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행복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밖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모자람의 미덕’을 알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 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고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궁전에 많은 것이 있으면서도 늘 모자란다고 생각한 왕은 마법사인 신하를 불러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고 비결을 물었습니다.

신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왕은 “그러면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는 용맹스러운 장군, 이름 난 학자, 재산이 많은 부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크게 지치고 실망한 신하는 해가 진 어두운 들판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답고 행복함이 가득한 감미로운 피리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신하는 소리를 따라가 피리 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피리 소리가 행복하게 들리는데 그대의 마음도 행복합니까?” 피리 부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나는 아주 행복합니다.”

신하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의 속옷을 제게 파시오. 돈은 얼마든지 주겠소.” 피리 부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두워서 안 보이겠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소. 어젯밤 벌거벗은 거지가 지나가기에 입고 있던 속옷까지 벗어주었다오. 그래 행복합니다.” 서양 동화인 이 이야기는 행복이란 무엇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착한 마음으로 남에게 사랑을 베풀면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해 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행복’이라는 두 글자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①복된 좋은 운수 ②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BC428?~BC347?)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약간 모자란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힘을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할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등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완벽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모자람, 즉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에서 남 보다 앞서야 하고 1등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오늘 우리 사회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복의 조건입니다. 2400여 년 전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이었으니 가타부타 토를 달수도 없습니다. 흔히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플라톤은 먼 옛날 이미 설파했던 것입니다. 모자람의 미덕(美德)이라고나 할까.

인간의 행복은 어느 나라나 헌법조항으로 명시되어 있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서양 선진국들은 물론 이려니와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을 보장해야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이 조문은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국가의 의무조항입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다리 아래서 구조대원들이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NEWSIS

왁자지껄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지금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계 7위의 수출 강국에다 10위권의 경제 규모에 국민 소득 3만1000달러의 나라가 되었으니 과연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최근 공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행복지수 10점 만점에 5.895점을 받아 세계 54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현재 유엔 회원국이 193개국이니 54위라면 그래도 괜찮은 수준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국민 소득 100달러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 짐을 금치 못합니다.

물론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배우고 따라가야 할 점이 많은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이념, 세대, 지역, 노사대립 등의 사회적 갈등, 거기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각종 사기와 흉악 범죄 등등은 국민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 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행복한 나라’ 순위를 보면 단연 전 세계 1위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였습니다. 행복 순위는 1인당 국민소득과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등을 측정해 지수를 산출해 낸다고 하는데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은 전통적인 유럽의 나라들이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행복론’의 상징으로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철학자 김형석선생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다”고 말 합니다. ―행복한 사람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어차피 채울 수 없는 욕망이라면 조금 부족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행복을 얻게 되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참으로 값진 행복은 고난과 부족함에 부딪히고 깨질 때야 발견할 수 있다.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섰을 때 맛볼 수 있는 기쁨이 진정 행복이다.

우리 사회는 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드문 것일까? 아마 욕심 때문일 것이다. 동물은 욕망을 채우고 나면 더 이상 탐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그 욕망을 채우고 나면 더 큰 욕망을 탐한다. 비워있어야 채울 수 있고 희망이 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좀 더 예뻐지면 행복해질 것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건강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멋진 사람을 만나 혼인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인간의 욕망을 채운다 한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선생은 반문합니다. 행복은 내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幸(행)자에서 첫 획 一을 지우면 매울 辛(신)자가 됩니다. 행과 불행은 곁에 있고 같이 있습니다. 다만 서로 등을 지고 있을 뿐입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강 다뉴브에서 날아 온 비보는 또 한 번 국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가족들의 슬픔이 오죽 하겠습니까.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허구한 날 탈(頉)이 많을까. 좋은 일은 없더라도 탈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불행을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오호(嗚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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