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이야기

 

ㅡ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만인의 로망인 노벨상.
그 상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밤잠을 못 이룹니다.
웃기는 일도 많은 노벨상―

 

전혀 의외였습니다. 해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성황리에 시행되는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수했습니다. 커다란 그림 두어 점이 벽에 걸려 있을 뿐 별달리 꾸미지도 않은 넓은 공간은 우리나라의 중고교 강당과 비슷했습니다. 앞쪽 모서리의 수상자가 연설을 하는 탁자 역시 흔한 목재로 만든 평범한 것으로 달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슬로시 청사 강당이 바로 그 유명한 노벨평화상의 시상 식장이었던 것입니다. 1999년 북 유럽 몇 나라를 여행 중에 들른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강당은 이미 전 세계에서 노르웨이를 찾는 방문객들의 정해진 관광코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일찍이 중학교 시절 노벨상에 대해 배울 때 “노벨상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터라 시상식장, 바로 그 장소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탁자 앞에 서서 “우리나라는 언제, 누가 이 자리에서 상을 받고 연설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을 해보며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뒤 꿈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과 북,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 분단 55년 만에 김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역사적인 ‘6·15 선언’을 한지 얼마 뒤이니 국내는 물론 온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아,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인간 승리’를 뛰어 넘어 한민족의 쾌보였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기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남긴 유언에 따라 만들어 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입니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거대한 재산가가 되자 죽기 한 해전인 1895년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에 따라 1901년부터 매년 노벨 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노벨생리·의학상, 노벨문학상,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고 1969년 노벨경제학상이 추가되었습니다.

노벨상은 해마다 노벨의 기일(忌日)인 12월 10일 시상식을 갖고 수상자는 금으로 된 메달과 표창장, 노벨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줍니다. 올해의 경우 상금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7000만원)를 받습니다.

노벨상은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데 사망한 사람에게는 수여되지 않지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사망한 사람은 대리 수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은 3인까지는 공동수상이 가능하고 4인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수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벨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선정하고 시상하는데 제정 당시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속국이었던 것이 분리 시상의 이유라고 합니다.

노벨상 118년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단체는 적십자입니다. 1901년 적십자 창립을 주도한 장앙리 뒤낭이 제1회 평화상을 받았고 1918년에는 1차 대전 구호활동 공로로, 1944년 역시 2차 대전 구호공로로, 1963년에는 전 세계 재난구호 공로로 네 차례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또 역대 수상자 가운데 가장 어린 사람은 2014년 당시 17세인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가 평화상을 수상했고 2007년 경제학상을 받은 레오니티 후르비치(러시아)는 90세였습니다.

노벨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예로운 상이다보니 해마다 10월이 되면 수상자 선정을 놓고 말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드니 무퀘게(콩고)와 나디아 무라드(이라크). 이들은 오는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금으로 된 메달과 상금 12억 7000만원을 받는다. /NEWSIS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수상 때는 노벨상의 ‘흑 역사’라고 할 만큼 낯 뜨거운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김 대통령이 평화상 후보로 떠오르자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반겼지만 정치적 반대자들이 들고 일어나 ‘수상 반대’운동을 펼쳤던 것입니다. 당시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들고 일어났고 “오슬로로 가서 데모를 하자”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군나르 베르게 노벨상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수 천통의 편지를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에는 김전대통령 서거 뒤 추모 열기가 일자 국정원에서 특별팀을 만들어 보수단체를 앞세워 뒤늦게 스웨덴에 수상 취소운동을 벌였다는 사실마저 최근 드러나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가 사형선고를 받으면서까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통해 싸워 온 것에 대한 공로였습니다. 1987년 서독의 사민당의원 90여명이 민주투사로서 김대중의 정치적 공로를 인정해 계속 추천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던 날 저녁 오슬로 시민 500여명은 촛불들 들고 아시아의 거인이 평화상을 받은데 대한 축하 거리행진을 벌였습니다.

노벨 평화상에는 웃기는 사연도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도 평화상 후보로 추천 된 적이 있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두 차례나 전쟁종식 공로로 후보에 올랐었고 우리나라의 전두환 전대통령도 평화상후보로 추천을 한 적이 있다기에 말입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9개월 만에 평화상을 받자 “당선된 지 몇 달 만에 뭘 했는데?”라고 비판의 소리가 나오자 오바마 본인도 당황해서 “나도 왜, 상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018년 올해 노벨평화상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드니 무퀘게(63)와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 여성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에게 돌아갔습니다. 전쟁 성폭력 종식 노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한때 나마 런던의 도박사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1위로, 트럼프 대통령을 2위로 꼽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은근한 기대를 가졌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이제 희망은 내년으로 넘어갔습니다.

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함으로써 ‘죽음의 상인’이라는 혹평을 듣고 있는가 하면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제정함으로써 위대한 인물이라는 두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벨은 열아홉 살 때 프랑스 유학도중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불행하게도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 상처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의 별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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