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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스파이 브릿지>와 <굿 나잇 앤 굿 럭>-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
박인영 | 승인 2018.10.09 22:35

‘아니요’라 맞서는 결기의 가치

모두가 ‘그렇다’고 한 목소리로 말할 때 ‘아니요’라 맞서는 건 쉽지 않다. 하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당연시되고 권장되거나 강요될 때, 그 시선 방향에 맞서거나 반대의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너무 어렵기에 더욱 그렇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2015)와 배우 조지 클루니의 두 번째 연출작 <굿 나잇 앤 굿 럭>(2005)은 냉전의 억압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두 영화는 현대사의 진행을 가르게 될 중요한 역사적 국면에서 터져 나왔던 ‘아니오’의 목소리가 갖는 가치를 되새겨보게 한다.

셉 매카시 상원의원이자 반미활동위원회 위원장이 주도하는 ‘레드 퍼지Red Purge’(적색분자를 공직과 직업으로부터 추방하는 일)의 위용이 여전하던 때, 일명 ‘매카시즘의 시대’였다. 1950년 2월 ”정부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있으며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폭탄 발언 이후 ‘선동,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으로 미국은 공포와 광기에 휩싸였다. ”나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자기 증명 혹은 부정이 여기저기서 행해졌고, ‘식구 중 하나가 10년 전 시위대 근처만 지나갔어도 문제가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에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1953년 10월, 아일랜드 출신 공군 중위 밀로 라둘로비치가 공산주의와 연루됐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당한다. CBS에서 ‘씨 잇 나우See It Now’를 진행하던 앵커 에드워드 R. 머로(데이비드 스트래턴)는 15년 동안 논평하지 않던 원칙을 깨고 이 사건의 부당함을 밝히고 잇달아 후속 보도한다. ”지난 2년 너무 한쪽만 득세했지. 내 양심상 이런 부당한 처우를 묵과할 수가 없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위험하기만 하다. ”회사 입장은 생각 안 해? 사장한텐 뭐라고 하지? 광고주한테는?“ 국장 프레드(조지 클루니)의 질문이나 ”만약에 우리가 틀린 거라면?“ 되새기는 조(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자문도 분명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흑백으로 촬영된 <굿 나잇 앤 굿 럭>은 지방 방송국 앵커였던 아버지를 따라 뉴스 스튜디오에서 자주 놀면서 소리치고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조지 클루니의 사적 기억을 소환한다. 조셉 매카시 의원의 청문회 장면과 연설 장면 등 실제 자료 화면을 사용하고 CBS 스튜디오 센터에서 촬영함으로써 당시의 얼어붙은 시대적 공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군 관계자들의 최후 통고처럼 ‘위험한 항해’에 나선 머로와 팀원들은 단단한 경계와 다짐으로 ”내게 반대하는 모든 자가 공산주의“라는 비합리적 광기와의 결전에 임한다.

”위험한 책 한 번 안 읽고, 다른 친구 한 번 안 사귀고, 변화를 원해본 적 없다면 매카시 같은 인간이 됐겠지. 우리마저 두려움에 굴복해선 안 돼.“ 머로의 결연한 눈빛을 담아내는 클로즈업들 속에서 공포를 무기삼아 무차별하게 휘두르는 비이성과 광기의 칼날에 맞선 이성과 양심의 언어들의 울림은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역사와 교훈은 이런 광기어린 공포가 부르는 비극적 결말을 경고하고 있죠. 우린 매카시 의원의 마녀사냥을 더 이상 묵인해선 안 됩니다...이것이 그만의 잘못일까요? 그는 우리의 광적인 공포심을 성공적으로 이용했을 뿐, 잘못은 별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독단적 논평’이라는 비판과 머로에 대한 흑색선전을 뚫고 계속된 ‘씨 잇 나우’의 보도는 ‘소심증에 걸린 방송계에서 계몽된 시민의식을 보여준 이정표’, ‘매카시의 공포전략을 묵인하고 방관해 온 자들을 비판한 위대한 승리’로 지지받는다. 결국 ‘정의를 조롱하는 희극’은 끝나고 라둘로비치는 다시 공군에 복귀한다. 하지만 1954년 4월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몰락한 매카시가 1957년 5월 세상을 떠난 뒤 머로의 ‘씨 잇 나우’도 1958년 7월 폐지된다. 매카시즘에 맞서 승리했던 언론정신은 자본과 시청률의 일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누구와, 무엇과 맞서야 하는가. 어쩌면 더욱 힘들고 고단한 싸움이 남았다.

