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옥(金鍾玉, 미상∼1907. 8.)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한말 의병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강년(李康年) 의진에 가담하여 충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자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國權回復) 운동(運動)을 전개하게 된다.

국권회복 운동의 방향은 장기적 국권회복 운동으로는 언론·종교·교육 및 학술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 계몽 운동을 전개하여 실력 양성 운동을, 즉각적인 방법으로는 의병 활동으로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김종옥은 언제부터 의병 활동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동한 이강년(李康年, 1858. 12. 30.~1908. 9. 19.)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강제 시행으로 촉발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07년 일제가 고종의 폐위와 군대를 해산하자 그해 7월 충북 제천(堤川)에서 고종의 칙령을 받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충청·경상·강원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종옥은 이강년 의진에 속하여 1907년 음력 7월 5일 충북 제천 전투에 참여하여 적병 500여 명을 토벌하는 등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후 이강년 의진이 충주성 공격에 실패 한 후 문경에 주둔하면서 조령·갈평·적성에서 일본군과 전투 후 영월에 주둔하였다. 1907년 음력 8월 24일 영월 동내리(洞內里)에서 병기계(兵機械)를 조작하다가 크게 다쳤는데 회복하지 못하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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