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자살공화국

 

“한해 1만 5000명,
세계 자살률 1위.
누군가 말했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거나 인기가 많은 연예인과 같은 유명한 사람의 자살이 있은 후에 유사한 방식으로 뒤따라 목숨을 끊는 현상을 말합니다.

1774년 괴테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자 이 작품을 탐독한 독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주인공 베르테르의 죽음을 따라 모방자살을 했던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소설은 남자주인공 베르테르가 어여쁜 아가씨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베르테르는 실의와 절망을 헤어나지 못하고 끝내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당시 이 소설은 유럽사회에 큰 충격을 주면서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괴테의 이름을 유럽전역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시대와의 불화로 고민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본떠 목숨을 끊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까지 취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베르테르를 모방하여 자살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2000여명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2003년 홍콩의 인기배우 장국영이 자살을 했을 때 충격을 받은 팬들이  9시간 만에 6명이나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도 같은 예입니다.

자살하면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과거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살왕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뒤 일본에는 자살 신드롬이 일었습니다. 국민적인 패배감이 모멸감으로 바뀌어 일어났던 사회현상이었던 것입니다.

칼로 지신의 배를 가르는 의식인 하라키리(割腹)는 일본인의 자살을 상징한다 할 만큼 유명합니다. 하라키리는 10세기 이후 일본의 무사계급인 사무라이(侍)들이 사용해온 전통적인 자살방법입니다. 그들은 무사로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 방법을 관습적으로 실행해 왔습니다.

1912년 메이지(明治)천황이 죽자 육군대장 노기마레스케(乃木希典)는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동반 할복함으로써 천황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을 보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가미가제(神風)자폭공격은 세계전쟁사에 그 명성이 높습니다. 폭탄을 실은 전투기로 적군의 군함을 향해 돌진해 자폭하는 일본군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미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전쟁 말기 사이판 섬에서 고립된 수백 명의 일본군이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집단자살을 선택했던 일을 일본인들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의 할복관습은 메이지유신 때 폐지되었으나 근래까지도 일본인의 머릿속에는 할복은 남자들의 명예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이비종교 집단자살사건 또한 그때마다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1978년 남미 가이아나 인민사원에서 일어난 집단자살사건은 무려 914명이라는 많은 신도들이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여름 오대양주식회사 사장 박순자 등 32명이 용인의 공예품공장에서 시체로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사건 역시 사이비종교 광신도에 의한 집단 자살사건으로 밝혀졌습니다.

‘사(死)의찬미(讚美)’로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과 유부남 김우진의 현해탄 투신은 영화로도 나올 만큼 낭만적인 자살이었습니다. 동경 유학생이던 두 사람은 1926년 여름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오던 중 대마도근해에서 함께 부둥켜안고 밤바다로 뛰어 내립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했던 것입니다.

자살률 세계1위의 나라 대한민국. 무엇이 국민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있는 것일까. (사진은 서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모습) / 뉴시스

근년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자살자수가 해마다 증가하더니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되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34개 회원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높네, 노인 자살률이 높네 할 때만 해도 걱정은 됐지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전 국민을 통틀어 자살률이 세계 1위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OECD에 의하면 2014년 한해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총 1만3836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전체사망자가 26만7692명이라고 하니 그 중 5.2%가 사고나 질병, 자연사가 아닌 자의에 의해 목숨을 끊는 것이고 하루에 38명이 전국에서 자살을 하는 셈이 됩니다.

1990년 3251명이던 자살자는 2001년 6911명으로 늘어났고 2005년 1만2011명으로 상승하더니 2009년 1만5413명, 2011년 1만5906명으로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는 그나마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이쯤 되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汚名)에 대꾸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몽헌 현대그룹회장, 인기스타 최진실, 야구선수 조성민, 행복 전도사 최윤희 씨 등 그 이름을 다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유명인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명인들의 죽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만5000명에 달하는 보통국민들의 자포자기 자살입니다.

아직 피지도 못한 꿈 많은 청소년들,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 생활고에 지친 가난한 사람들, 빈곤과 질병을 못이긴 도시변두리, 농촌의 노인들, 그 많은 이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잘못 됐기에 누가 이들을 날마다 절망의 나락(奈落)으로 밀어 내고 있는 것일까.

1950년대 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한 땅에서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을 때도 이렇게 산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경제강국이 됐다고 자랑을 하는 나라가 이제 자살을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다니 구천(九天)의 선조들이 통곡을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말인즉슨 동방예의지국, 그래도 그것을 자부심으로 알고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온 유순한 백성들이 어쩌다가 ‘자살공화곡’의 국민이 돼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적자생존으로 사는 사람은 살고 죽는 사람은 죽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자살공화국’소리가 나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 정부가 나서서 ‘자살왕국’의 오명을 씻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100년 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뒤르켐은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 죽음은 사회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의 자살대책은 무엇입니까. 있기는 있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예방대책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손을 놓고 우물쭈물하다가는 머지않아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행복’을 말하기 전에 ‘국민불행’이나 없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과서’보다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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