 

1957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영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이 미국의 국방 및 핵무기 기밀을 소련에 넘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다. 재판은 미국 사법체계의 공정함을 시험하는 한편 스파이조차 좋은 변론을 받을 수 있음을 과시하는 일종의 체제우월경쟁의 장이 될 것이었다.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 변호를 떠맡은 보험 전문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변호사인 제임스 도노번(톰 행크스)은 법률가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신을 밝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그의 가족들에게 그의 생각은 어리석을 만큼 순진한데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원자폭탄 제조 기술을 소련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반역자’ 로젠버그 부부가 사형된 것이 바로 4년 전이었다. 아벨 같은 사람이 무서워서 집에 방공호를 짓고, 핵전쟁이 일어날까봐 통조림이랑 요오드화칼륨 등을 사놓는다는 때였다. 그저 ‘생사람 잡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공정한 재판’의 외양을 갖추라는 정부당국 요구와 달리 철저한 법리투쟁에 나서 아벨에 대한 사형선고를 막아낸 도노반과 가족들은 위험에 처한다. 도노반은 자신을 적대시하는 뭇사람들의 시선에 갇히고 CIA 요원에게 미행을 당한다. 집 유리창이 총탄에 부서지기도 하며 모든 이로부터 ‘미국의 적’으로 몰린다.

<스파이 브릿지>에서 처음 도노반과 아벨이 만나는 장면은 곧 소련에서 정찰비행 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될 파워스 중위(오스틴 스토웰)의 얼굴과 아벨 얼굴이 나란히 놓이는 디졸브 화면으로 이어진다. 다음 장면에서 CIA 요원은 ”정보전쟁에서 수집할 정보는 소련과의 전면적 핵전쟁에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는 데 쓰일 것이다. 혹은 핵전쟁을 막거나“라고 말한다. 비행기지에서 비행사들에게 극비 정찰 작전을 설명하는 또 다른 장면은 체포된 아벨의 집에서 수거한 카메라 등 각종 첩보장비들을 도노반이 점검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적대시 외에 어떠한 논의도 억압되던 냉전 시대 치열한 스파이전을 펼쳤던 아벨과 파워스/도노반의 조국이 그렇게 각각 서로의 거울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도노반은 소련 당국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파워스 중위와 아벨을 맞교환하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독일로 향한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 근처에서 체포된 미국인 학생 프레데릭 프라이어(윌 로저스)를 포기하라는 정부의 두 번째 지침 또한 따르지 않는다. 도노반의 협상 상대였던 소련과 독일 정부도 ‘비공식 임무’ 명목 하에 자국민을 적지에 보낸 미국 정부와 거울상이어서, 도노반의 협상은 수시로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꽤 유능한’ 변호사답게 그는 1+1 협상마저 성공으로 이끈다. ‘조국을 위해 애국하는 중요한 의무’여서가 아니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민주국가의 개인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동독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일치시켜 아벨과 파워스, 프라이어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낸 도노반은 아내와의 약속에 늦지 않게 무사히 귀환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양복 입은 채로 침대에 뻗은 그는 깊은 잠에 빠진다. 그렇게 <스파이 브릿지>의 여정은 해피엔딩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유능한’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의 꿀 같은 잠은 다시 방해받는다. 영화의 엔딩 자막은 그가 케네디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을 대표해서 1962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평의회 의장을 만나 협상했으며, 피그만 침공 때 생포자 등 모두 9703명의 석방을 이끌어냈음을 알린다.

<스파이 브릿지>와 <굿 나잇 앤 굿 럭>에서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 톰 행크스의 사려 깊은 얼굴과, 데이비드 스트래턴의 단호한 의지가 돋보이는 얼굴은 종종 인상적인 클로즈업으로 제시된다. 이들 클로즈업 장면들은 집단의 광기에 훼손되지 않는 올곧은 인간적 숭고와 품격의 거처를 증명한다. 변호인과 고객으로 만난 도노반과 아벨이 서로를 가르는 이념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우정과 연대의 시선을 나눌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굿 나잇 앤 굿 럭> 또한 집단의 명령에 동요하지 않고 공포에 잠식되기를 거부하는 각성한 개인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팀워크의 아름다운 감흥 또한 선사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실리 다툼에 뛰어났던 도노반은 유능한 협상가로서의 정체성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 국가의 이념을 대변하고 명령에 응답하는 것이 아닌 직업적 전문가로서 끝내 승리한다. <스파이 브릿지>와 <굿 나잇 앤 굿 럭>의 승리는 국적과 이념의 소용돌이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인간적 가치를 훼손할 때 오로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뿐이라는 소박하고 단단한 믿음으로부터 온다. 두 영화가 진영논리와 결별한 개인의 단호함을 통해 제공하는 감흥과 각성의 출발지점은 거대한 이념에 헌신하는 거창한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적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작고 사소한 태도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을 만든 조지 클루니의 경우와 비슷하게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아버지를 통해 냉전시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들’들은 ‘아버지의 시대’가 끝내 지켜냄으로써 웅변했던 숭고함의 가치를 존경의 시선으로 되새긴다. 두 영화는 냉전시대의 불안이 만들어내는 엄혹한 풍경을 배경으로, 모두가 하나 된 입으로 말하는 단일한 가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럼으로써 소수의 목소리, 차이의 가치가 억압당하는 지금 이 곳-‘아들의 시대’에 대한 근심을 담으며, 집단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신념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 /영화 칼럼니스트

 

 

 

박인영  cuul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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