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재능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조던 필레의 저예산 영화 <겟 아웃>(2017)은 개봉 24시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흥행 돌풍을 바탕으로 최초의 아카데미 흑인 각본상 수상 기록을 세웠다. 단연 2017년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겟 아웃>은 기본 설정을 1967년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직접 빌려왔다. 무려 50년의 시간 앞뒤에 놓인 두 편의 영화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뜨겁고 첨예한 이슈로 요동치는 미국사회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게 돕는다.

역에서 신망 높은 언론사주인 매트(스펜서 트레이시)와 갤러리를 운영 중인 크리스티나(캐서린 헵번) 부부는 갑작스레 경황없는 하루를 맞는다. 외동딸 조이(캐서린 휴턴)가 하와이 여행에서 만난 존(시드니 포이티어)과 함께 와서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것. 매트와 크리스티나 부부는 딸이 낯선 남자와 함께 밤 10시 반 제네바행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 이 결혼을 찬성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딸보다 14살이나 많은 남자는 상처(喪妻)한 과거도 있단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기도 유분수지, 인륜지대사를 이렇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난감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딸이 열흘 전 우연히 만나 20분 만에 사랑에 빠진 ‘너무 기막히게 멋진 남자, 고요하고 매사가 확실한데다 신념 있고 도덕적 판단력이 뚜렷한 사람’이 흑인이라는 점.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건 잘못됐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증오에 찼거나 바보’라고 딸에게 가르쳤던 건 매트와 크리스티나였다. 덕분에 딸은 인종을 구별하기는커녕 차이 자체를 아예 못 느끼는 성인으로 자라났다. 모두가 당혹스러운 와중에 가장 먼저 생각을 정리한 건 크리스티나이다. “조이가 지금 순간처럼 행복해하는 건 처음이에요. 저 애가 좋으면 나도 좋아요. 저 애를 저만큼 키워낸 게 자랑스러워요.”

반면 평생 혐오와 배척에 맞서 신념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던 매트는 혼돈에 휩싸인다. “서로 사랑한다면 세상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절친 라이언 신부(세실 캘러웨이)가 “가짜 자유주의자가 자기가 당하니까 쩔쩔매는 꼴 보라”며 짓궂게 놀려도 마땅히 대꾸하지 못한다. ‘자유주의적 언론인’의 자리에 ‘아버지’의 입장이 겹쳐지자 모든 것이 갑자기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마도 50년쯤 뒤에는 세상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기 세대가 살아있는 한 사랑하는 딸과 그의 연인이 ‘세상으로부터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흑인 차별을 비판한 영화 <흑과 백>(1958)을 만들었던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1967년 12월 개봉됐다.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버지니아주를 비롯한 16개 주의 인종간 결혼금지법(anti-miscegenation law)을 위헌 판결한 것이 영화가 제작 중이던 그 해 6월이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의 연인이 백인임을 알게 되자 ‘정신병자들 짓’이라며 정색하던 존의 아버지도 인종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위반하는 ‘범죄자’가 될 것임을 경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법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아들 존의 항변 앞에 그 또한 말문이 막힌다. “아버진 흑인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절 그냥 남자로 생각해요.”

결국 문제의 중차대함에 비해 주어진 시간이 너무 촉박한 불공정한 시험과도 같은 이날의 소동은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로 마무리된다. 험난한 미래를 이유로 한 아버지들의 현실적 두려움은 아름다운 사랑의 위대함 앞에 힘을 잃는다. 오프닝과 엔딩까지 세 차례 흘러나오는 빌리 힐의 노래 ‘Glory of Love’처럼, 어떤 난관도 물리치는 사랑에 전폭적 지지를 표하는 러브 스토리의 관습으로 끝맺는 것이다. 1967년 7월 무장한 연방군의 진압으로 3명이 사망했던 디트로이트 폭동과,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피살의 시간 사이에 개봉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5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1968년 제40회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로 올라 캐서린 햅번의 여우주연상을 비롯, 각본상과 음악상을 수상했다.

 

진작가인 크리스(대니얼 칼루야)는 여자 친구인 로즈(앨리슨 윌리암스)와 함께 로즈의 부모님 집으로 떠난다. 한껏 들뜬 로즈와 달리 크리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자신이 흑인인 걸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오바마를 세 번이라도 찍었을 분이야. 자기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해 할 거고, 불편한 자리가 되겠지만 유별나서 그런 거지 부모님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똑 부러지는 로즈 말대로, 딘(브래드리 휘트포드)과 미시(캐서린 키너) 부부는 환한 미소와 정중한 환대로 크리스를 반긴다.

