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과민

―나라가 크다고 해서
국민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제는 지도자들에게
달려있습니다―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화림(桃花林)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어부는 당황한 끝에 산 속에 뚫리어 있는 동굴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그야말로 꿈같은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맑은 햇볕 아래 산과 들은 아름답고 잘 정돈된 마을에는 기름진 논과 밭이, 연못가에는 뽕나무, 대나무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닭 우는소리, 개 짖는 소리 한가롭게 들리고 신선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즐겁게 살고 있는 낙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보자 놀라면서 “우리는 오래 전 진(秦)나라에서 전란을 피해 이곳에 온 사람들인데 수백 년 동안 바깥세상과 접촉을 끊고 살고 있다”고 자초지종을 알려 주었습니다. 어부는 몇 날 며칠 그곳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즐거이 지내다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곳 이야기는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는 신신당부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부는 다시 한 번 찾아 올 속셈으로 약속을 저버리고 길목, 길목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참 뒤 사람들과 다시 그곳에 와 보니 예전 동굴은 흔적도 없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 동진(東晉) 때 저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이 쓴 너무나도 유명한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줄거리입니다. 지금도 동서양의 유토피아를 이야기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곤 하는 것이 바로 이 무릉도원입니다.

그 옛날 노자(老子·BC604~?)는 이상적인 나라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꼽았습니다. 작은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라는 것이 노자의 이상적인 국가관이었습니다. 땅의 크기가 작은 나라에 백성의 수효가 많지 않으니 더 갖겠다고 다툴 일이 없어 평화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소국과민의 정형인 것입니다.

노자의 말마따나 오늘 날 세계에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놓고 잘 사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작은 나라들은 노자의 주장처럼 환경을 잘 가꾸어 놓고 행복하게 사는 국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인 리히텐슈타인은 모든 세계인들을 부럽게 하고 있습니다.

유엔 통계국에 의하면 2017년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 1위의 나라는 16만6022달러를 기록한 중앙유럽의 소국 리히텐슈타인입니다. 2위는 모나코(16만5421달러), 3위는 룩셈부르크(10만6806달러)인데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은 9위로 6만55달러, 일본은 3만8220달러로 27위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라가 작다고 해서 국민 개개인의 삶이 뒤처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리히텐슈타인은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중앙유럽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동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산악국가는 남북 25㎞, 동서 6㎞로 총 면적 160.4㎢로 경기도 성남시 보다 약간 큰 규모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38만9000명(세계 220위)의 소국입니다. 1866년 독일 연방에서 독립된 뒤 단일국가로 출발해 전제 군주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독립당시 군대를 폐지한 이후 국방과 외교는 스위스에 위탁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국정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적다 보니 국내 노동력이 부족하여 2만9000명의 전체 노동자 중 1만3000명이 인접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인들이 국경을 넘어 매일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나라의 우표는 디자인이 아름답기로 전 세계에 소문이 나 인구 5000명인 수도 파두츠의 우체국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우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정도인데 그 판매액수는 무려 국고수입의 1/3을 차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에 힘입어 이 나라는 협소한 국토, 빈약한 부존자원, 소규모 인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를 이룩하였습니다.

2020년 12월 기준 우리 대한민국은 면적 10만410㎢로 세계 109위.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세계28위, 인구밀도는 516명으로 세계26위, 명목GDP 1조5,868억 달러로 세계10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25달러로 세계29위입니다. 수치상으로 보아 이 정도면 규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에 진입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난 해 우리나라의 인구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하여 이구동성 걱정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엊그제 행정안전부는 2020년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가 2019년 보다 2만838명이나 줄어들었다고 밝히면서 우려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구가 줄어든 것 자체도 충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는 속도입니다. 행안부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2017년 처음으로 40만 명 선이 무너진데 이어 불과 3년 만인 지난 해 30만 명 선마저 붕괴됐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아닙니다.

노자는 도(道)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노자는 또 이상적 인간인 성인은 도를 따르기 때문에 덕(德)을 지니게 되는데, 덕을 지닌 사람은 다스리지 않아도 모든 일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그처럼 덕으로 다스리는 통치 방식을 ‘무위(無爲)의 치(治)’라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프랑스·1712~1778) 는 “민주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가 아주 작아서 인민이 쉽게 모일 수 있고 서로를 잘 알 수있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노자의 소국과민과 상통하는 이론입니다.

국토가 넓고 자원이 풍부하면 강대국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반드시 국민이 행복해 지지는 않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양적 팽창에 심혈을 기울이기 보다 질적인 발전을 목표로 지혜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대국을 흉내 내 나라를 키우려 고만 하지 말고 작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영국·1911~1977)는 1972년에 쓴 역작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핵심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은 큰 것이 갖지 못한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특히 나라를 이끄는 정치지도자, 행정가, 각 분야 전문가, 지식인 등등 모두가 지혜를 모아 정말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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