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의 소망

―전쟁이 없고 정치가
제 구실을 해주고,
경제가 살아나고,
사회가 안정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서기 2019년, 기해년(己亥年)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해는 ‘돼지 해’입니다. 돼지야 말로 우리 민족과는 떼려야 떼놓을 수 없는 동물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돼지는 12간지 중 마지막 열두 번째로 꿈을 꿔도 가장 기분이 좋은 가축인지라 부와 복을 갈망하는 사바세계 미망(迷妄)의 중생들에게는 꼭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부풀게 합니다. 더욱이 올해는 ‘황금돼지해’라고 하지 않던가.

호사가(好事家)들의 발상이긴 하겠으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들 은근한 기대를 가져 봄직하니 굳이 토를 달 일은 아닐 성 싶습니다. 언제던가, 2007년 丁亥年에도 600년만의 황금돼지해라는 소문에 산부인과마다 아기울음소리가 넘쳐났었습니다. 전 년과 달리 출산율이 반짝 올라가기도 했었는데 사실 그때는 잘못 알려진 것이고 이번 2019년이 진짜 ‘황금돼지해’라고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헷갈립니다.

돼지는 생김새가 억세 보이듯 먹성이 좋고 한해 두 번씩 새끼를 열 마리씩이나 낳는 동물이라서 과거 농경시대에는 농가의 첫째, 둘째 재산 목록의 하나였습니다.

문헌에 보면 돼지는 약 9000년 전 중국과 중동지역에서 멧돼지를 가축으로 기르면서 사육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1000여종의 품종에 8억 4000마리나 되는 돼지가 인류의 중요한 영양원으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과 유대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존재로 금기시해 식용으로 먹지 않습니다.

돼지는 번식이 매우 빨라 태어나 8개월만 되면 짝짓기를 합니다. 임신기간은 114일이고 보통 한배에 8~12마리를 낳는데 20마리를 낳는 일도 있고 1년에 2번 새끼를 낳습니다. 돼지가 완전히 자라기 위해서는 1년 반에서 2년이 걸리며 수명은 9~15년입니다.

돼지는 복(福)의 상징물로 흔히 돼지꿈을 꿨다고 하면 길몽(吉夢)으로 여겨 복권을 사거나 기대를 갖고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그 옛날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 東夷傳)’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제주에서 흑돼지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고 2015년 문화재청은 제주 흑돼지를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했습니다. 농협 조사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삼겹살로 밝혀졌습니다.

돼지는 처음에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으로 사육되었지만 가죽은 방패 또는 군화, 뼈는 도구와 무기, 털은 솔을 만드는데 쓰입니다.

돼지는 개와 돌고래에 견줄 만큼 매우 영리하며 의외로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늘 더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가죽에 땀샘이 없기 때문에 몸을 식히기 위해 진흙탕에 자주 뒹굴기 때문 입니다.

올해는 우리 백성들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해 1919년 3월 1일 조선팔도 전역에서 만세운동을 벌인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 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실로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세계에 선언한 것 역시 1919년 이니 올 2019년이야 말로 우리 역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불교사찰 내 약사전 십이지신 탱화등에 등장하는 해신(亥神·돼지신)은 가난해 의복이 없는 이에게 옷을 전하는 착한 신이라고 한다. 돼지는 음양오행에서 물에 해당해 화재를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뚜렷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2019년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건립된 원년이므로 그 중요한 의미는 아무리 강조하고 역설한다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겠습니다.

그러기에 2019년 올해는 더 많은 소망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한반도가 평화로워야 합니다. 정치가 어떠니, 경제가 어떠니 해도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의 삶은 완전히 망가집니다. 전쟁은 몰라서 그렇지, 예외 없이 무자비하고 참혹합니다. 지난해 남북이 세 번의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를 논했으니 올해는 더욱 외교력을 발휘해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지 않게끔 평안한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그것을 깊이 이해해 역사에 남는 협상력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정치다운 정치를 해야 합니다. 집권당은 집권당답게 포용과 설득의 정치를, 야당은 야당답게 감시와 견제와 협력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여야는 이구동성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너무도 많이 속았기 때문입니다.

여와 야는 선의의 경쟁 상대이지 적(敵)이 아닙니다. 경쟁이 정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국민이 불신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동안 봐왔지 않습니까. 2016년의 촛불 시위, 1987년 ‘6월 항쟁’, 1960년 ‘4월 혁명’이 그랬습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호랑이 등에 타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떨어져 죽거나 잡혀 먹이고 맙니다. 올해는 제발 정치다운 정치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민생의 중요함은 달리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야당의 협력 없이 여당 혼자서는 경제 못 살립니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야당은 대승적인 자세로 여당을 도와야 합니다. 여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경제가 살아야 야당도 삽니다. 앞을 내다보는 야당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갈 곳을 잃고 실의한 젊은이들에게 기를 살려 줘야하고 내일을 모르고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 줘야합니다.

사회 안정 또한 시급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할 만큼 혼란합니다. 노사갈등, 지역갈등, 빈부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등등 모두가 모두 전사들처럼 얼굴을 붉히며 상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옛 말씀,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제 주장만 강하게 소리칩니다.

연주창처럼 터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예방해야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사고로 소중한 생명들이 쓰러집니다. 희생자는 예외 없이 비정규직에 하청노동자입니다. 약자가 차별받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입니다. 증오심을 키우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삼겹살에 기울이는 소주잔이 즐거운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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