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사회

―훈육은 사랑이 전제되지만
폭력은 증오심의 발로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추방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천재화가 단원(檀園) 김홍도(1745~?)의 풍속화 ‘서당’에 보면 훈장님으로부터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와 그 앞에 둘러앉아있는 학동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묘사돼 있습니다.

서당(書堂)은 옛날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곳이요, 훈장(訓長)이란 바로 그곳의 선생님을 이르는 호칭이니 요즘 같으면 작은 학교인 셈입니다.

그림에는 훈장님을 중심으로 앞에 벌 받는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닦고 있고 양편에 아이들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 있는데 모두가 다 고만고만한 얼굴 표정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훈장님 앞의 탁자 밑에 회초리가 놓여있고 아이가 우는 것으로 보아 금방 야단을 맞은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되고 그 오른쪽에 앉은 세 아이는 우는 아이를 향해 은근히 연민을 보내는가 하면 왼쪽 다섯 아이는 또 다른 눈빛으로 짐짓 여유 있는 얼굴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회초리가 걱정 없는 아이들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그중 맨 앞 갓을 쓰고 몸짓도 큰 아이는 보아하니 장가를 간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조혼풍습으로 당시에는 열 너 댓 살이면 혼인을 시키곤 했었기에 말입니다. 또 맨 아래쪽 더벅머리 꼬마는 몸집이 유난히 작은데다 끝에 앉은 것이 서당의 막내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훈장님의 표정이 묘합니다.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는 스승으로서의 안쓰러움이 그대로 표정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훈육을 위해 매를 들긴 했으나 막상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교육방법은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하고 큰 소리로 천자문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학습과정이었던지라 아마도 이 아이는 전날 배운 것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벌을 받는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아무튼 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한 시대의 풍속도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살얼음을 걷듯 조바심을 하는 상황에 이곳저곳에서 폭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폭력이라면 과거에는 영화관에서나 보고 입을 통해 불량배들의 무용담이나 들어 본 것이 전부인데 이제는 아침저녁 TV화면을 통해 만화책을 보듯이 날마다 일상이 되다시피 폭력을 접하고 있습니다.

옛날 학동들의 공부방을 잘 묘사한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 27㎝×22.7㎝의 자그마한 이 작품은 보물 제527호로 지금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지난 해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정인이 사건’을 필두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아동 범죄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난 제 자식을 굶겨 죽이고, 친척집 아이를 데려다 죽게 하고, 어린 아이를 가방에 넣어 밟아 목숨을 끊고…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어려운 폭력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전해집니다. 길 가던 할머니가 낯선 젊은이에게서 이유 없이 떠밀려 넘어지고, 버스기사가 마스크 얘길 꺼냈다가 승객으로부터 마구 폭행을 당합니다.

스포츠계에서도 과거의 폭력이 문제돼 유명 선수들이 퇴출당하고 지도자가 자리를 내놓고 나갑니다. 배구, 축구, 농구 등등 어느 종목이라고 할 것도 없이 많은 종목에 폭력이 지배해 온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나도 당했다”는 ‘미투폭로’가 빗발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연예계라고 조용할 리가 없습니다. 과거의 폭행이 드러나 출연중인 작품에서 역할을 내놓고 불명예 하차합니다.

우리나라의 폭력 문화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권력에 가까운 유교문화에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남존여비, 일제 식민지의 무단통치, 6·25뒤 70년이 넘게 줄곧 이어져 온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사문화,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각 급 학교의 선후배 문화 등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낯 뜨거운 폭력의 진원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마다 때려야 한다”는 고약한 속담이 있을 정도이니 그 옛날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얼마나 천시하고 학대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 같은 체벌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군대 안에

사병들에게 고통을 주던 기합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업드려 뻗쳐’는 기본이고 ‘한강철교,’ ‘원산폭격,’ ‘김밥말이,’ ‘빵빠레,’ ‘불도저,’ ‘선착순,’ ‘개인간격 100m,’ ‘쪼그려뛰기,’ ‘뒤로취침, 앞으로취침,’ ‘해돋이,’ ‘수류탄,’ ‘모기포식,’ 등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군대 내 폭력의 전형입니다.

폭력이라면 힘이 센 자가 약한 자에게 압박을 가해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당하는 쪽에선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 훈장님의 회초리는 사회로부터 필요성을 인정받은 교육방법입니다. 교육을 위한 훈육의 전제는 사랑이지만 학대는 증오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폭력은 야만의 문화입니다. 국가든 사회이든 폭력은 안 됩니다.

국내에서 아동학대 사건은 집계된 것만 해도 2014년 1만 27건에서 2018년 2만 4604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고 사망 아동은 5년간 13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동학대 가해자의 80%가 부모였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바야흐로 춘분(春分). 엊그제는 때 맞춰 봄비가 내렸습니다. 국내에서 땅 투기꾼들의 분탕질이 소란한데 저 태평양 건너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한국인 여성 4명이 괴한의 무차별 총격에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신이 만든 나라’라던 미국, 꿈을 안고 간 그곳에서 일어 난 일이니 더욱 참담합니다. 지옥이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 도처에 지옥이 널려있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