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김명심(金明心, 1881.∼미상)은 충청북도 청주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 신안리(新安里) 출신으로 한말 의병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농민이었으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를 진행하고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는 등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 활동이 일어나자 청주 일원에서 활동 중인 한봉수 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음력 3월 한봉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총기를 휴대하고 충북 청주군 산내일면 판교리(板橋里) 홍씨와 묵방리의 이종익(李鍾翊)에게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1908년 음력 6월 북강외일면(北江外一面) 백자동(柏子洞)의 일본협력자 방사련(方士連)이 군자금 모집 등의 의병 활동을 하는 동료 2명을 일본 경찰서에 몰래 신고하여 상실케 하자 한봉수와 함께 그의 집 앞에서 총살로써 처단하였다.

1909년 음력 4월 이정구(李正九) 등 동료 4명과 함께 북강외이면(北江外二面) 각동(角洞)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1909년 음력 5~6월경 이정구 등 동지 7~8명과 함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俗離山)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추격을 받고 교전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일로 체포되어 1910년 3월 18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배형 10년을 받았으나, 5월 14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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