에는 800만원의 잔고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병세가 위독해 병원에 입원할 무렵 통장을 정리 하던 그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과 음성 꽃동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아동산업교육 등 몇몇 곳을 지정해 기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러고도 통장 잔액이 남은 것은 서울 대교구 은퇴 시 추기경에게 지급하는 일정 금액과 국가보훈처가 매월 주는 6·25참전수당 등이 입금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해가 안치된 명동성당에는 신자들의 조문 외에 일체의 조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아침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조문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발인은 5월 1일 오전 10시, 염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 미사가 거행되고 유해는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묘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교황은 29일 정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며 “당신과 대교구의 성직자·평신도에 진심어린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 추기경이 오랜 기간 한국 교회와 교황청에 봉사한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선종을 애도한 모든 이들에게도 축복을 전했습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 정진석 추기경의 자애로운 음성이 코로나로 지친 이 사회에 ‘어머니의 말씀’처럼 잔잔히 들리고 있습니다.

*선종(善終)이란? 가톨릭에서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착한 죽음, 거룩한 죽음을 말합니다.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 착하게 살다가 거룩하게 끝마친다는 뜻입니다. 가톨릭에서 성직자들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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