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백화제방으로
꽃은 산천에 다투어 피건만
세상은 괴질로 아우성이니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한 봄입니다―

봄은 일 년 네 계절 가운데 첫 번째 계절입니다. 기상학적으로는 양력 3월부터 5월까지를 말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춘분(春分·3월 21일경)에서 하지(夏至·6월 21일경)까지 3개월간을 봄이라고 칭합니다.

자연계절로는 일평균기온, 일 최고·최저기온, 강수량 등으로 계절을 나누며 봄은 또 초봄·봄·늦봄으로 구분합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음력 2월을 맹춘(孟春), 3월은 중춘(仲春), 4월을 계춘(季春)이라고 부릅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고는 하지만 계절과 계절 사이의 경계를 구분 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던가,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종일토록 봄을 찾아 다녔지만 뜻을 못 이루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라는 아름다운 시를 읊었습니다. 청려장(靑藜杖)이란 명아주 지팡이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오는 것도 은근하게, 가는 것도 은근슬쩍 어느 결에 왔다가 슬며시 가곤합니다.

그러다 보니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역시 봄바람과 꽃의 개화입니다. 봄이 오면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수많은 꽃들이 다투어 피지만 매화(梅花)는 봄을 알리는 꽃 중에서도 가장 이르게 피는 꽃으로 맑은 향기와 청아하고 고결한 자태로 봄소식을 전합니다. 그 때문일까.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를 꽃의 우두머리라 하여 화괴(花魁)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꽃이 그렇지만 ‘봄꽃의 여왕’인 벚꽃은 제주도에서부터 피어 올라옵니다. 3월 30일경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해안이 4월 5일경,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이 4월 15일경 개화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평안북도 신의주, 함경남도 함흥 등 북한지방이 4월 30일경, 함경북도 청진 이북, 그리고 평안북도 개마고원, 중강진등지에서는 5월 10일 이후에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넓지 않으나 같은 꽃이라도 남과 북의 개화시기가 1개월 이상 차이가 납니다.

예부터 음력 3월 3일은 삼짇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농촌에서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는 것을 반겼습니다. 흥부와 놀부의 전래 동화를 떠 올리며 뭔가 ‘은근한 기대’를 갖곤 하던 것이 우리네 선조들의 소박하고 순진한 삶이었습니다.

3월은 좋은 계절이라고 하여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가을 수확해 뒤주에 담아 놓은 곡식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춘궁기, 보릿고개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이면 아낙네들은 들로 나가 초근목피(草根木皮), 즉 쑥과 나물을 뜯고 나무껍질을 벗겨 허기를 채우던 것이 바로 봄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옛날의 전설이 아니라 70년 전 우리들의 부모 세대들이 겪었던 가슴 아픈 비가(悲歌)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습니다. 팬데믹이란 전세계적으로 특정 전염성 질병이 최악의 수준으로 유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WHO전염병 경보 6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니 한마디로 세계가 온통 위기에 처해있음을 웅변으로 말해줍니다.

옥천군은 "군내에 아직까지 확진자가 없는 것은 군민과 기독교계가 앞장서 노력한 덕분"이라며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를 중단하거나 영상 예배로 대체하는 등 노력하고 있으며, 군도 코로나 사태가 조속히 진정되도록 군정의 모든 힘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사진=옥천군

가장 최근에 발령된 팬데믹 선언은 2009년 전세계적 전염병이던 신종 인플루엔자였습니다. 당시 신종 플루로 214개국에서 환자가 발생해 1만8,500명이 숨졌습니다. 그러니 이번 팬데믹 선언에 전세계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번 코로나19가 무서운 것은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한지 3개월이 넘도록 도대체 원인을 모르는데다 선진국, 후진국, 큰 나라, 작은 나라 가리지 않고 마구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허둥지둥 쩔쩔매는 것만 봐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이번 팬데믹 선언은 1948년 유엔 산하 기구로 설립된 WHO가 1968년 홍콩 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사상 세 번째입니다.

WHO의 첫 팬데믹 선언은 홍콩 독감 때입니다. 당시 홍콩에서 발병한 독감 바이러스는 아시아를 거쳐 유럽, 북·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퍼지면서 세계적으로 1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어 두 번째 미국과 멕시코에서 발생한 신종플루는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1만8천 여 명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WHO 설립 이전에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급 전염병으로는 14세기 중세유럽을 초토화시킨 페스트를 비롯해 16세기 잉카와 아즈텍문명을 파멸시킨 천연두, 19세기 초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 1차 대전 당시인 1918년의 스페인독감 등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기원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괴질로 수 천 만 명의 인간이 희생됐습니다. 전쟁이 참혹하다고 하나 전염병에 비할 바 아니니 그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괴질이야 말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교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종말론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절은 춘삼월 호시절입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은 그의 시 ‘춘효(春曉)’에서 -봄잠에 취해 날 새는 줄 모르고/ 곳곳에서 새 소리 들려오네/ 밤새워 내린 비바람 소리에 꽃잎은 하염없이 떨어졌으리라(春眠不覺曉 춘면불각효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라고 노래했습니다. 늦은 봄날, 곤한 잠에 빠져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던 시인은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잠결에 세찬 비바람 소리를 들었던 엊저녁 생각에 꽃잎이 얼마나 져 버렸을까, 하는 아쉬운 걱정을 하는 내용입니다. 태평성대의 정경이 눈에 보이는 시입니다.

하지만 때 아닌 괴질로 온 세상 사람들이 공포에 싸여있는 오늘의 이 살벌한 세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한국의 시인은 ‘눈물’을 노래합니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 납니다/ 살아있구나 느끼니 눈물 납니다/ 기러기 떼 열 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만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도종환

어찌됐거나 시간은 흐릅니다. 비노니, 제발 코로나19가 이 정도에서 종식됐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훠이~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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