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영회의 오늘을 생각하며
<198>베르테르 효과
김영회 | 승인 2020.07.30 10:25

베르테르 효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목숨을 끊은 슬픈 이야기.
우리는 그 사연을 동정합니다. 
그러나 모방 자살은
해서는 안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774년에 발표한 편지형식의 소설입니다. 이 책은 일개 무명 작가였던 괴테를 일약 유명인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책이 나오자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베르테르처럼 흉내를 내고 다니는 등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고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뒤따라 목숨을 끊음으로써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지적이고 감성이 풍부한 젊은이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만난 샤를 로테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접근하여 그녀와 가까워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는 것을 알고는 크게 실망합니다. 베르테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로테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더욱 고뇌에 빠집니다. 베르테르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 안타까워합니다.

로테는 베르테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괴로워 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호감을 갖지만 남편을 위해 베르테르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베르테르는 애타는 마음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로테는 결국 베르테르와의 절교를 선언합니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겨 목숨을 끊습니다. 애당초 이루지 못할 사랑이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대의 인습과 귀족사회의 통념에 저항하는 한 젊은이의 열정을 그린 것이지만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사회에 우울증을 전염시키고 자살을 전파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와 함께 유럽에는 소위 ‘베르테르 열병’이라는 전에 보지 못한 사회 현상을 불러 옵니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이 자살하면 그것을 모방한 자살이 뒤따라 확산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명명해 오늘 날 사회학 용어로 유행시켰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베르테르 효과로 숨진 젊은이가 전 세계에 20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서광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드도 이집트 원정 중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며 되풀이 해 읽고 심취해 “유럽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하였다고 합니다.

근년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자살자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자살공화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와 36개 회원국 가운데 20년 가까이 자살률 세계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3년 3471명이던 연 자살자수는 1993년 4208명으로 늘어나더니 2000년 6444명으로, 2005년에는 1만명을 돌파해 1만2011명, 2010년에는 1만5566명, 2011년 1만5960명, 2015년 1만3513명, 2016년 1만3092명, 2018년 1만3670명으로 1만 명대를 훌쩍 뛰어 넘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해하기 쉽게 따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2011년의 1만5960명을 365일로 나누면 43.72명이며, 가장 최근인 2018년의 1만3670명을 365일로 나누면 37.45명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하루 40명꼴로 매일 자살을 하고 있으며 분(分)으로 환산하면 35분에 1명씩 목숨을 끊고 있는 것입니다.

예년 같으면 끝났어야 할 장마가 뒤늦게 심술을 부리고 있다. 물이 고인 굴다리 밑을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 충북소방본부 제공

사회학자들은 “자살은 없다. 타살만이 있을 뿐이다”라며 “생명체가 좋아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택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개인의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나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다”라며 “이를 인정해야 문제가 풀린다. 지난해에도 수많은 목숨이 자살이란 이름의 타살로 스러져 갔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에 오른 집단 자살 사례만 보아도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연하게 알 수 있다. 한 가족이 풍비박산 난 사례도 많다. 이는 그 가족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항변합니다.

지난 해 1월 24일 서울 화곡동 일가족 4명 자살을 필두로 12월 24일 대구 북구 일가족 4명 집단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해 집단 자살만 32건에 이릅니다. 목숨을 잃은 이들만 100여명이 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때와 장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감염 병보다 더 무서운 자살 감염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국민 사이에 날마다 퍼져가고 있습니다. 마치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의 때를 놓친 암처럼,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처럼 자살은 한국인들의 몸속에 암적 존재로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살을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만 받아들인다면 자살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막을 수 있습니다. 좋아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그리고 자살자가 자꾸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깊이 병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옛 어른들은 “저승이 좋다한들 이승보다 나을게 있겠느냐”고 흔히 말하곤 했습니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죽음에 대한 금기가 심한 편입니다. 유교의 정신 역시 죽음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유교적 색채가 강한 한국에서는 어른이든, 아이이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최악의 금기로 나쁘게 보고 있습니다.

자살자의 성비(性比)를 보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성의 자살률 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몇 배 이상 높은 것과는 상반됩니다. 한국의 경우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약 3배 더 높습니다. 특이 하게도 선진국일수록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의 자살률 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살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살고 싶다는 욕구(본능)와 죽고 싶다는 욕구사이에서 갈등하기 마련입니다. 희망 없는 자신을 죽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결국 자살의 시그널은 죽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라 어쩌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절망의 병’인 자살을 막을 수는 없을까.

행복을 느끼며 멋지게 살아가는 정도를 행복지수라고 한다면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비례해서 높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행복지수는 국민소득과 반비례합니다. 미국에서의 자살자는 70%가 백인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에 비해 자살률이 낮은 것도 그 예의 하나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서 자살률이 높을까. 글쎄요.

얼마 전 선거법 위반으로 도지사직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 애를 태우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자 “지금 이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감회어린 소회를 밝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여비서 성희롱이 들어나 목숨을 끊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비돼 오버랩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0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302호 | 대표전화 : 043-211-7500 |  등록번호 : 충북 아 00143 | 등록년월일 : 2014년 11월 19일
발행인 : 지용익 | 편집인 : 박상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상연
Copyright © 2015 충청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