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니야...나는, 괜찮아!”

‘상처’라는 이름의 쓰나미가 온 몸과 마음을 덮치던 시간들은 끔찍했다. 다시 눈 뜨고 밥 먹는 일상을 영영 되찾지 못할 것처럼, 미래라는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암담했다. 하지만 고통은 상처의 시간 뒤로도 오랫동안, 끈질기게 계속된다. 필사적으로 상처와 싸우며 밥 먹고 잠드는 일상의 시간을 견뎌내기. 그럼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기. 구스 반 산트의 <굿 윌 헌팅>(1997)과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의 <숏텀 12>(2013)는 어쩌면 상처 그 자체보다 더 힘겨웠던 사건 다음의 많은 날들을 이야기한다.

행, 자동차 절도, 경찰 사칭, 체포 불응... MIT 대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스무 살 윌 헌팅(맷 데이먼)의 화려한 범죄 경력은 밑바닥 계층의 동요하는 삶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많은 손질이 필요해 보이는 낡은 집에서 혼자 사는 윌은 오랫동안 만나온 별 볼 일 없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소일한다. 학교 건물을 청소하다가 복도 칠판에 적힌 ‘세상에서 몇 명만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를 일사천리로 풀기도 하고, 하버드 대학생들과 지식 배틀을 벌여 그들의 자존심을 형편없이 뭉개버린다. 걸핏하면 서게 되는 법정에서 판사, 검사에 맞서 자기변호 하는 걸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굿 윌 헌팅> 개봉 당시 할리우드의 젊은 피로 주목받던 맷 데이먼이 인상적으로 분한 윌 헌팅은 충분히 개성적이지만 더 없이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이끈다. 타고난 천재인 그의 출중함은 호주머니 속 송곳과 같은 것이어서 누구의 눈에라도 띄지 않을 수 없다. 문학과 역사, 예술, 경제, 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수학의 천재성은 독보적이어서 수학 수훈상 수상자인 하버드의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발탁된다. 게다가 운도 엄청 좋아서 바에서 말 걸어주기만을 45분 동안 기다렸다며 전화번호를 건네는 하버드 여학생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의 대시를 받는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과 사랑 모두에서 성공하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으로 이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수학은 얼마든지 좋지만 정신과 치료는 필요 없어요.” 윌은 수감된 자신을 찾아온 램보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세상 모르는 게 없는 천재인 그도 정작 자신이 ‘치료’ 혹은 돌봄이 필요함을 알지 못한다. 아니 그 좋은 머리로 교묘하고도 철저하게 부정한다.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성장 플롯에서 윌의 파트너이자 멘토로서,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인정을 중시하는 램보 대신 작은 대학의 정신과 의사 숀(로빈 윌리엄스)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야. 그렇다면 나도 관심을 갖고 대해주마...네가 선택해.” 짧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윌이 먼저 입을 연다.

숀, 램보교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윌의 ‘전무후무한 천재’는 제 역량을 충분히 과시한다. 하지만 ‘오만에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는 여전히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어서, “사랑한다. 돕고 싶다”며 내미는 스카일라의 손길마저 냉정하게 내친다. 그리고 “원하는 게 뭐야?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반복되는 숀의 질문 앞에 허둥댄다. “그런 문제쯤은 극복할 거”라던 램보교수의 말은 틀렸다. 양부가 담뱃불로 여린 피부를 지져대고 칼로 찌르던 때로부터, 반복되는 파양으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던 그때로부터 윌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로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던 윌의 정교하고도 단단했던 방어막은 숀의 말로 허물어진다. 격렬히 흔들리는 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거듭 반복해서 건네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에 윌은 어린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그리고 스물 한 살의 생일을 맞아 친구들이 선물해준 차를 타고 스카일라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네 마음을 따라가라”는 숀의 마지막 가르침은 윌의 둘도 없던 친구 처키(벤 에플렉)에게도 ‘생애 최고의 날’을 선물한다. 비로소 자유로워진 윌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굿 럭, 윌 헌팅!

 

레이스(브리 라슨)는 문제 청소년을 단기 위탁하는 청소년 보호기관 ‘숏텀 12’에서 관리직원으로 일한다. 동거 중인 동료 메이슨(존 갤러거 주니어) 등과 함께 가정폭력과 학대를 피해 일정 기간 생활하는 아이들을 돌본다. 극심한 학대의 트라우마로 인해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일과를 세심하게 관리하며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데 주력한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는 랩에 싣는 18살 마커스(키스 스탠필드)는 곧 시설을 떠나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보호소 탈출을 시도하는 골칫덩이 새미(알렉스 캘러웨이)도 요주의 대상. 잠시도 한 눈 팔 새 없는 보호소에 15살 제이든(케이틀린 디버)이 들어온다.

