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하거나 낯선, 그리고 그리운...

본명이 우치다 케이코인 일본 여배우 키키 키린이 지난 9월 15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1961년 극단 분가쿠좌에 입단한 이래 반세기 넘도록 연기 열정을 불태운 그가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된 것은 연기 인생 후반부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서였다. 고레에다 감독과 처음 만났던 2008년 <걸어도 걸어도>에서 키키 키린은 늘 보아왔기에 익숙한, 그러나 몇몇 순간 섬뜩할 정도로 낯설기도 한 어떤 엄마의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쉬움 속에 그를 떠나보내면서 지극한 처연함으로 기억됐던 또 다른 엄마의 얼굴을 이정범의 영화 <열혈남아>(2006)에서 만나본다.

거운 기름에 옥수수 튀기는 소리와 진동하는 기름 냄새, 나란히 주방에 선 엄마와 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갈비찜이 맛있게 익어가고, 오랜만에 혹은 처음 만나는 가족들과 안부를 나눈다. 왁자하니 기분 좋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활기가 시간을 재촉하면 가족들은 모두 제사상 앞에 모인다. 오늘은 1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요코야마씨(하라다 요시오)의 맏아들 준페이의 기일. 한때 전도유망한 의사였던 맏아들, 형이자 오빠의 추억을 나누던 가족들은 망자의 사진을 가운데 두고 올해도 가족사진을 찍는다.

무슨 즐거운 잔치라도 벌어지나 싶던 요코야마씨네 연례 가족 모임은 즐겁지 않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지만 장남의 휑한 빈자리도, 그의 죽음이 몰고 온 어두운 그늘도 여전하다. 빛나는 형에 가렸다가 ‘형 대신’을 요구받으며 상처받았던-여전히 상처받고 있는-둘째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와 아버지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서, 밥은 먹고 사는 거냐?” 료타가 데려온 초등학생 아들을 둔 새 며느리 유카리(나쓰카와 유이)도 마땅찮으니, 아버지 말투는 퉁명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집을 물려받고 싶어 하는 딸과 사위 속내를 모르지 않아서 그들의 호들갑도 신경에 거슬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는 딱 우리네 집을 들여다보는 듯 친근하고, 그래서 살얼음판을 걷듯 불편하다. 가족의 이름으로 한데 모였으되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행복할 수만 없었던 많은 시간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낯익은 시간들 가운데 엄마 토시코(키키 키린)가 있다. 딸 지나미(유)에게 부지런히 살림을 가르쳐주고, 무뚝뚝한 남편 쿄헤이의 수발을 묵묵히 들며,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새 가정을 꾸린 작은 아들에 대한 염려로 한없이 분주하고 바쁜 엄마. 새로울 것 없이 익숙하고 어디에도 있는 그 엄마의 얼굴은, 그러나 종종 한없이 낯설어진다.

“고르고 고른 게 하필이면 중고라니...” 친절한 미소로 둘째 며느리를 환대하기 전 그가 딸과 나누었던 뒷 담화는 분명 온당치 못했고, “아이를 가지면 못 헤어진다”며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던 말은 냉혹했다. “아버지와 함께 좋아했던 추억의 노래”라며 찾아온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엘피를 오래된 전축에 올려놓은 것은 아마도 평생을 별렀을 한 방의 복수였다. 젊었던 한때, 아내 아닌 다른 여자에게 정성껏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었던 남편 쿄헤이는 평생 내색 않고 혼자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을 아내의 시간을 뒤늦게야 떠올리며 얼굴이 새하얘진다.

수더분한 얼굴에 숨긴 엄마의 칼날은 15년 전 준페이와 생명을 맞바꾼 요시오의 방문에서 시퍼렇게 번쩍인다. 어린 소년으로부터 번듯한 청년이 된 그는 매년 준페이 제사에 참석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우리 애가...”, 아버지의 한탄이 민망한 료타는 요시오를 그만 부르자고 청한다. 하지만 토시코 또한 이 불편함으로부터 요시오를 해방시켜줄 생각 같은 건 없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어미는 해가 갈수록 더욱 억울하고 분노할 뿐이다. 그러니 “그 애를 겨우 1년에 한 번 괴롭힌다고 내가 벌을 받지는 않을 거”라고 말한다. 혹은 벌을 받으면 어떤가, 그런 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폭 주제에 ‘You mean everything to me’를 흐드러지게 부르는 재문(설경구)은 죽은 소년원 동기 민재(류성룡)의 복수를 다짐하며 대식(윤제문)의 고향인 벌교로 향한다. 조직에 갓 들어온 치국(조한선)과 함께 주변을 탐색하던 재문은 대식의 엄마 점심(나문희)의 국밥집에 드나드는데, 배 타고 나가 소식 없는 둘째 아들을 그리던 점심은 재문을 아들처럼 챙긴다. 조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칼을 갈며 달려왔던 재문은, 하필이면 원수의 엄마에게서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친엄마의 냄새를 맡게 된다. 거역할 수 없는, 거역하기 싫은 그리움의 냄새다.

