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의 물음이 신상에 미치자 그녀의 얼굴에는 ‘드러나게/들어나게’ 경계의 표정이 어렸다. 그 바람에 한동안 숟갈질만 하던 동영은 잠시 뒤에 화제를 바꾸었다. ≪이문열, 영웅시대≫

 

이문열(李文烈)은 1948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동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중퇴하였다.

단편소설 <나자레를 아십니까>(1977년)가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등단했다. 중편소설 ≪사람의 아들≫(1977년)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작품으로는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그해 겨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국지≫ 등이 있다.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생가(生家)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아버지는 행우(行雨)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이상설은 이범세(李範世), 여규형(呂圭亨), 이시영(李始榮), 이회영(李會榮) 등과 신학문을 공부하였으며, 미국의 선교사였던 헐버트(Hulbert,H.B.)와도 친교를 맺어 영어, 프랑스어 등을 익혔고, 수학, 물리, 화학, 경제학, 국제법 등을 공부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조약 폐기를 상소하고, 망명하여 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교포 자제의 교육에 힘썼다. 1914년 이동휘, 이동녕, 정재관 등과 중국과 러시아령 안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선임되었다.

1917년 3월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니콜리스크에서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상설 생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다. 1997년 진천읍 교성리 향교말에 있던 사당인 숭렬사와 숭모비도 이곳으로 옮겼다.

한글 맞춤법 15항 [붙임 1] 두 개의 용언이 어울려 한 개의 용언이 될 적에, 앞말의 본뜻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고, 그 본뜻에서 멀어진 것은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 (2) 본뜻에서 멀어진 것은 멀어진 대로 적기 때문에 ‘드러나게’로 써야 한다. 예를 들면, ‘사라지다, 쓰러지다’ 등이 있다.

<제공: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황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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