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올바른 역사

 

“있었던 일은 있었던 대로
없었던 일은 없었던 대로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토록 질타하던 아베(安倍晉三)정권의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논란파동이 부메랑이 된 것인가, 느닷없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國定化)로 불똥이 튀어 갑자기 온 사회가 마치 양은솥처럼 뜨겁게 끓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작심하고 던진 한마디가 신호탄이 되어 순식간에 찬반으로 갈린 논쟁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좌편향(左偏向) 근현대사를 바로 잡아야한다며 이념문제를 들어 연일 ‘국정화’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학계, 대학, 시민사회단체 등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고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성명, 집필거부에, 가두집회에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일제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부방침대로라면 이제 2017년부터 개정된 한국사교과서를 쓰게 되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그게 뜻대로 될지는 단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문제는 야당만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잇따라 집필거부를 선언하고 나서는가 하면 일반교수, 교사, 시민사회단체, 학부모, 학생들마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이 역풍을 이겨내고 그것이 과연 잘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그렇게 큰 문제이기에 여야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가 이념대결을 벌이며  ‘전쟁’이니 ‘쿠데타’니 하는 살벌한 구호까지 내세울 만큼 불가피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거두절미(去頭截尾)하자면 핵심 내용은 간단합니다. 박근혜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이 교과서 파동의 ‘핵심’입니다. 박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과거를 고무지우개로 지우듯이 흠은 지우고 잘 한 것은 더욱 더크게 고쳐 쓰고 싶은 것이 그 발단입니다. 아버지의 과거공로를 더욱 더 부각하고 미화하고 싶은 따님으로서의 ‘효심’이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출발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 한 토론에서 이미 ‘군사정변’으로 공식정리가 돼있는 ‘5ˑ16’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강변(强辯)한 바 있을 만큼 아버지의 과거 행적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매우 언짢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남겨 놓고 있는 이 때가 아니면 아버지의 명예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해외방문 뒤에 여론이 좋아진다는 점을 감안해 공을 던져놓고 미국으로 날아갔던 것입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피켓을 든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그런데 귀국해 보니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ˑ고등학교 아이들 마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형국이 되어 있는게 아닙니까.

박정희전대통령은 이 나라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게 사실입니다. 국민소득 100달러의 가난한 나라를 경제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고 농촌의 새마을운동을 성공시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도 그 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된 것도 그의 정책에서 비롯 것임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60~70대 노인들이 무조건 박근혜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그 후광(後光)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박정희에게는 어두운 과거도 있습니다. 그는 일본 육사를 나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일본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해 만주에서 일본군 중위로 활약했습니다. 그가 ‘犬馬忠誠’(견마충성)이란 혈서(血書)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던 일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박정희는 1949년 여순반란사건에서 공산당 활동이 발각돼 구속된바 있습니다. 1심에서 사형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징역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정지로 강제 예편되었습니다. 그가 형을 면제 받은것은 또 다른 ‘숨겨진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1961년 5ˑ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합법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는 소위 ‘혁명공약’에서 민정이양 뒤 군으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고 유신을 선포해 79년까지 18년동안 독재정치로 일관했습니다. 모두 역사에 기록된 사실입니다.

박근혜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박대통령의 ‘올바른 교과서’론은 이 전과(前過)를 고쳐 ‘친일’, ‘독재’를 옹호 미화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올바른 교과서’로 포장해 한국사교과서 ‘국정’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마다 대자보(大字報)가 나붙고  야당과 시도교육감, 학계, 대학, 시민사회단체, 학부모단체 등 각 분야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은 그런 숨겨진 의도를 훤히 궤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과 베트남, 그리고 이슬람 국가 몇 나라 뿐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선진국 문턱에 와있는 지금 하필 후진국들을 따라하는 무리수를 둬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쪽사태를 보면서 북에서 미소를 짓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있었던 일은 있었던 대로, 없었던 일은 없었던 대로 기록되는 것이 ‘올바른 역사’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위적으로 고치는 것은 ‘올바른 역사’가 아닙니다.

통치자가 누구이었든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재임중 치세를 잘 하였지만 왕자시절 왕권을 잡기위해 어린 형제들을 참살한 ‘왕자의 난’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1300년 전 중국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이 형과 아우를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 황제의 자리에 올라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그의 전과(前科)는 고스란히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누가 역사에서 그것을 지울 수 있겠습니까. 왜?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과거 친일행적과 공산당활동, 그리고 5ˑ16쿠데타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행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라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가난한 나라를 잘 살게 만든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판론자들마저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박대통령은 기회있을 때 마다 “경제살리기가 먼저”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더니 불쑥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꺼내들고 나오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 보다 급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박대통령은 국민을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국민의 뜻을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입니다. 맹목적으로 박수치는 사람들에 기대지 말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선 ‘국정’화 계획을 철회하십시오. 그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기존의 ‘검정’에 문제가 있으면 토론과 공청회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기존의 교과서가 왼쪽으로 너무 편향되었으면 오른 쪽으로 조금 잡아당겨 좌우가 균형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정치력입니다. 세상에는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고도 이기는 싸움이 있습니다. 한번 져 보시기를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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