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개 논쟁”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경망한 말 한마디가 경찰을
화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입을 조심해야지―

 

*고려를 무너뜨리고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개국공신인 무학대사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태조는 “우리, 군신(君臣)의 예를 떠나 터놓고 한번 농을 하는 게 어떻겠소”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대사, 짐의 눈에는 대사의 얼굴상이 꼭 돼지로 보인다오”하고 태조가 말을 걸었습니다.

매우 모욕적이었지만 무학대사는 달리 언짢은 표정도 짓지 않고 “전하, 제 눈에는 전하의 모습이 꼭 부처로 보입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태조는 의아해 “이 보오. 돼지라 욕을 했는데 어찌 성을 내지 않으시오”라고 물었습니다.

무학대사는 지그시 웃으며 “돼지 눈에는 세상이 돼지로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세상이 부처로만 보이는 법이지요”라고 응수했습니다.

야사에 전해오는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이라는 이 유명한 고사는 원래 중국 한나라 때 어느 왕이 신하들의 잔꾀에 홀려 부처를 골탕 먹이려고 기름진 고기음식을 잔뜩 차려놓고는 시험을 한데서 유래된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무학대사의 격조 있는 한마디는 장난을 건 태조를 머쓱하게 한 게 분명합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긴 설명이 필요 없는 ‘명문’입니다.

요즘 전국 14만 경찰관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경찰을 향해 “정권의 사냥개”라느니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느니 마구 ‘막말’을 쏟아 낸 것이 화근입니다.

‘경찰=미친개’라는 발언이 전해지자 느닷없이 아닌 밤중에 뒤통수를 맞은 전국의 경찰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현직 경찰관 7000명으로 구성된 경찰커뮤니티 ‘폴 네띠앙’에는 “경찰은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경찰관입니다”라는 성명을 내고 “공당의 대변인이 불철주야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을 ‘정권의 사냥개’, ‘몽둥이가 필요한 미친개로 만든데 대해 모욕감을 금할 수 없다”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홍준표대표와 장대변인을 향해 항의성 ‘인증 샷’을 계속올리고 일부 파출소에는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는가하면 장대변인의 부산지구당 당사 앞에서는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거대한 경찰 조직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변인의 경망한 말 몇 마디가 순식간에 제일야당을 궁지로 몰아넣은 양상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앞서 울산지방경찰청은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기현 현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를 포착해 시청을 압수수색하고 김시장 동생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현 시장을 낙선시키기 위해 경찰이 음모를 꾸며 야당을 탄압하는 것이라면서 대변인 명의의 강력한 항의성명을 발표한다는 것이 ‘미친개’운운, 도를 넘으면서 사건이 풍선처럼 커진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기 전 여당이던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경찰을 우군으로 여겨왔지만 갑자기 정권이 교체돼 야당이 된 데다 그러잖아도 등을 돌린 민심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고민하는 와중에 설상가상 화를 자초해 딱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어쩐지 그동안 장대변인의 입이 좀 험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오는 대로 따발총처럼 마구 거친 말을 쏟아 내다가 급기야 당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복싱으로 치자면 툭툭 잽을 날리며 빠지다 된 통으로 어퍼컷을 한대 얻어맞은 꼴이 된 것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당의 대변인이라면 말에 절제와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정당의 입인 대변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당의 이미지를 좌우합니다. 신중치 못하고 나오는 대로 섣불리 말을 쏟아 내다가는 실언을 하기 십상입니다. 그래 옛 성현들은 “입은 ‘화를 부르는 문(口是禍門)’이니 말을 조심하라”고 일렀습니다. 하물며 공당(公黨)의 대변인 임에랴. 쯧쯧.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한 경찰관이 자유한국당에 항의의 표시로 ‘미친개’표지판을 들고 있다. /NEWSIS

**며칠 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매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과거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실상 사과를 한 것입니다.

문대통령은 비록 명시적으로 ‘사과’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대신 외교에서 우회적 사과로 해석되는 ‘유감’이란 표현을 통해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인 만큼 그 두 글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문대통령의 이번 ‘유감’ 발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과입니다.

1998년 하노이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도 하노이에서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초 문 대통령은 한국군에 의한 학살의 상처가 있는 베트남인들에게 분명한 사과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두고 일본 측에 진정한 반성을 촉구한다든지, 국내적으로 제주 4·3, 광주 5·18 등의 국가폭력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문 대통령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통칭 월남전이라고 부르는 베트남전쟁은 1955년부터 남·북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내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세계는 미국주도의 자유세계와 소련을 주축으로 한 공산세계로 갈려 대립을 하던 상황으로 동남아시아가 도미노현상으로 공산화돼가자 미국이 1964년 통킹만을 공격함으로서 국제전으로 확대된 전쟁입니다.

우리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을 것은 1964년입니다. 처음에는 의무지원단인 비둘기부대가 출국한 뒤를 이어 1965년 전투부대인 수도사단 맹호부대, 해병 청룡부대, 1966년 9사단 백마부대 등 5만 명이 파월 돼 1973년까지 연 병력 32만 명이 참전을 했습니다.

한국군이 전투에 참가하면서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이내 그 용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한국군이 상대한 적군은 주로 정글에서 활동하는 게릴라인 베트콩이었는데 이들에게는 ‘무적 따이한,’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국군이 참전한 11년 동안 9000명의 베트콩이 사살됐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일부 오명도 없지 않습니다. 국내신문에는 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즈 같은 미국신문에는 한국군의 잔학성이 보도돼 국회에서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빗발처럼 총탄이 쏟아지는 정글 속에서 사방을 구별하지 못하다보니 민간인의 희생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고자이마을, 퐁니·퐁넛마을 등등 전쟁이 치열했던 곳에는 어김없이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한 것으로 미군과 베트남의 전사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곳곳 마을에 세워져 있는 희생자 추모비에는 당시의 처참했던 기록과 함께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는다.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주민들의 비장한 결의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은 월남전 파병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억 3500만 달러의 경제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은 1960~70년대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대신 5000명의 병사가 그곳에서 전사했으며 1만 1,0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베트남전쟁은 1975년 미국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세계 최 강 국인 미국은 하루 1억 달러(1,000억원)에 달하는 포탄을 정글에 쏟아 붓다시피 융단폭격을 가했음에도 12년간의 전쟁에서 끝내 패하고 말았습니다.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200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참패요, 최악의 치욕이었습니다.

지금 베트남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세안 과 인도를 목표로 한 신 남방정책의 교두보이기 때문입니다. 신 남방정책이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안국가들과 교역수준을 2020년까지 중국교역수준만큼 끌어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문대통령이 특별히 유감을 표시한 것은 당연합니다. 경제적 실리에 앞서 인도주의로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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