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 산6-1에 위치하고 있는 이 전통 건축물은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김선복 충신각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조헌(趙憲)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錦山戰鬪)에서 전사한 충신 의성인(義城人) 김선복(金善復, 1571∼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문의문화재 단지의 정문을 지나 올라가면 왼쪽으로 대청댐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세워진 지금의 충신각은 1957년에 문의면 등동리 정가울 마을 앞에 있던 건물을 1998년에 문의문화재 단지 안 지금 위치로 옮겨 세웠다.

정려는 자연석 기단 위에 사각 돌기둥과 나무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인데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충신문 편액을 걸었다. 밖의 충신각에는 ‘충신의성후인김선복지려(忠臣義城后人金善復之閭)’라고 쓴 현판이 있으며, 가로 180cm, 세로 40cm 정도이다.

충신각 왼쪽에는 ‘충신의성김공선복순의비(忠臣義城金公善復殉義碑)’, 오른쪽에는 안내판이 있다.

 

*김선복(金善復, 1571∼1592)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의병이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1592)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선조25) 8월 17일 충청도(忠淸道) 금산전투(錦山戰鬪)에서 칠백의사(七百義士)와 함께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금산의 700의총에 묻히고, 비석을 마련하였다.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에는 의병장 조헌에 대한 기록과 함께 김선복(金善復)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도 ‘강몽조(姜夢祖), 고명원(高明遠), 김선복(金善復), 김성원(金聲遠), 박사진(朴士振), 박혼(朴渾), 복응길(卜應吉), 서응시(徐應時), 신경일(申慶一), 윤여익(尹汝翼), 조경남(趙敬男)은 문인(門人)으로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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