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새로운 시작 ··· “좋지”

 

―1953년 정전된 지 65년,
종전선언과 함께,
북한 핵을 폐기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기를 기도합니다―

 

남쪽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북에서 엄수해야하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출발합니다. 북쪽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남·북한을 지칭할 경우, ‘남한’이니 ‘북한’이니 하지 말고 반드시 ‘남측’, ‘북측’이라는 용어를 써야한다는 내용입니다.

남한에서는 통상 휴전선 북쪽을 ‘북한’이라고 부르고 북한에서는 휴전선 남쪽을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입니다. 북한 당국은 북한이라는 호칭이 ‘북쪽한국’이란 뜻이므로 절대 싫어합니다. 남한 또한 북한이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50년대만 해도 남과 북은 상대를 ‘북한괴뢰집단’, ‘남조선 괴뢰패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괴뢰(傀儡)라 함은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허수아비를 뜻하는 말이니, 북한은 소련의 꼭두각시, 남한은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의미로 서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모멸적으로 폄하(貶下)해서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북한은 불법집단이니만큼 허수아비라 해서 ‘북한괴뢰’로 불렀고 북한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땅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남한을 ‘남조선 괴뢰패당’이라고 맞불을 놨던 것입니다. 국제사회에 창피한 일이었지만 피장파장의 몽니였던 셈입니다.

남한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은 1948년 8월 15일. 북한 또한 남한의 뒤를 이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로 정부를 수립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안보리에서 대한민국을 먼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을 했기 때문에 정식 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1949년 1월 유엔회원국이 되기 위해 가입신청을 냈지만 소련의 반대로 부결됐고 그 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돼 발언권이 없는 옵서버자격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구 몇 십 만의 작은 나라들도 회원국 행사를 하는데 4300만 명의 나라가 회원국 대접을 못 받다니, 그야말로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결국 남·북한의 동시가입이 이루어진 건 1991년, 정확히 9월 17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18일 오후 4시30분)에 열린 제46차 총회에서입니다. 이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159개 전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유엔 회원국이 됐고 그와 함께 미국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강변에 우뚝 선 유엔본부 앞 광장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됩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회담 슬로건은 ‘평화, 새로 시작하다’이다. /NEWSIS

남과 북은 1948년 서울과 평양에서 제 각기 단독정부를 수립한 지 43년 만에 비로소 유엔의 당당한 일원으로 정식 회원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은 오늘 날 각각의 독립 국가를 인정받고도 아직도 자신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우스운 주장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분명히 규정돼 있으니 의당 북한 땅은 남한의 영토인 셈입니다.

북한 또한 헌법에는 명시적인 영토조항을 갖고 있지 않지만 외국문출판사가 2015년에 발행한 ‘조선에 대한 리해’에 보면 백두산부터 제주도까지를 자기네 영토라고 명기하고 있으니 남한이 북한 땅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북한이 남한 땅을 자기영토로 주장하는 것이나 남과 북이 매 한가지 입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남북이 따로 따로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분단된 지 70년 만에 2018년 4월 27일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립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정상회담이 맞는 표현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나로 통일이 돼야할 같은민족이기에 편의상 남·북, 북·남회담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전폭기 편대가 하늘을 뒤덮고 굉음이 귀청을 찢던 몇 개월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 지금 막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실로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1953년 7월 27일, 3년 1개월 2일 동안의 6·25전쟁 정전협정 조인으로 전 세계의 초점이 됐던 유서 깊은 그곳, 판문점에서 이제 또 남과 북, 아니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다시 한 번 남·북한 7.500만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그가 누구이던 민족 구성원이라면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슬로건은 ‘평화, 새로운 시작’입니다. 동서고금 시공을 초월해 인류 최고의 가치는 평화입니다. 평화가 없이 인간은 존재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더 더욱 행복한 삶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정상회담 슬로건으로 설정한 것은 참으로 시의(時宜)에 맞는 좋은 발상입니다.

회담의 핵심의제는 ①비핵화 ②항구적인 평화정착 ③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등 세 가지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65년이나 끌어 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終戰)선언과 함께 평화협정체결로 나아가야합니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때맞춰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평화는 한국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운명”이라면서 “남북한의 종전문제를 나는 축복한다. 정말로 축복한다”고 거듭 추임새로 거들고 있으니 그 또한 기대를 갖게 합니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는 금물(禁物)일수도 있습니다. 전에 열렸던 두 차례의 정상회담,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과 다시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이 국민들을 흥분시켰으나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분위기는 이내 험악해졌고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됐던 전례가 있습니다. 지난 10년을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성급한 기대를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 북한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정착시킨다면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 그리고 트럼프대통령은 2000년에 그랬던 것처럼 노벨평화상도 공동으로 수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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