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세~오’의 인간승리

―‘파파리더십’으로 정상에 오른
베트남 축구. 박항서가 베트남을
빛나게 했고, 베트남이 박항서를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인간성이 돋보입니다―

의외로 승부는 일찍 결판이 났습니다. 경기 시작 6분, 말레이시아 진영 오른 쪽 깊숙이 들어가 있던 왼쪽 공격수 응우옌꽝하이가 골문을 향해 띄워준 볼을 백넘버 11번 응우옌아인득이 잽싸게 왼발로 차 넣음으로써 이날 경기는 일찌감치 베트남의 승리로 기울었습니다.

2018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2차 결승전. 전후반 90분, 베트남의 우승으로 경기가 끝나자 스탠드의 4만 관중이 벌떼처럼 일어나 함성으로 경기장을 뒤덮었고 하노이는 물론 전국이 승리의 감격에 휩싸인 가운데 9,700만 베트남 국민들은 열광했습니다.

국기인 금성홍기(金星紅旗)가 숲을 이룬 가운데 시민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중계를 하던 아나운서는 흥분을 추스르지 못하고 “미쳤어요! 다들 미쳤어요!”를 연발할 뿐이었습니다.

2018년 12월 15일, 이날은 1975년 4월 30일,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20년 전쟁에서 승리해 남북 베트남이 통일을 이룩한 그날에 견줄 만큼 베트남을 역사적인 날로 만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 대회는 2년마다 열리지만 베트남은 2007년 한번 우승을 해 봤을 뿐 그동안 인접국들에게 눌려 하위권에서 맴돌던 참이었습니다. 그런 베트남이 어느 순간 치고 올라와 동남아시아 맹주의 자리에 올랐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베트남의 우승은 박항서(59)라는 뛰어난 한국인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1년여 만에 베트남을 축구의 나라로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건 당연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해 10월 부임한 이래 올 1월 중국에서 열린 U-23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아시안게임 4강에 오르는 등 공을 세우더니 드디어 이번 스즈키 컵 대회에서 강적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박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선수들의 장단점을 빨리 파악했고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팀을 하나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자상하고 겸허한 리더십에 선수들은 아버지처럼 따랐고 결과는 이내 나타났습니다. 언론들은 그의 리더십을 ‘파파리더십’이라 불렀고 그의 이런 전략은 제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은 급속히 가까워 졌습니다. 한국인인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공을 세워 영웅대접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과 베트남은 전쟁을 치룬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된 베트남전쟁에서 한국은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연인원 30여만 명을 파병해 미군, 남베트남군과 한편이 되어 북베트남군과 싸웠습니다. 당시 한국군은 ‘무적 따이한,’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베트남인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었었습니다.

결국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 한국군은 전사 5,099명 부상 1만1,232명의 사상자를 냈고 베트남은 군, 민간인 합쳐 총 사망 381만2,000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보도들에 의하면 한국군은 전사자의 8배에 달하는 4만여 명의 베트남인들을 사살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이 전쟁으로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라는 국제 사회의 곱지 않은 비난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기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스즈키컵 우승과 함께 베트남에서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박항서 일대기 포스터.’ /스포티비뉴스

아무튼, 박항서감독이 베트남을 축구강국으로 만들면서 한·베트남 두 나라 관계가 훨씬 가까워 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했던가.

지금 베트남에서는 ‘바캉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외치는 가운데, 박항서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의 국영방송인 VTV는 박항서 감독을 ‘2018 베트남을 빛낸 인물’로 선정했고 아시아기자협회 또한 ‘2018 아시아의 인물’로 뽑았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다큐멘터리 일대기가 극장에서 상영되는가 하면 베트남 최고의 자동차회사인 타코그룹으로부터 1억동(한화 9,740만원)을 축하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감독은 즉석에서 “이 돈은 베트남 축구 발전과 어려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 돌려 줬습니다. 대기업들의 광고 출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박항서’라는 이름 석 자가 이렇게 뜨는 것은 몇 해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니다. 과거 그의 축구 인생이 그리 화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를 보좌하는 코치로 국민들의 눈에 처음 띄었지만 한양대, 럭키·금성 등 선수 시절이나 K리그에서 경남FC, 전남드래곤즈, 상무 감독으로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지난 해 초만 해도 3류 실업 팀인 창원시청 팀을 맡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베트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 된 것입니다. 박항서가 베트남을 빛나게 했다면 베트남은 박항서를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자신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자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축구지도자일 뿐입니다”라고 겸손해 하는가 하면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많이 사랑해 달라”고 조국에 대한 애국심도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일면입니다.

베트남의 스즈키컵 우승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박항서라는 출중한 리더가 있었지만 근년 들어 베트남의 국운이 상승하는데 더해 박항서라는 능력있는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물론 ‘파파리더십’이 주효했고 플러스 알파, 즉 운이 따라 준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박감독은 올 1월 AFC U–23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고 돌아와 시민들의 열광 속에 카퍼레이드에 올랐을 때 “아이구, 이제 죽었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쁘긴 했지만 순간, 뒷일이 걱정되더라는 것입니다. 계속 이기면 좋겠지만 질 때는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기쁨도 한 때입니다. 이기면 박수를 치지만 지면 비난을 합니다. 그것이 염량(炎涼)세태, 세상이치입니다. 박 감독은 지금 일생일대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본인의 능력, 본인의 운이 때를 만난 것이지만 항상 이기기만하고 항상 운이 따라주는 것은 아닙니다. 산전수전 쓰고 단 세상맛을 다 봐 왔기에 박 감독 본인도 그것을 잘 알 것입니다. 하여튼 축하합니다. 부디 앞으로도 행운이 함께 따라 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이 웬 날벼락입니까. 체험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펜션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래노니 젊은이들이 ‘헬 조선’이라는 자학적인 넋두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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