사회복지사도 심리 상담사도 아닌 처지에서 아이들의 상처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그레이스의 시선은 깊고 행동은 신중하다. 애인 메이슨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있는 것처럼 그레이스 또한 고통스러운 학대를 체험한지라, 어린 생명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의 흔적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가혹하게 남는가를 잘 안다. 여유 있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혀 들어온 뒤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던 제이든이 문어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대가로 하나씩 팔을 내주다가 결국 상어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만 문어처럼 제이든이 아빠의 보호와 사랑을 갈구하며 폭력의 굴레에 갇혀있음을 그레이스는 알게 된다.

그레이스는 상처의 시간을 용케 견딘 끝에 고통 받는 어린 영혼들에게 공감의 시선과 연대의 손길을 내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이든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되면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제이든과 같은 나이에 아빠의 성폭행으로 낙태 수술을 해야 했으며, 법정에서 아빠의 죄목을 고발해야 했던 고통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사랑하는 메이슨의 아이를 가졌으면서도 그레이스는 혼자 낙태 시술을 예약하고 갈등한다. 아빠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에 제 손목을 긋는 행동으로밖에 응답할 수 없는 제이든처럼, 그레이스 또한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으리라는 자기 불신에 시달린다.

그래서 <숏텀 12>는 상처를 딛고 성장한 어른이 또 다른 상처의 피해자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절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가 된다. “아기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집으로 돌아간 제이든을 밤중에 찾아간 그레이스는 오랫동안 생각조차 안했고, 메이슨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제서야 제이든도 학대당한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준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세상을 외면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침묵의 비명을 질러댔던 제이든은 그렇게 용기를 낸다. 그레이스의 발목에 깊게 새겨진 자해의 흔적을 보고, 엄마-되기의 기쁨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레이스의 두려움에 공감하면서.

“좋은 엄마가 될 거예요.” 모든 사실을 드러내고 잘못을 바로잡기로 결심한 제이든은 그레이스를 격려한다. 제이든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그레이스도 소원했던 메이슨의 품에 다시 안긴다. 함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새롭게 맞이할 생명의 감동을 나눈다. 자신이 감옥에 보냈던 아빠가 일주일 후 출소하겠지만 그레이스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열여덟 살 생일을 지내고 세상으로 나간 마커스의 소식을 듣고, 여전히 틈만 나면 보호소를 탈출하려는 새미를 붙잡으러 달음박질친다. 또 다른 제이든, 마커스, 새미들을 맞이하고 또 내보내고 하면서 그레이스와 메이슨은 자신들이 갖지 못했던 ‘정말 멋진 부모’가 되어갈 것이다.

<굿 윌 헌팅>과 <숏텀 12>는 오랜 시간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되돌아오는 상처의 기억이 얼마나 끈질기고 가혹한지를 새삼 일깨운다. 전대미문의 재능을 가진 천재 윌은 세상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헌신적이고도 유능한 관리직원으로 아이들의 상처 하나하나를 사려 깊게 들여다보는 그레이스 또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아빠의 출소일이 다가오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이미 잊었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상처의 시간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이토록 잔혹하고 끈질긴 상처의 습격, 지치지도 않고 되돌아 침입하는 상처의 기억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서의 공감,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두 영화는 제시한다. 보호시설 관리직원과 수용자라는 관계의 수직성 대신 옆구리와 발목의 자해 흔적을 보임으로써 그레이스와 제이든은 서로를 격려한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다독임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치유는 시작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완강하게 닫힌 윌의 마음의 문을 연 마법의 열쇠는 엄마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게 먼저 덤벼야했던 어린 숀의 시간이 준 선물이기도 했다.

<숏텀 12>에서 관리직원들은 과격한 돌출행동이나 자해행위를 하는 아이의 팔을 양 옆에서 꽉 잡고 한참을 앉아 시간을 보낸다. 욕을 하면 욕을 먹고 침을 뱉으면 침을 맞으며 버티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아이가 차분해질 때까지. 비상벨 소리와 함께 누군가 시설을 이탈하면 즉각 달려 나가지만 물리적 접촉 불가의 규칙을 지켜 그냥 뒤쫓기만 한다. 하염없이 달리고 걷다가 아이가 다시 시설로 돌아올 때까지. <굿 윌 헌팅>에서 숀 또한 선택권을 윌에게 넘긴 뒤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때까지 시간을 준다. 공감하며 지켜보되, 섣불리 다가가기보다는 기다리기.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고 격려하기 위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들이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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