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과극

―화살처럼 빠른 세월 속에
즐거운 추석을 맞이합니다.
코로나19 확산이 걱정되는 명절 
제발 탈 없이 잘 넘기도록
기도합니다―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글자를 풀자면 흰 白, 망아지 駒, 지날 過, 틈 극 隙이니 ‘흰 망아지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풀이 하건대 빠른 세월에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글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이란 마치 흰말이 달려가는 모습을 틈새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음에 이르겠는가.”

그처럼 백구과극은 평소에는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뒤돌아보면 비로소 세월이 매우 빨리 지나갔음을 알게 된다는 말로 덧없는 인생의 무상(無常), 또는 그 허망함을 네 글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에도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人生天地間인생천지간 若白駒之過隙약백구지과극 忽然而已홀연이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그 누구도 언제 시작돼서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영원한 수수께끼입니다. 그 누군들 시간이 시작되는 것을 본 사람도 없으려니와 시간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간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려니와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는 철학적 용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기에 자고로 시인들이 ‘세월’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그때마다 즐겨 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자들은 우주가 생성된 것이 137억 년 전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년. 그러니까 그 기나긴 세월은 끝없이 흐르고 흘러,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은 한 순간도 멈춤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 유수세월(流水歲月)이라 하고 그 빠름을 빛과 화살 같다 하여 광음여류(光陰如流), 광음여시(光陰如矢)라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쉬지를 않습니다. 가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옆으로 돌아서 가고 둑이 막으면 잠시 쉬면서 양을 불려 넘어 갑니다. 한번 흘러 간 물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다투는 듯싶지만 다투지 않습니다. 앞을 따라 갈뿐 결코 앞의 물을 뛰어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흐르는 물의 법칙이요, 자연의 순리입니다. 세월을 물에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2005년 가요계를 달군 나훈아의 히트곡 ‘고장난 벽시계’는 세월의 무정함을 노래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랑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났더니, 저 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모든 이들이 함께 겪고 함께 느꼈기에 공감을 얻은 것일 터입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전 보다 더 빠르게 느끼는 것은 시간의 속도는 그대로 인데 신체는 노화하면서 감각이 점점 무뎌져 세월이 더 빠르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추석을 10여 일 앞둔 20일 인천시 남동구 인근에 “얘들아, 이번 추석은 오지마라. 올해 말고 오래 보자 꾸나”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정부는 이번 추석연휴 기간 동안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고향 방문과 여행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 Nwspim

불교경전인 금강경(金剛經)에도 인생의, 세월의 덧없음을 적고 있습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요,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는 구절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또한 아침이슬이요, 번갯불과 같으니 응당 그러려니 여길 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의 ‘무상(無常)’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속열차 KTX는 시속 300km로 달립니다. 시,분,초로 나누면 1초에 83m를 가는 셈입니다.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린다면 1초에 27m를 가는 것입니다. 그럼 세월은 얼마나 빠를까요. 지구 자전(自轉)의 속도에 의한 한 계산에 따르면 세월은 KTX보다 5배 빠르고, 승용차 보다는 15배 빠르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러기에 세월을 번갯불에 빗댄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시간이 이어져 흐르면서 세월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공평합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 가림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 그 보다 더 공평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사람마다 쓰임이 다릅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보통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 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일까. 어떤 사람은 지나간 세월에 감사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세월을 원망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것을 감사하고,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한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듭, 거듭 후회한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말합니다. 어떤 이는 세월을 “잔인하다”고 하고, “눈물”이라하고 “설음”이라하고, “한(恨)”이라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월을 “아름답다”고 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의 슬픔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닌 생각이 됩니다.

음력 팔월 보름,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추석은 1천 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큰 명절입니다. 올해는 불행하게도 코로나19라는 고약한 괴질로 벌써 9개월째 온 나라가 걱정에 싸여있는 상황이라서 심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와중에 또 한 차례 귀성전쟁으로 민족의 대 이동이 연출될 터인즉, 코로나 확산의 우려가 예견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불편하더라도 국민들이 방역당국의 방침에 따라 질서 있게 행동함으로써 모처럼의 명절을 탈 없이 잘 넘겨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코로나19에 관한한 세계적인 방역 선진국으로 공인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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