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최명길 묘소(崔鳴吉 墓所)는 충북 기념물 세68호(1984. 12. 31.)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대율리 산253-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를 지나 50여 미터를 가면 묘소가 나온다. 넓게 조성되어 있는 선생의 묘역(墓域)에는 3기(基)의 봉분(封墳)이 있다. 가운데에 있으면서 약간 뒤에 자리한 봉분이 최명길의 묘소이고, 서쪽이 첫 번째 부인 인동(仁同) 장씨(張氏)의 묘소이며, 동쪽은 두 번째 부인인 양천(陽川) 허씨(許氏)의 묘소이다.

최명길 묘소는 50cm 높이의 호석(護石)을 둘렀고, 상석(床石), 묘표(墓表)와 앞면에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을 갖추고 있다.

상석은 높이 20cm, 너비 169cm, 두께 15cm로 남구만(南九萬)이 쓴 묘표(墓表)가 있고, 망주석, 문인석은 화강석(花崗石)으로 높이 160cm로 마모가 심한 것으로 보아 세월의 풍화를 짐작한 수 있게 한다.

한편, 인조(仁祖) 때의 문신으로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인 최명길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나라와 화친할 것을 주장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번의 호란을 통해 치욕의 역사를 겪은 그의 행적이 비석과 상석 등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해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다.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ㆍ미재(美齋)이다. 1656년(효종7)에 문과에 급제하고 우의정(右議政), 좌의정(左議政), 영의정(領議政)을 지냈으며 소론(少論)의 거두로 활약하였다. 문사(文詞)와 서화(書畫)에도 뛰어났으며 저서에 ≪약천집(藥泉集)≫이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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