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리 455-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기암서원은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된 곳이다.

기암서원은 1699년(숙종25)에 문정공(文貞公)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설봉(雪峰) 강백년(姜栢年, 1603∼1681)의 위폐를 모시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그 후 1826년(순조26)에 승지(承旨) 금암(琴巖) 오숙(吳熽, 1602∼1675)을 추가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1871년(고종8)에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없어졌었으나 보성 오씨(寶城吳氏) 문중에서 1984년 낭성면 갈산리 호평 마을에 다시 세우고 매년 음력 3월1일에 제사 지내고 있다.

기암서원의 위쪽으로 오르다보면 느티나무와 함께 서 있는 홍살문이 보인다. 기암서원을 복원하여 ‘갈산사(葛山祠)’라고 칭한 건축물로 대리석 층계를 지나 솟을대문을 세우고 시멘트와 자연석을 재료로 한 담장을 둘렀다.

지금의 서원은 정면 3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내부는 통간 마루방으로 만들었다. 건물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쪽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앞 처마에는 ‘갈산사(葛山祠)’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리고 바깥마당에 노장우(盧章愚)가 짓고 조수형(趙壽衡)이 쓴 ‘기암서원중건사적비(機巖書院重建事蹟碑)’가 있다.

*강백년(姜栢年, 1603∼1681)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姜籒)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1627년(인조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장령(掌令)을 지내고, 1646년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하여 동부승지에 오르고, 이듬해 상소하여 전국에 걸쳐 향교를 부흥케 하였다.

1653년(효종4) 좌승지에 오르고 충청도·강원도의 관찰사를 거쳐 1660년(현종1)에 예조참판으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0년 도승지·이조참판을 역임한 뒤 현종이 죽자 그 시책문(諡冊文)을 지었고 예조판서·우참찬·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고금의 가언(嘉言)과 선정에 관한 것을 수집하여 ≪대학(大學)≫의 팔조를 모방하여 ≪한계만록(閑溪謾錄)≫을 지었고, 시문이 ≪설봉집(雪峯集)≫에 실려 있다.

1690년에는 영의정(領議政)에 오르게 되었고, 뒤에 청백리(淸白吏)로 뽑히게 되었다. 온양의 정퇴서원(靜退書院), 수안의 용계서원(龍溪書院), 청주의 기암서원(機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설봉유고(雪峯遺稿)≫는 조선 중기의 문신 강백년(姜栢年)의 시문집이다. 30권 8책, 목판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편집·간행 경위를 알 수가 없다.

권1∼21에 시 1,500여 수, 권22에 교명문(敎命文) 1편, 책문 3편, 표전(表箋) 10편, 조고제(詔誥制) 3편, 유교서(諭敎書) 8편, 불윤비답(不允批答) 5편, 상량문 4편, 권선문(勸善文) 1편, 부(賦) 4편, 권23에 서(序) 9편, 발(跋) 1편, 설(說) 7편, 기(記) 4편, 잡저·논(論)·잠(箴)·명(銘)·전(傳) 각 1편, 권24에 제문 23편, 책제(策題) 5편, 권25에 소(疏) 28편, 권26에 차(箚) 3편, 계사(啓辭) 5편, 권27에 묘갈명 19편, 권28에 묘지명 6편, 권29에 묘표·신도비명 각 2편, 시장(諡狀) 1편, 권30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교서·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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