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

―한 방송프로그램이
주부들을 설레게 했습니다.
사랑과 배신, 이혼과 복수로 
이어지는 막장 불륜드라마.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코로나19 공포에 온 사회가 숨을 죽이고 있는 사이 텔레비전에서는 두 남녀의 애정관계를 그린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주부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2016년 방영해 화제를 모은 ‘닥터 포스터(Doctor Foster)’를 JTBC에서 한국판으로 바꿔 만든 작품인데 지난 3월 27일부터 5월 16일까지 금·토양일간 16회에 걸쳐 방송해 수도권 기준, 33.7%라는 비지상파 사상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입니다.

‘부부의 세계’는 한마디로 막장 불륜드라마입니다. 사랑은 하나이고, 그 사랑은 영원한 것으로 믿었던 의사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는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의 불륜으로 처절한 배신감을 느끼면서 복수로 이어져 끝내는 남편을 파멸시키고 마는 것이 드라마의 전체 줄거리입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의 인생을 섞어 공유하는 그 이름 부부. 그토록 숭고한 인연이 ‘사랑’이라는 약한 고리로부터 기인한다는 것, 사랑은 무한하지도 불변하지도 않는 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줍니다.

―사랑의 연을 맺으며 우리는 약속했었다. “너 만을 사랑하겠노라”고. 그러나 약속은 버려졌고, 사랑은 배신당했다. 배신으로 시작된 증오, 그리고 이어지는 서로를 향한 복수. 복수는 응분의 대가가 따르는 법. 복수에는 상대 뿐 아니라 자신까지 파괴하는 것이란 걸 알아야 했다―(나무위키)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복수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는 늦은 밤 주부들을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내 심장을 난도질해 간 가해자, 내가 죽여 버린 치열하게 증오하고 처절하게 사랑했던 당신, 적이자 전우였고, 동지이자 원수였던 내 남자, 남편”이라고 독백합니다. 아내 선우는 모든 것을 잃고 트럭 앞에 뛰어든 전 남편 이태오를 향해 절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었습니다. 다시 되돌려 지지도 않았고 다시 과거로 돌아 갈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부부가 되는 첫 번 째 의식인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변함없이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그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고 때로는 등을 돌리고 드라마에서처럼 서로를 증오하고 제 길을 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합니다.

“백년을 같이 살겠다”는 백년해로는 허언(虛言)이 되고 등을 돌리고 남남이 되고도 모자라 원망의 대상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 해 우리나라의 결혼숫자는 21만9200쌍이요, 이혼한 부부는 11만800쌍이었습니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두 쌍 중 한 쌍은 파경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건수는 해마다 줄고 이혼 건수는 해마다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의 이혼이 전체의 33.4%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4년 이하 이혼이 21.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선진국 그룹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35개 회원국 중 이혼율 1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부부가 금슬 좋게 살던 동방예의지국 우리나라가 이제 이혼 잘 하는 민족이 되어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결혼 25주년을 맞으면 은혼식(銀婚式), 50년이면 금혼식(金婚式)이라 하여 은과 금으로 만든 선물을 부부가 서로 주고받곤 합니다. 지금이야 평균 수명이 길어져 그에 해당하는 부부가 적지 않지만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흔치 않은 기념일이었습니다.

조선조 500년, 우리나라는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숭상한 유교사회였습니다.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고 생각했던 나라에서 여자의 일생은 그야말로 노예와 같은 인고의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늙은 시부모 잘 모시고,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어야 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내의 의무였습니다.

불륜과 이혼, 그리고 복수를 주제로 한 JTBC '부부의 세계' 포스터. 공전의 시청률을 올리며 우리 사회의 부부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때마침 이달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 가자는 취지로 정부가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부부의 날을 5월 21일로 정한 것은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의 날’의 유래는 1995년 5월 21일 경남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가 처음 발상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권목사는 1995년 5월 5일 TV에 출연한 한 어린이가 “나의 소원은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느낀바 있어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국회 청원을 거쳐 2007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으니 가정의 중심인 부부의 날이 있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부부관계는 화목해야 합니다.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하듯 부부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져 있을 때 가정에 웃음꽃이 핍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절대적으로 부부가 좌우합니다. 부부관계가 사랑으로 맺어져 가정이 행복하다면 굳이 ‘부부의 날’이 필요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한 십계명을 정해 모든 부부들이 보고 참고하라고 인터넷에 올려놓았습니다. 부부생활 십계명은 ①두 사람이 동시에 화내지 마세요. ②집에 불이 났을 때 이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마세요. ③눈이 있어도 상대의 흠을 보지 말며 입으로 실수를 말하지 마세요. ④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⑤상대방의 아픈 곳을 긁지 마세요. ⑥분을 품고 침상에 들지 마세요. ⑦처음 사랑을 잊지 마세요. ⑧결코 단념하지 마세요. ⑨숨기지 마세요. ⑩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사랑으로 부족함을 채워주도록 노력하세요 등입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내용입니다. 좋은 가정은 십계명이 없어도 부부관계가 좋고 아무리 십계명을 그럴듯하게 벽에 써 붙여놔도 부부사이가 나쁜 가정은 평안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 행복이 있을 수 없고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모든 부부들이 이 십계명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정에는 늘 웃음꽃이 필 것이요, 사랑과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사실입니다. 두 부부간에 사랑이 없으면 가정에 평화는 없습니다. 결국 부부의 불화는 온 가족의 불화가 됩니다. 가정불화는 부부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피해자가 됩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어린 아들 준영이가 겪는 고통을 시청자들은 눈여겨봤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최고의 가치가 돈이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꼭 원만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재벌가의 부부 중에도 뜻이 맞지 않아 송사를 벌이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만천하의 부부들이 차분히 ‘부부의 날’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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