조던 필레 감독의 <겟 아웃>은 사랑에 빠진 젊은 흑백남녀의 경쾌한 여행길로 출발하기 전 어두운 교외 주택가에서 벌어진 흑인 남성의 미스테리한 납치극을 오프닝으로 선보인다. 한적한 남부 교외에 위치한 교양 있는 백인 중산층 저택에 묵게 될 크리스의 여정에 알 수 없는 불안이 깃드는 이유이다. 과연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아서 크리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미시의 최면술에 걸려 온 몸이 결박당한 크리스는 '침잠의 방'에 유폐된다. 흑인의 영혼을 탈취하고 신체를 전유하려는 백인들의 음모의 희생양이 될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겟 아웃>은 타이거 우즈와 마이클 조던의 신체적 우월성과 검은 피부가 경외의 대상이자 유행이 되는 시대를 그려낸다. 명시적인 인종차별주의는 사라졌지만 좀 더 정교하거나 변형된 형태로 실재하는 현실의 변화가 담기는 것. 영화에 대한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평을 빌리자면 <겟 아웃>이 드러내는 ‘역사적 순간의 복잡함’을 집약하는 건 교통안전청에서 일하는 크리스의 친구 로드(릴렐 호워리)가 경찰서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크리스와 로즈의 관계 자체를 찜찜해하던 로드는 ‘백인들이 흑인인 크리스를 납치해 성노예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노예제도 폐지 후 150여년이 지났고, 중임의 흑인대통령을 배출한 때, 명백히 시대착오적으로 들리는 그의 주장은 매머드급 폭소탄이 된다.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드는 코미디적 소재가 공포로 돌변하고, 달콤한 멜로드라마가 처참한 학살극으로 선회하는 플롯을 통해 <겟 아웃>은 변화된 지형과 변화하지 않은 구조를 동시에 환기시킨다. 백인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순응하는 가장 전형적인 흑인-노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관리인 월터(마르쿠스 헨더슨)와 조지나(베티 가브리엘), 납치된 재즈 아티스트 앤드루(키스 스탠필드)가 찰나의 순간 드러내는 강인한 저항과 필사적인 탈출 의지, 그리고 “겟 아웃!”의 절규는 현재 흑인들이 놓여있는 지형의 허위성을 자각하고, 그 껍질을 부수고 탈출할 것을 강력하게 선동한다.

<겟 아웃>의 해피엔딩은 그러한 선택이 역설적으로 엔딩의 리얼리티를 질문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의적이다. <겟 아웃>에서 때마침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주인공을 구원하는 흑인의 존재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매특허와 같은 백인-영웅의 고정된 이미지와 충돌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에서 야기되는 비현실성이 전형적 재현의 관습을 해체하는 미학적 쾌감으로 흔쾌히 수용되지는 않는다. 조던 필레 감독이 유튜브에 공개한 다른 버전의 엔딩은 극장 버전의 해피엔딩에서 카타르시스가 유예되던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준다. 크리스가 로즈의 목을 조르던 그 순간 나타난 건 ‘역시나’ 백인경찰들이었고, 로드가 찾아가는 곳은 수많은 흑인들과 함께 크리스가 수감된 교도소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겟 아웃>에서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인종차별의 완강한 현실은 해피엔딩의 상업영화적 관습으로 해소된다. 음모에 걸린 주인공의 절박한 위기상황을 다룬 <겟 아웃>의 스릴러적 외양은, 심각하고 첨예한 이슈를 다루면서도 가볍고 화기애애했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장르적 선택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명한 현실의 장애를 젊은 연인의 열렬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위험에 빠진 선한 주인공이 마침내 구조되는 장르적 처리법이 너무나 명쾌하고 단호해서, 오히려 현실은 휘발되지 않는다. ‘사랑의 위대함’과 ‘사필귀정’의 이상으로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단단하고 높은 현실 그 자체를 역설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 후로 50년, 세상은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 <초대받지 않는 손님>에서 근사한 외양의 37세 남성 존은 ‘예일 의대 조교수, 세계보건기구 부위원장 출신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굉장한 업적을 남긴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인사였고, <겟 아웃>에서 훤칠한 몸매에 잘 생긴 크리스는 세상이 알아주는 잘 나가는 사진작가였다. 둘 모두 그 어떤 백인남성보다 온화하고 예의바르다. 다수의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는 인종차별 철폐의 영화적 발언을 위해 출중한 개인능력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백인권력에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 순치된 흑인 남성성은 여전히 필수불가결하다.

50년 전 백인 며느리를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자신이 ‘흑인 남자’ 아닌 ‘남자’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50년 뒤에도 크리스는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기를 내켜하지 않는다. “흑인이 요새 유행Black is in fashion”인데도,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상에서 여전히 ‘흑인남자’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세상물정 알 만한 흑인 남성은 사랑 앞에 물불 안 가리는 스물 셋의 백인 여성에게 “봄은 그리 쉽게 오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크리스에게 ‘봄은 왔다지만 영 봄 같지 않’아서, 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계절이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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