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의 나라

 

―국민의 절반이 세를 삽니다.
집은 남는데 내 집은 없다?
축구보다, 통일보다 더 급한 것이
주택문제입니다. 국민이 모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자야합니다.―

 

옷과 식량과 집을 일컫는 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3대 필수요소입니다.

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어렵고 외부로부터 신체를 지켜야하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고 집이 없으면 눈과 비바람을 피할 수 없을 뿐 더러 편히 쉬거나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의식주,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 중에서도 거처(居處)인 집이야말로 기후의 변화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여 안전하게 지켜주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또 가족 간의 사랑과 믿음을 서로 나누며 함께 모여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가족들은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사회로부터 받은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집은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터전이며 노인들이 여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가족의 건강유지와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취사, 청소, 세탁 등의 가사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집의 역사도 기나긴 세월을 통해 변화해 왔습니다. 삼한시대부터 목조건축 양식이 완성되고 고구려 때부터 온돌 구조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오는데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와 형식에 제한이 많았다고 합니다. 집이 크게 변한 것은 근세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서양식의 주택이나 빌라 등이 등장하고 1930년대부터는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공동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의 새로운 주거 형태가 정착됩니다.

‘위키페디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서울 충무로에 일본인들을 위해 세워진 것이 처음입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1958년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지어진 종암아파트는 순전히 우리 기술로 건설됐고 수세식 변기도 처음 설치됐으니 현대식 위생시설이 구비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오늘의 아파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압구정동에서 부터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의 70%는 현대식 아파트에서 위생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삶의 질이 급속도로 향상된 것은 분명합니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 가구 수는 1,967만4,000가구입니다. 이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100만가구로 집계됐습니다. 그렇다면 내 집을 갖고 있는 숫자는 전체 가구의 55.9%요, 내 집이 없는 가구가 44.1%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102.6%입니다. 주택보급률은 주택수를 가구 수로 나눈 것이니 통계대로라면 모든 가구가 내 집을 한 채씩 갖고도 남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전체 가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세를 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집은 충분한데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 간단히 말해 경제에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몇 채씩 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집을 5채 이상 가진 집 부자들이 11만 명이 넘는 다고 합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2채 이상 집을 소유한 사람은 211만9000명이고 5채 이상 가진 사람들도 11만5000명에 달합니다.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주거실태조사’ 결과에서는 집을 소유하기는커녕 단 몇 평짜리 전·월셋집도 구할 여유가 없어 고시원에서 사는 이들이 15만2000명인 것으로 나옵니다. 이 중 7명이 지난 번 서울 관수동 고시원 화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산 불평등이 얼마나 심하고, 이로 인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온 도시를 뒤 덮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들. 그러나 국민의 절반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세를 살고 있다. /NEWSIS

지난해 소유 주택이 늘어난 사람은 147만3000명인데, 이 중 두 채가 늘어난 사람은 8만 명, 3채 이상 늘어난 사람도 3만2000명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주택자산의 가치가 1억 원 이상 증가한 집주인들이 104만 명에 달합니다. 집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1년 만에 1억 원 이상 재산이 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는 계산입니다.

주택자산 증가액이 5억 원을 초과하는 이들도 6만1000명이나 되는데 이 중 3만4000명이 서울에 집이 있습니다. 올해 서울 집값이 폭등했으니 이들의 재산은 더욱 더 불어났을 것입니다. 공시가격이 아닌 시가로 따지면 늘어난 자산은 훨씬 더 큽니다.

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이렇게 많으니 부동산 투기가 끊길 리 없습니다. 집값이 뛰어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택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가 지난해 2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강남·서초구에 거주하는 주택 소유자 5명 중 1명은 다주택자였습니다. 주택 소유 가구 상위 10%의 주택자산 가치는 하위 10%보다 무려 32배나 많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국민의 절반이 내 집이 없어 세를 산다면 이거야 말로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괜찮게 산다는 사람들도 과거에 셋방살이를 해본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세를 사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아니고는 잘 모릅니다. 괴테는 언젠가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셋방살이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답은 간단합니다.

진흙속의 지렁이도 제 몸 뉘일 공간이 있고 참새나 제비도 아무 집이나 처마 밑에 제 집을 짓고 삽니다. 그러하건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1위 경제 강국의 나라에서 제 집이 없다면 예삿일은 아닙니다.

국민의 절반이 집이 없는 사회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유·무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사회의 문제입니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돼있는 게 문제입니다. 국가는 더 늦기 전에 토지 공개념의 정책으로 집이 없어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한 대책을 내 놔야합니다. 집은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지 돈을 불리는 ‘마술단지’가 돼서는 안 됩니다.

1972년 히트한 남진의 노랫말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같은 집은 못 지을지라도 집주인 눈치 보지 않고 가족들이 다리를 쭉 펴고 편안히 잠 잘 수 있는 세상이 올 때 국민이 진정한 행복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에서 “모두가 잘 사는 ‘포용국가론’을 역설했습니다. 참으로 좋은 발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천에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한때의 구두선(口頭禪)이 되고 맙니다.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시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민들이 주거문제만이라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우선 시름을 놓게 됩니다. 축구 잘하고 통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급한 것이 바로 국민의 주거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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