“대한민국”의 구호가 진동하는 서울 도심서 펼쳐지는 핏빛 낭자한 살육전으로 <열혈남아>는 시작된다. 머릿기름 잔뜩 발라 빗어 넘긴 머리스타일의 남자들이 몰려다니며 주먹질 발길질이 난무하니, 조폭영화 혹은 느와르 장르의 지극히 전형적인 출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재문이 벌교로 가면서부터 이상한 나른함의 기운에 사로잡힌 영화는 곧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형질 변경된다. 분명 조폭영화였는데, ‘조폭영화인 듯, 조폭영화 아닌, 조폭영화 같은’ 모호한 경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냉혹한 복수와 배신이 난무하는 조직의 세계, 피비린내 나는 남성들의 세계는 인간적인 정서가 완연한 모성적 세계의 구심력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다.

조폭 느와르의 세계에서 뭉클하며 눅진한 모성멜로의 세계로 이동하는 이 이종결합의 결말은 너무나 자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던져대는 퉁명스러운 ‘욕쟁이 아줌마’가 무심하게 내놓는 국밥 한 그릇에 뼛속 구석구석 냉기가 녹아나고, 공짜 밥 무시로 먹는 공사판 인부들조차 망할까 걱정하는 좋은 심성 앞에서 누구라도 무장해제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의 모진 박대와 외면에도 그저 퍼주고, 담아주고, 보살피고, 어루만지던 엄마의 거칠되 따스한 손길 앞에서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하염없이 먼 들판을 바라보던 빈 등과, 빨갛게 젖어있던 두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더욱.

“근디 뭣하는 놈이냐? 건달이냐?” 묻던 점심의 말은 재문이 곧 놓이게 될 정체성의 곤경을 정확히 예시한다. 어쩌면 처음 맛보는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재문은 한동안 즐거이, 흔쾌하게 소년으로 ‘퇴행’한다. 논바닥에서 흙덩이 던지며 조무래기들과 맞붙고, 여정다방 미령(심이영)과 어설픈 설렘을 나눈다. 하지만 꽃무늬 남방과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테잎이 오고가기는 해도 그는 끝내 점심-‘어머니’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 “부모 앞서지 않고 살아있으면 그게 효도”라던 점심의 유일한 명령이자 당부를 재문은 지키지 않는다.

그러니 <열혈남아>가 조폭느와르에서 떠나 와 모성멜로의 땅에 안착하는 것은 보아서는 안 될 놀라운 진실을 보면서도 ‘악!’ 소리도 낼 수 없는 곤경, 친아들과 새롭게 연을 맺은 유사 아들을 다 떠나보내고 차게 식어가는 몸을 어루만질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음, 그 최종적인 무능력의 순간에 이르러서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아들의 짐을 부질없이 부치고, 거친 세상 떠도는 아들의 귀향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무기력. “아줌마, 미안해” 따위,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나 마지막으로 던지는 못난 아들들 덕분에 엄마의 거친 통곡과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키 키린이 분한 <걸어도 걸어도>의 토시코는 용서와 관용을 외면하며, 냉혹한데다 속물적이다. 하지만 냉혹하지도 속물적이지도 않았다면 엄마 혹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관대함과 넉넉함, 따스한 보살핌의 기대와 요구로 만들어지는 모성신화의 건너편에서 키키 키린이 그려내는 엄마 얼굴은 그렇게 곧바로 살벌하고 마른 현실을 향하고 고스란히 담는다. 숭배할 수만도 증오할 수만도 없는 모호한 존재. 키키 키린의 엄마는 엄마의 자식들이자 현재 혹은 미래의 엄마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묵직한 실감이자 뜨거운 존중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하면 건달들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을 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야기의 절정과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어머니라는 캐릭터를 가져오게 됐다.” <열혈남아>를 만든 이정범 감독의 계산은, 나문희라는 배우 캐스팅으로 완벽해졌다. ‘느와르가 모성 멜로와 만났을 때’를 부제로 함직한 영화에서 두 장르의 상이한 기운과 동력이 맞붙는 양상이 대뜸 싱거워진 건 거의 배우 나문희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럴 때 ‘국민 어머니’의 별칭을 나누어가지면서도 <걸어도 걸어도>에서 키키 키린과 저만치 떨어진 땅에 그는 서있다. 우리가 늘 그리워했던 어머니, 하지만 그 눈물만큼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키키 키린은 서른을 갓 넘긴 나이부터 어머니 역을 맡았던 이래 ‘어머니 연기’의 대표주자로 알려졌고, 특히 어머니 표상의 전형성에 잠식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고마웠어.” 현재 극장 상영 중인 그녀의 유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 키키 키린이 애드리브로 했다는 짧은 대사는 그의 연기를 사랑한 많은 팬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가 됐다. 14년간의 긴 암 투병 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연기를 선사한 그녀에게 우리도 감사의 인사를 보내야겠다. “그동안 많이 고마웠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평안하시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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