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303-2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령 신문(高靈申門) 효열각(孝烈閣)은 누구나 찾기 쉬운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이후로 수많은 행인들의 바쁜 발걸음들을 지켜보면서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

이 효열각은 1807년(순조7)에 효행(孝行)으로 참판(參判)의 벼슬이 내려진 종산(鐘山) 신집(申潗, 1623~1689)과 신우권(申佑權)의 처 열녀(烈女)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효열을 기리어 세운 정려이다.

1985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건물로서 정려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함께 그들의 사연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려의 울타리는 사면을 철제로 둘렀고 안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인 효열각이 있다.

효열각의 사면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올렸으며 홍살로 막고 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을 달았다.

안에는 ‘효자증가선대부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관신집지문(孝子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管申潗之門)’, ‘열녀통덕랑신우권처공인파평윤씨문(烈女通德郞申佑權妻恭人坡平尹氏門)’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신집(申潗, 1623~1688)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자는 노천(老泉), 호는 종산(鐘山)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심(孝行心)이 지극하였고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남들과 달라 주위로 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 전한다. 9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애통해 하며 통곡(慟哭)하는 것이 어른보다 더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언어와 행동이 어느 하나도 부모님 말씀에 거슬림이 없었다고 전한다.

3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날바닥에 기거하며 주야로 통곡하였고 3년간 고기와 과일을 입에 대지 않았고 죽만으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효도에 대한 미담이 주위에 퍼지자 그의 효행을 관찰사(觀察使)가 임금께 상소하여 정려(旌閭)하였다. 묵정서원(墨井書院)에도 배향되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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